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운동으로 왔습니다.
새정드르를 말하는 것이지요.
새정드르라....
새로 형성된 정드르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알수 있듯이
비행장확장공사로 살던 곳을 잃은 사람들이 이전해와서 다시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용흥기운의 뜻으로 흥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지금은 용담2동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마을 유래비가 있는 소로기동산으로 올라가다가 고개를 돌려 한냇도리(한천다리)쪽을 봅니다.
한냇도리쪽 보이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 쓸것도 많고 할말도 많지만 생략하기로 하고
소로기동산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노인정으로 갑니다.
진태왓한가운데 있던 동산으로 일대의 솔개들이 모두 모이던 곳이라 소로기동산이라고 합니다만
이 동산 꼭대기에 노인정을 지은것은 여러이유가 있습니다.
정드르는 이곳에서 보면 서북쪽일대를말하는 것으로 다끄네까지의 일대를 정드르라고 합니다.
사정이있던 넓은 들이라는 이름처럼 넓은 들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인 1942년에 이곳에 비행장이 들어서게 되고
확장 또 확장...
그렇게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납니다.
밀려날 사람은 다 밀려나고 지금은 공항정문 서쪽으로 다호마을 하나 남아있지요
하여간 그렇게 밀려온 사람들 중 일부가 이곳 진터왓으로 이주해 와서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갑니다.
진터왓이라는 이름은 제주민란때 이재수가 이끌던 서진군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라고 해서 진터왓이라고 합니다.
잠깐 옆으로 새서...제주 민란때 제주성으로 먼저 입성한 것은 황사평에 있던 동진군이지요.
그래서 난이 진압된 후 천주교측에서 황사평땅일대를 차지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의 정드르도 난과 관계된 곳이네요.
고려 원종 8년인 1267년에 문행노가 난을 일으켜 이곳 제주읍성인근까지는 파죽의 기세로 달려왔지만
결국 정드르일대에서 부사최탁, 왕자 양호의 군대와의 일전에서 패하고 말았지요.
하여간 정드르에서 이전해온 새정드르 사람들은 아무 보상도 없이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스트레스와 과로, 그리고 술 먹고 신세한탄으로 나이 보다 일찍 자꾸 사람들이 죽습니다.
마을의 문장이 이야기 합니다.
소로기동산에 사각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 악기운을 밟어야 한다.
그러니 그곳에 노인정과포제단을 지어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사각을 해소하자....
그렇게 노인정과 포제단이 지어집니다.
그때부터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왜냐? 어른 들이 높은 곳을 오르내리며 건강이 좋아졌기 때문이겠지요.
노인정 바로 아래있는 포제단입니다.
문이 잠겨있으니 창문을 통해 포제단을 한번 기웃거려 봅니다.
요새는 지자체지원으로 시내 많은 동에 포제단을 만들었고 포제를 지냅니다만
이곳은 정부에서 미신타파등으로 포제를 못지내게 할때도 포제를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자비를 들여 포제를 계속 지내온 곳이 삼도2동과 이곳이지요.
노인회관옆에 이런저런 기념비가 꽤많습니다만 그중 하나 경로당건립경위비석을 찍어 봅니다.
이 아래 사진은 무언가 했더니...
소로기동산을 올라간 반대쪽으로 내려와서 용담2동사무소앞에있는 용담2동 동사무소건립경위비를찍었네요.
동사무소 옆이 서초등학교이고 그 북쪽이 옛 제대가 있던 제주사대부고입니다.
사대부구는 아까 궁당에 가면서 들렀으니
이번에는 용두암쪽으로 바로 내려가기로 하고 옛사진 두장 올립니다.
황량한 가드승빌레위에 제주대학교를 지을때와 그 후 지어졌다 부수어진 본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