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입니다.
용이 살았다 하는곳이지요.
용담동 답사중 들렀지만 용담동 용연이라고 하면 조금 그렇고 제주도 용연이라고 해야겠지요
탐라순력도의 용담범주를 먼저 보시지요.
지도 가운데로 한내가 흘러오다 바다로 빠집니다.
하천이 바다가 만나기 직전의 모습이 꼭 항아리속처럼 생겼지요.
취병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비취빛 물에 투영되는 암벽을 거꾸로 그려놓았습니다.
취병담에서 높으신 양반들 뱃놀이를 하고 있을때 그들 눈에 않띄는 오른쪽 바다에서는
해녀들이 열심히 물질을 하고 있네요.
말 그대로 신선한 해물을 가져다 바쳐야 하니까요...
지금 서한두기라 부르는 곳은 큰내넘어있다고 이름도 대천외리입니다.
그 서쪽바다에는 용두암이 두곳이 있고요.
지금의 용두암과 아마도 1980년대 해안도로공사시 사라져버린 용마바위를 말하는 것일겝니다.
용마마을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만 참 허망한 이름이지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대독포옆에는
병문천이 바다와 만나는 벌랑포가 있군요.
파도가 넘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포구마을에 붙은 벌랑이라는 이름은 거의 일반명사나 다름없습니다.
벌랑포에서 병문천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오면 바로 여단이 있군요.
이 그림 당시의 목사 이형상은 당에 붙어서 빈둥빈둥 호의호식하는 심방과 그 끄나불들을 전부 삶의 현장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이 억울한 이들은 두고두고 이형상에 대한 악담을 했지요.
이형상은 후에 여단도 철거합니다만
위에다 철거하겠다고 보고한 후 아직 허락을 받지 못했을때의 그림인듯싶습니다.
병문천을 따라가다보면 왼쪽으로 성내서문을 만납니다.
이그림에 의하면 서문앞에 있는 지금의 용담동 중심부는 굉장히 나중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림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이제는 글로 갑니다.
증보탐라지 기록에 의하면
"용연은 제주읍 용담리에 있다. 좌우석벽이 병풍을 깍아세운듯하다. 수심은 헤아릴수 없다.
속전에 용신이 잠겨있는 곳으로 가뭄때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 취병담翠屛潭으로도 칭한다.
매해 칠월 기망旣望이면 이곳에 배를 띄어 즐기는데 이를 영주 12경의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사이는 밤의 모습이 더 좋다고 하니 밤에도 와보고 싶습니다만...
손잡고 함께 걸을이 없으니
1년에 한번 용연선상음악회가 열릴때 그 때나 와보려고 마음은 먹고 있습니다.
사진 몇장올립니다.
마애를 몇장찍었는데 잘 않보이는 듯해서 선유담과 취병담 두장은 확대를 해 보았습니다
취병담이라는 마애보다는 선유담이 먼저 인듯하고
취병담이라는 제명의 시는 1578년에 임제가 제주에 와서 읊은바 있는데
아마도 취병담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1879년 홍증징이 제한 취병담이라는 마애인데
실물을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복각된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사실 이것뿐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시문들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나름데로 바닥으로 내려가 찾는다고 찾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밑으로 못내려가게 하니
이런 저런 마애가 있다고만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하지요.
아래그림은 언제그려졌을까요?
퀴즈입니다만 맞혀도 상품은 없습니다.
왜 상품이 없느냐? 그림의 원본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지요.
아래사진은 1960년대 사진입니다만.
왼쪽모습은 지금과 별차이없습니다.
그리고 또힌장의 사진
대독포어귀에 정박해 있는 독실고 온 배의 모습입니다
용마마을로 갈까하다가 흥운동이라고도 하는 새정뜨르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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