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제주도 한림리, 옹포리 근대유적 2

하늘타리. 2013. 8. 11. 16:56

8월 10일

 한림항 비양도 도항선 대합실 동쪽에서 옹포리쪽으로 가면서

근대의 흔적을 볼 예정입니다.

 

이 더운날? 왜?

지난 번 한림 답사가 영 미진하기 때문입니다.

 

대림리 비구물입니다.
이 물이 용출될 때는 비양도까지 날아갔다하여 비구물이라고 합니다.

 

돌담이 쌓아져 있고 

담 한 쪽에는 '面長金昶宇紀念碑'가 서 있습니다.  

 

 '飛鳩湧泉 古源今新 開此良港 厥功不忘'이라고 

이 비구물을 정비하고 옆에 항구를 열었다고 쓰여있네요.

 

돌담안에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시멘트 담을 만들어

샘이 솟는 곳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昭和九年十二月'이라고 세운 해를 표기했습니다.

 1934년이지요.

 

 예전에 이곳이 바다와 접해 있을 때는 밀물이면 완전히 잠겨서

전혀 물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합니다.
지금은 주변을 다 매립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겠지만

 아무도 이 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곳 두개의 물통과 약 50미터 옆의 통물까지 세곳 모두

지금은 애물단지 신세입니다.

 

 

 

 

 
한수리 철공소

 

일제강점시기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박관련 철공소를

 해방직후  철공소에서 일하던 한국분이 인수 하였고

후에 큰아들에게 넘겨지고 아들은 다시 동생에게 넘기었다고 합니다.

 

언제 써 붙인것인지는 모르나

1927년 도창업 1호

일정시 특수기술

스크류전문

수원철공소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원리였던 것 같습니다.
건물 지붕 양철과 외벽 삼나무가 당시 자재 그대로라고 합니다.

 

한림성당으로 갑니다.

 

 

1903년 한림공소로 시작해 1954년 본당으로 승격합니다.
한림성당 종탑은 1954년 4월 한림성당의 초대신부로 부임한

 맥그린치(임피제) 신부가 설계한 건물입니다.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53년~1954년에 부지를 매입하여 1954년 8월 22일 정초식을 하고

1955년 5월에 완공하여 1955년 7월 6일 봉헌식을 했습니다.

지상 3층 연면적 102평의 이 성당은 현무암조로 쌓은 뾰족한 종탑 건물로

당시 한림지역에서 최고 고층건물이었다고 합니다.

 

검은색의 제주석으로 지어진 3개의 종탑이 나란히 있는 고딕양식의 성당이었는데

1999년 1월 갑작스런 도시계획으로 성당 앞 도로가 확장되면서 성당이 철거되자

구성전은 허물되 제주도의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옛성전의 종탑을 원형대로 보존하였습니다.


1998년 9월부터 제주도의 도로 확장공사가 실시되면서

본당의 교리실과 사제관이 철거되었고,

이듬해인 1999년 1월에는 성당도 철거되었습니다.

성당이 철거되자 임시로 성당 옆 한림 수직사 건물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다가

1999년 12월에 본당 소유지(800여 평)와 이시돌 농촌 산업 개발 협회에서 기증한 부지(2,88여 평)에

성당·사제관·수녀원·유치원 등을 짓기 시작해

2001년 7월에 완공되어

김창렬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 및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성당건물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만 ...
임피제(P.J.맥그린치)신부가  1954년 4월 한림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된후

한림신용협동조합 설립, 4-H클럽 조직 가축은행 개설, 한림수직사 운영,

성이시돌 목장·사료공장 건립 등을 통해 농가의 자립을 지원하고
성이시돌 의원과 양로원, 복지회관 등을 세워

무료진료와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등 한평생 복지사업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직조강습소로 출발한 한림 수직사는

성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첫 번째 산하기관으로

 일본에서 면양을 들여와 사육하며

임신부의 고국인 아일랜드에서 양털 스웨터를 짜는 수녀들을 초청해

주부와 소녀들에게 직조기술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이들이 만든 담요 스웨터 목도리 조끼 등은

제주와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 비싼 값으로 판매되어 

성이시돌 양로원을 운영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한림수직사은 2004년 문을 닫았고,

공장터는 제주교구 한림성당에 기증되었습니다.

 

한림교회로 갑니다. 

 

한림 교회는 부근 바닷가에 있다가 1945년 7월 6일 미군공습에 의해 파괴되어

1946년 12월에 옛 일본신사가 있었던 이곳에 새로운 성전을 지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1989년에 새로운 성전을 지었으며 그 당시 종루가 남아있습니다.

1942년 한림교회에 부임하여 1971년까지 한림교회를 섬긴 강문호목사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 섰다고 하고

3.1 학생운동 제주거사 주동자로 1년 6개월 옥고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해방 전후 지어졌을 듯한 건물과 가옥을 몇군데 찾아 갔다가...

 

 

 

 

 언제적 지어진 것인지를 추정하지 못해 멍쪄 있다가 ...

 

본격적으로 일정시 지어진 가옥을 찾아 나섭니다.

 

한수풀 문화센터 입구 동쪽에 있는 현씨가옥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건물주가 직접 일본에 가서

원자재를 구입하여 와서 지었다고 합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한산사 절집이 나오네요.

 

 

앞에서 옆으로 돌아 또 다른 일정시 가옥을 가봅니다.

 

 

옛 한림여관으로 갑니다.

 

1930년대 지어질때 부터 1970년대까지 한림여관으로 운영했었습니다. 

 

그 후 학원등으로도 운영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개인주택으로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현관이 밖으로 돌출되고

외벽 전체가 널판으로 덧붙여 있는 전형적인 왜식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위기상 당목이었을 것 같아서 한장 꾹... 

그런데 이곳이 마두연대터였을것이다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1910년 이후 한림항이 상당히 많이 매립축조된 것을 생각하면

예전의 한림항이 어디이고

한림항 가까이 있었다는 마두연대가 어디에 있었는가는

몇번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두물입니다.

 

 한림리지경에 있었던 물은

지금 매일시장 안 창홍여관 옆구리에 솟던 솔패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었고

진동산 경에 묵은새미라는 샘있었으나 이름만 남아있고

한림교 북쪽 바닷가에 할망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메워졌고

한림문화관 서쪽에 있던 지루개 샘도 역시 매몰되어

샘과 못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한림여중 서쪽 길가에 고도물이 있습니다...만...

 반쪽이 개인집에 들어가 버려 여성전용칸만 남아있어

남성은 부근에 접근하면 않됩니다.
변태로 몰리겠지요.

 

그냥 한림리와 옹포리 경계쯤 되려나 하면서 의미없는 꾹...

 

전분공장을 봅니다.

 

이곳 옹포리 전분공장은 1951년 건립되었고

1991년까지 40년간 운영하던 곳입니다.

 

공장건물 2동 온전히 남아있고 전분 건조장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잘 보전 하면 좋을 듯 한데....

아마 곧 부수어질겁니다.

 

 

 

 

 

 

 

 

전분공장앞에서 다리 공사하는 건너편

한라산 소주 공장을 봅니다.

 

제주에서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좁쌀을 주로 사용한 오메기술과

이를 증류한 고소리술이 제주의 민속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일제강점기에 원료가 대부분 고구마로 대체되면서 희석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제주도에서도 1920년 한림읍 옹포리에 생긴 명월소주를 시작으로 지역별로 소주공장이 설립되었고,

이 때부터 탁주와 더블어 소주가 서민의 동반자 역할을 합니다.


명월소주는 1970년에

제주시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기반을 닦아오던 한일양조장에 통합됩니다.
1950년 11월 호남양조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제주시지역 한일 양조장이

정부시책으로 귀일(북제주 하귀), 명월(북제주 한림), 왕자(서귀포), 천일(남제주 표선), 남일(남제주 성산포)등 5개 양조장을

단일공장으로 통합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제주소주합동제조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어 1976년 회사명을 ‘(주)한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본사와 공장을 현재 위치인 명월소주를 생산하던 이곳으로 이전해 왔습니다.

 

그 건너편 대원자동차공업사를 잠긴 문 넘어로 봅니다.

 

자동차공업사를 본게 아니고

옛 통조림공장 부지내 건물과 굴뚝을 본거지요.

 


1950년까지 운영했다는 한림청장앞 단추공장을 들렀다가

월계사를 가보려고 했는데...

 

옛 단추공장은 전혀 관리가 않되어 곧 없어질 듯 해서이고
월계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1661년이라는 조성연대가 밝혀진 불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다가

고려시대 사찰 월계사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해서 둘러보려 했는데...


귀덕에 시간에 맞추어 갈일이 있습니다. 

옹포를 떠나 귀덕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