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 정문인근에 ‘앙카라 길(Ankara-gil)’이 있습니다.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터키군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수원의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한
‘앙카라고아원’을 기념하기 위한 길입니다.
골목길로 들어갑니다.
이곳에는 이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기념비를 세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비를 볼 수 있도록 작년 이맘때 근처 서호초등학교 앞 ‘쌈지공원’으로 옮겼습니다.
터키는 6.25전쟁 당시 5천명 규모의 여단병력을 파병해 1,005명이 사망하고 2,147명이 부상했으며,
234명이 전쟁포로로 잡혔습니다.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지요.
특히 김량장(현 용인)전투에서는 백병전으로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여
1951년에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1952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투에도 최선을 다한 터키군대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비극적인 전쟁의 환경에 처한 피폐된 한국 고아들에게
보호시설과 공인된 초등교육을 제공하였습니다.
1952년 수원에서 앙카라 학교를 개교하여 1966년까지 고아들을 돌보았습니다.
연인원 700여명의 한국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교육 받았습니다.
그당시인 1953년 10월 24일 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土耳其軍人(토이기군인)의 美擧(미거)'
"수원(水原)에 주둔 하고있는 토이기부대 장병들은
전란으로 인한 한국인의 불우한 입장을 깊이 동정한 나머지
고국으로부터 보급되는 근소한 군수품등을 절약하여
수원에다 "앙카라"라는 고아원을 설립 경영하는 한편
부근일대의 걸인(乞人)또는 부동피난민 등에 대하여 식사등을 제공하고 있어.
부근 주민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한다."
신문기사에 언급된 앙카라 고아원은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서둔동 일대는 전쟁을 피해 내려온 이북 출신의 피난민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피난길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가건물에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이때 이곳에 주둔하던 터키군은 자신들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이름을 딴 앙카라고아원을 설립하여
한국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허기와 굶주림에 시달려 있는 어린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1952년부터 1966년까지 14년 동안 운영되던 앙카라 고아원은
터키 잔류중대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인수받는 기관이 없어 해체됐습니다.
앙카라 고아원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2006년도에 몇몇 독자가에 의해 이곳에 공원조성계획이 수립되었지만
기념비하나 세우는 것으로 무산되었다가
전 수원시의원의 집념어린 노력으로
서호초등학교 후문앞 쌈지공원에
앙카라고아원을 기념하는 공간이 작년도에 조성되었습니다.
과거 고아원이 있던 자리에 건립기념비 만이 덩그라니 있었으나
지금은 서호초등학교 앞 공원으로 옮겨 오고가는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옮겨 놓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터키의 한국사랑을 기억하고,
양국간 문화 공유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좁고 낙후된 골목에는 여기저기 칠을 하고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앙카라 길에 걸맞는, 터키를 상징하는 그림을 SK텔레콤 대학생 자원봉사단인 ‘SUNNY'가 맡아 그려내었습니다.
서호초등학교 앞 쌈지공원은 이제 ‘앙카라학교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서호천변을 산책하는 주민들이 들고 나며 이 기념비를 보고 있습니다.
골목을 다시 돌아나오며 그림들을 다시 봅니다.
골목 입구에서 서호초등학교로 들어가는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터키를 그려내고 있고,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동물들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계속 이 벽면의 그림들이 보수되고 정비되길 바래봅니다.
그렇게 고마움을 잊지않는다는 것이 표현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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