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용담동 다끄내마을

하늘타리. 2013. 7. 1. 23:25

공항확장으로 없어진 마을로

바닷가쪽으로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인 다끄내마을과 어영마을 중

먼저 다끄내마을입니다.

 

다끄네라는 이름은

옛날 포구를 만들려고 등짐으로 돌을지고 나르면서 포구를 닦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포구를 닦은개라 부르고

 마을을 닦은개마을이라하다가

 다끄내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수근동修近洞이라는 이름은 한자의 훈과 음을 빌어다 쓴것입니다.

 

없어진 마을 이름을 유추해서 무엇하겠습니까만

그래도 물통과  포구가 있으니 한번 살펴 보았습니다.

 

 

 

 

 

포구안에 해신당이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어찌보면 초라하기 까지 하지만 마을이 없어지기전만 해도 일대에서 영등송별굿을 가장 성대하게 치루던 곳입니다.

여기서 진행되던 영등송별굿이 건입동 칠머리당으로 넘어간거지요.

 

 

 

 

도대불도 있던것 부실때는 언제고

어느날 느닷없이 엉뚱한 모습으로 새워놨습니다.

 

 

 

도대불 앞에서 제주항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부두안을 돌아보고 마을이 있던 곳으로 갑니다.

지금은 레포츠공원으로 바뀌어 있고 안쪽 공회당터에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비를 몇년전에 세워 놓았지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예비검속豫備檢束이라는 단어는 사실 법률적 용어가 아닙니다.

단어자체가 말이 않되지요.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떤 상황에 대비해 사람들을 구속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일이 저질러 졌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제주는 ‘4·3’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젊은이들이 대거 희생됐기 때문에 새삼스레 예비검속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자 4·3의 광풍을 구사일생으로 헤쳐 나온 사람들까지 예비검속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공개된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한번이라도 집회나 시위에 참석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명단이 남아 예외없이 예비검속됐습니다.

 

4.3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사건의 원인과 사건초기의 무장대들의 활동분석에 따라 이런 저런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한국전쟁시 예비검속에 대해서는 정부는 반성하고 또 반성, 사과하고 또 사과하여야 합니다.

 

먹먹한 마음으로 위령비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다끄내 마을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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