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사마을길을 내려갑니다.
대동법시행 기념비를 만납니다.
지금의 위치에서 100여미터 남쪽 옛 소사원터에 있었던 것을 1970년대에 이곳으로 이설했다고 합니다.
대동법은 조선 후기에 공납제도를 개혁한 것입니다.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을 현물로 바치는 제도인 공납제도는
징수상의 문제 때문에 여러가지 폐단이 나타납니다.
16세기부터 폐단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권력층의 저항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고,
1608년 이원익과 한백겸의 건의로 경기도에 시범 실시되었지만
떡고물을 먹을 수 없게된 권력층의 반대와 상인들의 농간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되지 못하였습니다.
효종 2년인 1651년에 우의정에 있었던 김육金堉은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의 방법은 대동법의 실시에 있다고 믿어
김집과 같은 원로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기도에 시범실시되고 있는 대동법을
충청도에 확대 실시하였습니다.
이어 영의정에 올라 전라도에 추가 실시를 준비하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대동법의 실시는 백성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호서(湖西)에 대동법을 실시하자 ‘백성은 밭에서 일하며 춤을 추었고
삽살개는 아전을 보고도 짓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는 김육이 죽은 이듬해(1659) 충청도 백성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임금의 윤허하에 세운 것입니다.
소사원이 있는 곳이 경기와 충청의 경계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비(碑)의 본래 명칭은 김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金堉大同均役萬世不忘碑)’이며,
비문은 홍문관 부제학 이민구가 지었고 의정부 우참찬 오준이 썼습니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 앞에는 네 기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선정비 중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할아버지 윤영열의 불망비도 있습니다. 나머지 세기의 주인공 중 이관구와 이중철은 구한말의 양성군수를 지냈고 이원철은 윤영열앞에 안성군수를 지냈습니다. 남쪽에 있던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이전할 때 함께 이전되어 왔습니다. 충청도민이 기념비를 세웠다고 하고 안성군수 불망비가 있다하고... 사실 지금의 평택과 예전의 평택은 조금은 다른 지역입니다. 옛 평택은 안성천 남쪽 팽성읍지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 충청남도 평택군, 경기도 수원군 일부가 경기도 진위군에 병합됩니다. 1938년 10월에 부령 제196호로 진위군을 평택군으로 개칭하면서 진위군이 없어지고 평택군이 다시 나타난 것이지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때에 안성군 공도면으로 들어갔다가 1983년에 평택시로 편입되었습니다.
현재의 비들은 본래 소사동 원소사 마을 북쪽 입구의 대로변에 세워졌던 것인데
조금 헷갈리시겠습니다.
지금의 평택은 옛 진위서쪽이라고 보시면 되고
옛날일은 생략하고 일제강점기부터 이야기 하면
1931년 4월에 도령 제7호로 진위군 병남면을 평택면으로 개정하고
1934년 4월에 도령 제4호로 진위군 부용면 서면 일원을 팽성면으로 개정하였다가
경부선 평택역 일대에 근대도시가 발달하면서
소사벌일대 소사동은 조선말엽에는 양성군 영통면이었고
대동법시행 기념비에서 보이는 당산(堂山)에는 수령 2백년쯤 된 당목(堂木)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산 넘어 마을 안 미륵당에는 돌미륵이 모셔져 있지요.
당목(堂木)과 미륵은 부부사이로 예전에는 마을에서 주기적으로 당제를 올렸는데
지금은 정기적 당제는 없지만 그래도 몇 몇 사람이 정성으로 치성을 드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륵은 미래불(未來佛)이라고 합니다.
그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어느날 재림하여서
극락왕생하지 못한 민중들을 구원하여 이 땅에 미륵세상을 연다는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민중들은 삶이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을 때 미륵을 염원합니다.
평택, 안성지역은 미륵이 많이 있습니다.
안성에 있는 미륵으로는 궁예미륵, 대농리 미륵, 아양동 미륵이 언듯 생각나지요.
평택의 미륵으로는 이곳 소사벌 돌미륵이 있고
팽성읍 남산리 용화사에 하반신은 땅에 묻혔고 상반신만 드러내고 있는 돌미륵이 있고
고덕면 방축리 서천사에도 하반신이 있는가 여부는 모르지만 상체만 보이는 미륵이 있습니다.
아마도 소사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입니다.
안내문에는 임금이 온양행궁으로 온천욕을 가느라 마을을 지날 때면 도로를 보수하고 접대비용을 마련하느라
일대의 사람들의 등골이 빠졌다고 하는데
조정의 일에 부역을 나가면 일당이 나와서 차라리 괞찮았습니다.
. 이곳 소사벌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무성한 갈대밭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지역에서만 밭농사를 지었으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갯벌에 둑을 쌓고 간척을 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었지요.
그나마도 수해와 염해가 심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수 간만의 차가 10미터가 넘었던 바닷물은 애써 농사지은 곡식을 쓸어 가버렸습니다.
막막한 삶에서 미륵은 유일한 위로자입니다.
그래서 마을마다 지역마다 미륵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원이 있었던 이유는
갈원에서 충청수영길로 빠지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군물포로 가서 충청수영길을 걷는 분기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은 승두천이라고 불리는 소사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었기 대문입니다.
조선시대 소사벌에는 두개의 다리가 있었습니다.
소사천을 건너는 소사교와 안성천을 건너는 애교입니다.
가마와 수레는 다리를 통과해야 하지요.
그래서 다리를 건너기전에 가마와 그네에 탄 높으신 양반들이 잠시 쉬기위한
국영 주막이 설치되었습니다.
조선후기 소사주막 앞에는 시장이 열리기도 하였지요.
5일, 10일에 열렸다고 하는 장에서는 삼남에서 올라오는 물산과
평택과 안성에서 생산되는 토산품들, 아산만의 어염이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 시장이 평택장으로 옮겨갑니다.
.
소사1교를 넘어가며 지금은 에게!하며 옛 소사천의 서쪽을 보고 동쪽을 봅니다.
논을 개간하면서 천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논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쪽방향에 동서로 펼쳐진 소사벌을 봅니다.
소사벌을 걸어 안성천으로 갑니다.
소사벌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두번의 전투가
이곳과 다음 안내판에 나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가장 중요한 전투가 빠져 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뒤 3년 후인 663년의 일본과 당나라의 전투입니다.
백제유민들이 부흥운동을 벌이며 현재 성환읍 안궁리와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일대에서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벌일 때
일본에서는 백제부흥군을 돕고자 3만의 병력을 전함에 태워 보냈습니다.
아산만을 지나 그 당시 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이 일대에 상륙하던 일본군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갯벌에 묶이고 맙니다.
당나라군이 불화살을 쏘아댑니다.
결국 백제부흥을 도우러 온 일본군 3만명이 흘린 피가 일대를 덮습니다.
백제유민을 완전히 괴멸시킨 당나라군대는 고구려와의 전투에 온힘을 기울여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켜
반도내 평양 이남지역의 신라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지고
결국 백제의 옛 영향권과 고구려의 옛영토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반도내에 갖힌 소국으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유천동이라고 하는 버드내마을을 지나갑니다.
조선말엽 유천동은 동쪽 마을 3동은 양성현 영통면 지역이었고,
서쪽마을 1,2동은 진위현 병남면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래된 지명이 양성버드내와 버드내(원유천)이지요.
버드내로는 충청수영로와 이어지는 길이 지나갔습니다.
진위현으로 들어온 삼남대로는 칠원1동 갈원과 죽백1동 재빼기를 지나 소사원에 당도하였고
이곳에서 갈대밭 무성한 소사벌을 지나 안성천 못미처에서 만나는 마을이 버드내,
지금의 유천동이었습니다.
유천동은 정유재란의 소사벌대첩과 청일전쟁의 격전지였습니다.
아산만을 통하여 들어온 청나라군대는 군문포와 유천동 군두포까지 진을 쳤고,
군문포 근처에는 망군대를 세웠지요.
망군대 자리에는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철교(鐵橋)가 가설되었고,
그래서 유래된 이름이 망군다리입니다.
옛길은 마을을 벋어나 약간 동쪽으로 가야합니다.
안성천교로 갑니다.
둑방으로 올라와
예전에 하천을 건너던 다리가 있었다는 동쪽을 봅니다.
하지만 옛길이 있던 곳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안성천다리.
징검다리도 없는 내를 건널수 없으니 안성천교로 다가갑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면 경기삼남길이 끝나는 지점이 되고
충청도에서 올라오면 경기삼남길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경기문화원에서 세운 이런 저런 안내판을 보며
평택역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립니다.
내일 다시 이자리로 와서 다리를 건너 삼남길 충남구간을 시작하겠습니다.
'如是我見 寫而不作 > 우리강 우리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남길 충남구간 1구간 성환천길 1. 안성천교에서 성환역 (0) | 2014.07.12 |
---|---|
삼남길 충남구간 prologue (0) | 2014.07.10 |
평택 소사동 역사유적근린공원 (0) | 2014.07.09 |
평택 배다리저수지 (0) | 2014.07.09 |
수원 서둔동 앙카라학교공원 (0) | 201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