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리 홍예교虹霓橋에 갑니다.
명월대와 팽나무 군락은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마 이 다리는 지정되어 있지 않을 겁니다.
다리 길이는 5.2m, 다리 폭은 6.1m 로 작은 편이고
다리 입구에 '소화(昭和) 6년 3월'이라 새겨진 돌비석 4기가 있어,
건립연도가 1931년 임을 알수 있게합니다.
일설에는 이 다리가 제주향교 도훈장을 지낸뒤 이 마을 향교훈장을 지낸 월헌 오인호 선생(1849~1928)과
그의 아들인 진규씨의 학덕을 기려 제자들이 세웠다고 합니다.
두 분은 명월리 중동 자택에서 무료로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는데,
월헌 선생의 학덕은 한림지역뿐 아니라
애월.한경지역 청년들에게도 미쳤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건 좀 아닌듯 한게
오인호선생비는 명월대 앞 옛 초등학교 정문앞에 세워져 있거든요
그래서 오인호선생을 기려 만든 다리는
지금 명월대 앞에 있는 쌍홍예교의 이전에 있던 다리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기려 만들었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이름도 아름답고 그 형태도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그 밑을 지나가 봅니다
하천에서 올라옵니다.
언젠가인지 모르지만 동명리쪽에서
명월천 옆으로 판석을 깔아 산책길을 만들고 쉬어가는 정자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출구쪽이 절집에 의해서 막혀 있고
또 나무에 의해 하천이 보이지 않다보니 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폐쇄된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명월대를 갑니다.
명월대는 조선 말기 이 지방 유학자들과 시인들이 어울려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고 합니다만
명월마을청년회가 정비사업을 추진하여 축대(築臺)와 비(碑)를 건립해 놓은 1931년 이전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보이는 대는 1931년 쌓은 것으로 축대는 3단 높이로 쌓았는데
제일 아래 기단은 사각형, 다음은 육각형, 맨 위는 원형으로 현무암을 다듬어서 쌓았습니다.
원본은 수준 높은 석공예물石工藝物이었나 모르겠습니다만
콘크리트 듬뿍 뒤집어 쓰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역사적 기념물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축대 동쪽에 '明月臺'라는 현무암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昭和六年五月五日 明月里靑年會'라고 새겨져 있고,
옆면에는 '硏農 洪鍾時 書'라고하여 홍종시의 필적임을 알려 줍니다.
홍종시의 필적은 외도동 '月臺' 碑, 삼성혈의 '乾始門'에서도 볼 수 있지요.
언제인지 모르나 홍수로 옛다리가 떠내려간 후에 세웠다는
쌍무지개 다리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명월대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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