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이야기 합니다.
"나는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까?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문단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80년 1월 1일,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면서였다.
그러나, 정작 나의 생애를 관통하는 소설에 붙들린 것은
이듬해인 1981년 5월 28일. 동아일보가 신문사 창간 6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으로 2천만원 고료를 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했는데,
여기에 응모한 혼불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나에게 충격적인 갈채와 영광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풀어가야 할 숙제도 함께 지워 주었다.
그것은 둘 다 무거운 짐이었다.
나는 그 좋은 소식을 듣는 순간,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애초 구상한 대로 다 쓰지 못한 채 우선 마무리하고 말았던
소설 혼불의 다음 이야기들이 목메이게 부르는 소리를 같이 들었다.
그것은 갚아야만 하는 ‘빚’이었다.
나는 그때, 장편소설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서,
원고지 약 2천여 매라면 한 30년 정도의 세
월은 넉넉히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착수해 보니 그 길이는 겨우 10년을 담기에도 부족했다.
칸칸이 사무치는 이야기의 회오리가 나를 휘어감고 놓아주지 않는 탓이었다.
어두운 역사 암울한 시절 1930년대,
외형적으로는 국권을 잃고 일제의 탄압을 극심하게 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조선말의 정신구조와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이중적 시대상황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지고, 상처받고, 뒤집히고, 고뇌하며, 한없이 몸부림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하는 작업은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나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흡사 주술과도 같은 친화력이 핏속으로 저며들어 무서운 힘으로 나를 이끌었으니.
전라도의 한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며
치열하게 몸을 일으키는 종부(宗婦) 3대와,
천하고 남루한 상민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애환이,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갈등하며 소용돌이치는 그 마을의 복판에 서서,
나는 한 시대의 강물 위에 떠올랐다 스러지는 ‘성취’와 ‘소멸’의 불꽃들에 홀리고 취하여
차마 그들을 떨치고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사로잡힌 포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해방과 6․25, 그리고 4․19를 비롯해 5․16까지로 준비했던 자료와 사건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응모에 제한된 원고지 2천 매를 어느새 다 써버린 뒤, 절망감 때문에 고꾸라져 남모르게 울었다.
이야기가 아직 뜻같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감 날짜 막바지에 이른 시간의 고비에서 더 이상 새로 고쳐 쓸 틈이 없었던 나는,
이 소설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여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매달려 쓴 이 원고를 제출조차 하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렇게 참담하고 고통스런 가운데 쓰다 말고 응모한 글이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보이지 않는 손’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을 절감하였다.
쓰지 못한 이야기가 덜미를 잡은 것이다.
미완의 붓이 어둠 속에서 푸른 몸을 솟구쳐 시위를 당기며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살촉에 생애를 깊이 꿰뚫리어 아직까지도 ‘혼불’을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언제 끝날는지는 나도 모른다."
최명희 작가는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혼불이란 우리 몸안에 있는 불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라는것이지요.
장일구평론가가 정리한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삼대 종부(宗婦)가 커다란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리고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네였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골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자기장으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의 근친상간에서 시작된다 .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건너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섬으로서 제각기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그를 따라나선 술집 기생 오유끼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상피에 대한 소문이 거멍굴로 전해지자
자기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이가 양반댁 강실아씨를 탐내기 시작하고,
춘복이와 몰래 동거를 하고 있던 과수댁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상피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끔 하고 그때를 노려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차츰 은밀히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죄어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겁간해 임신을 시키게 된다 .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피접시키려고 하나
그만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이를 납치한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에게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출이가 번득이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계급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장일구의 평론은 이어집니다.
"소설은 고난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 문장이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대로 판소리가 되었다.
실제로 작가는 원고지 한 칸을 메울 때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리 내어 읽어 나갔다고 한다.
눈으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운율을 타고 가슴에 척 안겨드는 것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인 남원 땅은 산천초목도 떠는 듯한 호령조의 동편제의 산실이었으니까
꿋꿋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담기에는 제격이었다.
또 하나는 당시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담아
남원 거멍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를테면 관례를 시켜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옷은
「연두결마기,다홍겹치마,연두폭대무자기,여덟폭 곁풍무지기, 모시분홍속적삼」 등 수 없이 많다.
班家(반가)의 혼수세간들 역시 다양하다.
주철삼층장 의결이장 반닫이장의 모습을 재현했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맞이나 상가의 풍속, 상여 나가는 모습은 민속조사보고서처럼 치밀했다.
사찰의 사천왕상을 취재한 원고지만도 9백쪽에 달했으니까 혼불은 한낱 소설만은 아니었다.
혼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재생시켰고 풍속사를 정리해줬다"
그 혼불의 배경이 되는 청호저수지를 포함한 매안마을이 그대로 재현된 남원의 혼불문학관을 돌아보며
소설 혼불을 다시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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