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제주도 한림리, 옹포리 근대유적

하늘타리. 2013. 8. 5. 14:06

6월 15일 사진


일제 강점기에 제주도내에서 갑자기 커진 몇곳의 마을이 있지요.
 제주시의 건입동, 서귀포, 성산포, 모슬포, 그리고 한림입니다.


 이 중 한림은 구우면 대림리의 한마을이었다가

구우면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고 읍으로 발전합니다.

그 읍소재지 한림리, 한림항 일대와 지금의 옹포천 일대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각종 군수공장이 들어서면서 발전하게되었지요.


1912년에 한림으로 해안마을을 잇는 우회도로가 개설되었고

우체국(1923년)과 근대식 병원(1925년)에 이어 다케나카 통조림(竹中缶詰) 제주분공장(1926년 또는 1928년) 등이 들어섭니다.


통조림 공장으로 갑니다.

 


이 통조림 공장은 어패류뿐 아니라 쇠고기 완두콩 등을 통조림으로 만들었는데,

제품 일부는 오사카를 통해 일본에 판매됐으나 대부분 군수품으로 납품되었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2월 이 공장은 적산으로 불하되어 그 후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영업을 마감하였고

1982년에 대원자동차 공업사가 들어습니다.

현재 높이 29m의 통조림 공장 굴뚝(철근콘크리트조)과 공장사무실로 쓰던 일식 건물이 남아있습니다만

휴일이라고 문이 잠겨 있어 밖에서 굴뚝사진만 찍습니다.

 

 

 

옹포천 건너쪽 전분공장은 멀리서 사진만 찍고

 

우에무라제약회사라고 이름하던 감태공장으로 갑니다.

 

 

요드제조업은 해조류 우뭇가사리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요드 틴키및 요드 폼 등 의약품 원료를 추출하는 것인데

 1955년까지 옥도정기(요드) 원료와 염화가리를 빼어 일본으로 수출했습니다 .

몇년전까지 소라통조림 공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위 건물 뒤쪽에 세워진 안내표석에는
"이 옹포리 39-86번지 주변은 일본인이 1942년 태평양전쟁 때에 제약회사를 설립하여

해조류인 감태로 군수용 염산가리와 옥도를 제조생산하던 곳이다.

1952년 5월 6일 한림공업고등학원 토건과와 기계과가 각각 3학급으로 도지사의 인가를 받아

한림중학교장 이기휴(李基休)가 학원장을 겸직, 한림초등학교 음악실에서 운영하였다.

 이어 한림읍장 김창우(金昶宇)를 기성회장으로 초대하여 1953년 4월 7일 문교부의 정식인가를 받아

동년 4월 19일 이 터전에서 개교식을 가졌다. 초대교장은 한림중학교장 강석용(康錫用)이 겸직으로 발령되었다.

당시 우에무라(植村)제약회사의 공장부지 2,240평과 공장 건물 72평,

또 제1창고 24평, 제2팡고 22평, 주택 36평의 일부를 수선하여 관리실과 교실로 이용하였다.

이듬해 현 한림공고 부지로 옮겨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어

감태공장 터가 한림공업고등학교 발상지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제빙공장이 있던 자리로 갑니다.
1990년 9월에  한림1리 구한림수협과 수협제빙공장앞을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해

개설한 접속도로를 지나갑니다.

 

 

 

 

 

 

 

 

여기다 저기다 말이 많으니 여긴가보다 아니 저긴가 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다시 개창동네골목길을 지나 옛 건어물시장 건물을 지나고...

 

 

 

 

 

일제강점기때의 신사가 있던 자리에 지어져 있는 한림교회로 왔습니다.

 

 

 

 

 


교회에 대해 쓸 글이 많은데 생략하기로 하고..

 

1929년 건축한 당시 濟州島警察署 警部補가 살았던 별장인 翰林淸莊입니다. 

 

건물서쪽에 자연석으로 쌓은 개인신단이 있는데
이 건물에 딸린 정원은 1990년대에 옹포리 소공원으로 개방하기도 했었지만

오늘은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전혀 관리가 않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다음에는 내눈에 보이는 것이 지금과 같지 않을 듯하여 

한장 꾹!하고 돌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