삶과 꿈/복지마을단상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에 끼친 영향과 그 평가

하늘타리. 2006. 7. 23. 22:30
 

1.들어가기

오늘 저녁 식사 전에 뉴스를 보던 중 경제부총리가 어느 세미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극화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잊고 있었던 단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단어. 현직 대통령이 금년 봄엔가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다"라고 본인의 성향을 규명한 적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을 때 '나이 50에 처음 듣는 소리네, 참 말을 잘 만들어 낸다.'라고 웃어넘긴 적이 있습니다. 통념적으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국가의 시장경제 개입 철폐와 완전한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념이며, 좌파(아마 사회민주주의 계열을 말하겠지요)들은  대체로 급진적인 사회혁명에도 반대하고, 빈부격차와 착취가 기승을 부리는 자본주의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데 이 둘을 한사람의 특질로 규명한다는 것이 말장난 아니겠는가하며 가볍게 웃어넘기고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부총리가 한 말을 듣고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르고,  한미 FTA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화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본격적으로 합류한다는 것인데 양극화의 심대로 특징되는 세계화속에서 어떻게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하는지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에 끼친 영향

신자유주의의 등장배경은 국가개입에 따라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경비가 너무 많으니 그 경비를 줄이자라는 차원에서 발생되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하나를 차리고자할 때도 상당히 많은 부분 국가의 규제를 받아야 하고 그 규제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드니 가급적 국가규제의 철폐를 통해 자유경쟁으로 인한 효율성을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움직임이 점점 커져서 국가내의 규제뿐만이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규제를 철폐하자는 것이죠.

이렇게 경쟁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단계로 진행됨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는 것입니다. 즉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산업, 기업, 개인과 그렇지 못한 산업, 기업, 개인 간에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중간계급이 줄어들어 계급구조가 더더욱 양극화되고, 사회적 통합도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반면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생존을 국가(또는 사회)가 최저선의 수준에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사회보험(social insurance: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이나 공공부조(public assistance: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제도적 수단을 통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최저선의 생존을 보장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복지에 쓰여지는 비용은 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또 다른 비용의 증가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부주도의 복지국가는 정부의 과중부담과 경제위기를 초래했으며 복지국가의 명분 하에서 많은 영역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고 게다가 이러한 복지정책이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책임을 방기시킴으로 오히려 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다 보니 복지제도가 취약하고 복지예산자체도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조차도 국가의 복지기능을 축소하고 노동의 유연성 확대란 미명하에 해고나 비정규직의 확대가 보다 용이하도록 정책을 바꾸고 생산적 복지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고 노사관계에서도 노조활동의 규제를 강화하거나 저임금을 방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국가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소득이 상위계층에 집중되는 기형적 사회구조를 낳습니다. 소득이 상위계층에게 집중되므로 소득세의 누진구조상 더 많은 세금이 걷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부는 증가하지만(올해 정부 예산 220조원) 그 부라는 것이 결국 국민의 많은 수를 면세점이하로 떨어뜨리면서 얻는 수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고비용구조로 이동하게 됩니다. 사회는 고비용구조로 이동하고 있는데 사회복지비용을 삭감하고, 경쟁을 강화해야 사람들이 노동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탁상공론 하에 사회복지에서의 국가책임은 점점 엷어지고 있고,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여 없는 덜 사람이 없는 사람이 많이 없는 사람을 부양하다 함께 아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복지서비스도 종전의 국가의 의무로부터 개인간의 계약제도로 바꾸고 있으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0000달러라고 하고 경제규모면에서 세계10위권이라 하는데 오히려 가난한 국민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의 사회복지가 오히려 국가주도의 사회복지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투명한 복지를 가능케 하는 면도 있겠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및 민간 자원봉사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는 있겠습니다만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것의 근본은 비정함이라는 것이며 지방자치단체역시 그 자치단체원의 의식의 범주를 벋어나기 힘들며 자원봉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간의 선의에만 기대하는 것으로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3. 제시된 대책에 대한 비판

최근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논의가 활발히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공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먼저 오늘 경제부총리가 한말 중에 "한·미 FTA로 높아진 소득을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에 활용함으로써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도 있다'라는 말에서 소득이 높아진 계층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면세점이하에 있던 국민의 소득은 높아진 것이 아닐 것이고 상위계층과 거기에 고용되어 있는 일부의 소득이 높아진 것이지요. 물론 그럼으로 세수가 증가되겠지요.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왜 내 세금을 많이 걷어서 남한테 쓰느냐(왜 비용이 많이 들게 하느냐?)하는 문제에서 출발한 건데 그 돈으로 기술개발을 위한 국가지원을 강화하던가. 세금을 감면하라고 나올게 뻔 한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무역확대 보다는 기술진보가 소득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5배 이상 강력하다는 실증연구도 있다"라는 주장도 했다합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찾다보니 부총리의 말에 화답하듯이 오늘 국제경제학회 하계정책세미나에서 숙명여대 이영섭 교수가 "우리나라의 양극화 심화현상은 추세적인 것이 아니며 외환위기 이후 수년간 개선되어 오던 양극화 문제가 2003년 이후 다시 악화되는 추세로 반전됐다"며 "이는 세계화 요인보다 기술진보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발표한 내용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급격한 세계화를 대변하는 주식시장의 외국인 지분율과 양극화지표인 소득5분위배율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상관계수가 0.12로 미미했다. 그러나 IT산업과 제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와 소득5분위배율간의 상관계수는 0.38로 나타나 외국인지분율과 5분위배율 간 상관계수 값보다 3배 이상 컸다."고 하고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이 기술격차라면 상대적으로 낙후된 부문의 잉여 노동력이 기술을 습득해 노동수요가 증대된 선도부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교육 및 직업훈련을 제공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더 심각해집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말로만 세계화지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 탓으로 외국의 고도의 기술을 가진 기업이 진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면 선진 기술을 가진 기업이 우리나라를 잠식할 것은 명약관화하며 지금까지의 기술진보요인은 세계화의 의한 기술진보요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교육 및 직업훈련을 통해 선도부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구요? 재교육 및 직업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입니까? 허버트 갠스(H. J. Gans, 1972)가 말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불쾌한 직업들을 수행하거나(청소부 등). 그들의 활동을 통해 부유층을 보조(가정부, 운전기사, 정원사 등)하는 일 뿐이 더 있습니까? 현재의 기술에서도 적응 못해 퇴출되는 사람들에게 선도적 기술을 배워서 선도기술 부문으로 이동하라구요? 근로를 통해 경제, 사회적으로 상향 이동할 가능성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통해 이들이 현직에 근무하면서 더 상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의 습득기회를 확대하고 그 기간동안 신분의 변동이 없도록 보장하고 그 경비를 지원해야지 도태되고 난 다음 재교육 또는 여태까지 근무한 것과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훈련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최선의 정책수단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깁니다. 통상 저소득층에 대해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파악 수준은 매우 미흡하기 때문에 소득파악체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기관 또는 직책 또는 담당자가 생깁니다. 그러면 행정직의 특성상 또 하나의 절차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또 경비가 듭니다. 그러면 그 경비를 어디서 갹출하느냐? 그 본래의 목적에 사용해야 할 것을 전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누어 먹을 파이가 작아집니다. 주택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 및 그 의도는 반대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한 가지 예로 속칭 버블7지역은 시세 100%로 세금을 부과한다고 하던데 그러면 그 지역에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다 투기꾼입니까?(저는 그 부근조차 입성하지 못했습니다) 선량하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집 한 채 마련했더니 지역을 잘못 선택했다는 죄로 그 지역에 대해서만 시세 100% 세금을 물리면 정말 그 지역 서민은 다 쫓겨나고 세금정도는 우습게 아는 부자만 남겠네요.

4. 결론

선진국의 경우엔 지나친 자유화 과정에서 소득 격차가 심해지는 것이지만 개도국의 경우는 성장이 떨어질 때 양극화가 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성장력이 급격히 감퇴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해 졌습니다. 성장이 없다면 축소 균형으로 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분배조차가 불투명해집니다. 이렇듯 성장이 필수적인 것이고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한다면 진정으로 나라의 통수권자가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개발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양극화를 진행시키더라도 그 나라가 채택한 발전모델에 따라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정책결정자들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개인의 인권존중차원에서만 접근해도 시장의 패자도 보호해야하지 않을 까요? 이런 패자도 국민이고 국민 중 약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는 정책결정의 신념만 있어도 신자유주의자들이 아무리 큰 목소리를 내도 국가가 사후적이나마 소득재분배가 되는 제도인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 등의 사회복지를 확충하는데 대한  정당한 반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데 쓰이는 비용은 대 국민 서비스의 질을 향상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조직을 강화시켜 점차 비대화하고 있는 정부조직을 다시 축소시켜 절감되는 자금 등을 우선 투입해야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을 거라 판단됩니다. 그리고 정권에서 인심 쓰는 식으로 시행하여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는 지방의원 유급화 등의 낭비적 정책의 시행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하여 일단 지방 재정을 튼튼히 한 후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구성원을 보호하는데 합심해야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