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터미널에 내려 전주천의 지천인 건산천을 넘어갑니다.
동네길을 따라 숲정이성당을 들렀다가
그길을 주욱 걸어 숲정이 성지까지 가보려 합니다.
골목길을 걸어 숲정이 성당으로 가는 길
그길 모퉁이에 진북고교라고 쓰인 고등학교가 보입니다.
성당건물과 붙어 있는 듯해서 성당에서 운영하는 공민학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
가까이 다가가 특이한 건물생김새를 이리저리 살피다 학교를 알리는 안내판을 보다보니
1999년부터 정식인가를 받은 고등학교라고 합니다.
해방후 방촌 송동석선생이란 분이 군정경찰로 재직하면서 글놀이방등을 통해 계몽운동을 하였고
전쟁중에는 피난민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1955년 현재의 자리에 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답니다.
1987년에 실업학교를 세웠고
그후 12년만에 일반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이 안내판을 세운 2009년까지 만 삼천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숲정이 성당입니다.
1976년에 설립된 성당입니다.
1980년에 건물을 신축하여 1982년 축성을 하였습니다.
숲정이성당은 본래 이 근처에 있었던 숲정이성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1987년부터 본당주보를 발간하였는데
전주교구주보이름이 숲정이라서 주보제목을 숲머리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주보성인은 1866년 12월 13일에 21세 나이로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하신 성 정원지(베드로)입니다.
성인이1984년 5월 한국천주교회 창설200주년기념으로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셨으니
아마도 그 무렵 주보성인이 바뀐듯합니다.
성전안에서 무슨 모임이 있는 듯 사람들이 계속 모여듭니다.
그래서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성모상앞에만 서있다가 돌아나갑니다.
지름길을 찾아 골목을 지나
아파트촌 구석자리에 서 있는 숲정이 순교터로 갑니다.
병인 순교 복자 현양탑이 서 있고
숲정이순교터라는 작은 팻말과 그 앞 숲정이성지 어린이집 체험학습장이라는 안내판이 있지만
유의해서 찾지않으면 참 찾기힘들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곳을 피해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주변이 참 어수선합니다.
이곳은 숲이 많아 칙칙하여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다하여 숲정이라 불리었던 곳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순이 루갈다, 신희, 유중성 마태오, 이육희 등
전라도 신앙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가족이 처형되었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신태보 베드로, 김대권 베드로, 이태권 베드로, 이일언 욥, 정태봉 바오로,
1840년에는 홍재영 프로타시오, 최조이 바르바라, 이조이 막달레나, 오종례 야고보 등이 처형되었습니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조화선 베드로, 이명서 베드로, 정원지 베드로,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손선지 베드로, 한재권 요셉 등이 처형된 곳입니다.
이중 병인박해 때 순교한 6명이 1984년에 시성되었고,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순교자 11명이 시복 대상자로 현재 교황청 시성청에서 심사 중에 있습니다.
이곳 숲정이 순교터는 1930년대 초, 이명서 성인의 손자인 이준명 아나톨이 400여 평의 순교터를 매입한 후
1935년 6월에 이학수 바오로가 이곳에 '천주교인 순교지지'라는 '십자 기념비'를 세웠고,
1960년에는 전주교구에서 순교자의 정신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킬 목적에서 해성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968년 10월에는 이곳에 병인 순교 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고,
1984년에는 지방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천주교 전주교구는 해성학교와 인근 순교터를 건설회사에 매각하였고
건설회사는 1992년 해성학교가 이전하자 해성학교와 순교터가 있던 이곳에 대단위 아파트를 건립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숲정이성지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남서쪽 약 200미터정도에 있는 윤호관앞에 새로 조성하였으나
순교터를 잃고 애석해 하는 신자들의 모금으로
아파트 쉼터의 일부로 쓰이고 있던 이곳을 1994년에 매입하여
1998년 복자현양탑을 다시 세웠습니다.
숲정이 성지입니다.
이곳은 해성학교 학교체육관으로 사용하던 윤호관이 있는 곳으로
1992년 해성중고등학교가 이전할때 이곳 1500여평을 확보하여
기념비와 현양탑을 옮겨 성지를 조성하였으며
1997년 축복식을 거행한 곳입니다
정조 15년(1791)에 일어난 신해박해, 순조 1년(1801)의 신유박해, 순조 27년(1827)의 정해박해,
헌종 5년(1839)의 기해박해, 고종 3년(1866) 병인박해 때
전주지방에서 순교한 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윤호관은
18세의 나이로 전주 서천교에서 순교한 조윤호 요셉의 이름을 따와
청소년들이 다니던 해성학교의 체육관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지금은 전주 신학원이 운영됩니다.
옮겨와 자리잡은 순교의 땅 표시를 멍하니 바라보다...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성지를 나서며
다시 암송을 시작합니다.
어머님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Thomaso Antonio Vitali
Chaconne in G minor
David Oistrakh,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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