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구분이 않됩니다.
참나무가 많았던 곳이다해서 참남거리인줄 알았더니, 참랑거리랍니다.
그 의미를 알기위해...
한국말을 필담으로 나눴는데...
그 의미는 모른다 하시네요.
두기의 효열비
먼저 김광삼처 최씨효열비
억수로 가난하게 살던 한 여인이 더 가난한 김광삼에게 시집왔으나
남편이 시모와 아이 둘을 남기고 27살에 죽으니
고생고생하며 시모를 봉양하고 아이를 키우던중 시부기일에 제수가 없어 고민합니다.
이때 날아가던 매가 꿩을 쳐 떨어뜨리고 가니 이것으로 시부의 제사를 지냈답니다.
마을사람이 하늘의 도움이라 감탄하여...bla bla bla..한숨만 납니다..
處士金孟元妻貞烈金氏之閭
하 답답한 내용이라...
그냥 2001 탐라의 효자열녀전에 쓰여있는 이야기를 옮깁니다.
김씨는 김맹원의 처이다.
시집온 지 1년만인 나이 20에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애통함이 그지없었다.
삼년상이 끝나는 날에 목을 매어 죽으려고 하였으나
시부모가 울면서 달래기를 '네가 만일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목숨을 보전하겠느냐?' 하므로,
김씨는 뉘우치고 딴 마음 없이 힘을 다해 시부모를 공양하다가
돌아가시자 예제(禮制)를 다하였는데 삼년상이 지난 뒤에 목을 매었다.
사람들이 여러 번 그의 정절을 천거하므로 군수가 가상히 여기고 조정에 보고하였다.
삼강록에 수록되었다.
애국지사 사은 현주순충혼비
길을 건너 궤물동산으로 갑니다.
2009년에 느닷없이 세운 영등할망상
제주전역에 퍼져있는 설화에 영등이 복덕개로 들어온다 했어도
귀덕 마을 자체에서는 영등에 대한 그 어떤 기념 또는 신앙행위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9년에 지원금으로 궤물동산을 정비하면서 느닷없이 영등할망을 세워놨습니다.
마을 자체의 설화가 없으니 칠머리당 영등굿 사설에 의지해서 귀덕리 느낌표, 복덕개 느낌표 딱딱
그런데 여기는 궤물동산이잖아요.
궤물동산의 상징으로 만든 물통인가 봅니다.
흉물스러운 콘크리트수조
그 앞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물통이나 정비를 잘 해주세요.
해안변을 걷다가
원담으로 가는 길
원담
어느분은 논알원이라 하시고 어느분은 병단원이라 하십니다.
이 마을에 원담이 열개넘어 있었다 하니
사용하지 않는 지금 그 이름이 당연히 헷갈리실겁니다.
보통 1.5m의 높이로 원담을 축조하면 밀물에 물고기가 들어오는데
어종은 주로 멸치, 독가시치, 벤자리 등이었고
썰물때 물이 빠져 갇힌 물고기들을 족바지를 이용하여 잡았다고 합니다.
무너지는 옛 방파제
눈길이 가는 곳마다 물통이 있습니다.
이일대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지기전 꽤 큰 소금밭이 있었답니다.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열두물에서 네 물 사이 약 3일 간,
‘당그네’라는 나무 연장을 이용 소금밭의 모래를 밭갈이 식으로 갈아 놓고 뙤약볕에서 되풀이하여 갈아엎으면,
소금함수를 품은 농축 모래가 되는데,
이 모래를 높은 지대의 모살터로 옮기고 덮개를 씌워서 비바람을 막아 보관해 두었답니다.
날씨 좋은 날을 골라서 ‘서슬’이라는 침전 장치에 넣고
바닷물을 저장해 두었던 저수지에 해수를 길어다 붓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슬 밑에 있는 웅덩이로 농도가 높은 함수인 곤물이 흘러내린답니다.
이 곤물을 가마솥에 놓고 하루 정도 열을 가하면 소금이 되는데
이 소금을 제주 전역으로 돌아다니면서 팔아서 생계를 이끌어갔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소금밭옆에 있었다 하는
또다른 물통
옛 가공공장? 또는 양식장?
진질개 도대불
마을어른의 말에 의하면 허물어져 있던 것을 1985년 포구가 확장될때 다시 쌓았다 합니다.
다시 쌓은 후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을텐데...
불을 켜는 심정으로 올라가 주변을 봅니다.
내려와서 옛 가공공장 담벽 창틀사이로 다시 한번 보고
건너편 방파제에서도 다시 한번 보고...
방파제끝에서 누군가가 손짓을 합니다.
어촌계에서 한수풀해녀학교를 열때 한림읍지원으로 만들어 세운 해녀상입니다.
해녀상뒤로 보이는 서여복일대
한수풀 해녀학교
운영이 잘되길 바래봅니다.
귀덕2리 마을회관주변입니다.
마을안 광장인데...
이곳은 포구를 확장할 때 조간대를 매립한 곳이라 합니다.
오른쪽 국제결혼상담소앞을 지나는..
포구에서 잣질동네까지 이어지는 진질이 있었다 하고
그래서 이동네 이름도 예전에는 진질마을이었다 합니다.
마을 중심부를 지나와 다시 해안도로옆입니다.
집의 담벽이 꼭 성곽같습니다.
해운사쪽으로 가는 길변 돌담이 환해장성의 흔적 같습니다만
우거진 잡풀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해운사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조그맣게 유지해오다
2007년도에 대웅전을 낙성한 태고종 절입니다.
삼존불을 뵙고 나옵니다.
별도 포스팅하기로 하고...
절집앞 굼둘애기물입니다.
바위틈에서 생수가 솟아오르는데 물이 풍부하고,
여름철과 백중날 이곳에서 목욕하면 잔병이 없어지는 약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인어에 얽힌 전설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있는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언제적인지 모르는 옛날 귀덕 앞바다에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물고기인 인어(人魚)가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인어는 낮에는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며 놀다가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면 마을 앞 큰여에 올라가 쉬었다고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이 인어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피해를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보아도 못본척 그렇게 지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덕리앞바다로 커다란 물고기들이 몰려옵니다.
바다 속에서 여유롭게 헤엄을 치던 인어는
큰 고기들의 습격을 받고 쫓겨 다니다가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큰여에 올라 숨을 돌리던 인어는
만신창이가 된 자기몸을 치료하러 사력을 다해 약수가 나오는 라신동앞 용천수로 다가옵니다.
인어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용천수에 몸을 던져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인어가 마을 앞에 모습을 드러낼 당시 용천수 주변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빨래를 할 때였는데
상처입은 인어가 나타나자 자리를 비켜준 것이 었습니다.
긴 시간동안 상처를 씻으면서 마을사람들이 다가왔다가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인어는 그동안 자신의 모습을 마을사람들이 보았으면서도
해꼬지않하고 위해주었음을 알게됩니다.
인어는 마을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느끼게 되어
마을을 향해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꾸벅 올리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합니다.
그 후로 이 용천수에 몸을 씻은 사람들은 신비하게도 잔병이 없어졌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날 부터 인어 대신 거북이가 바위 위에 올라와 마을을 향해 인사하고
물속을 노닐다가 바다를 향해 떠나가곤 했다곤 합니다.
이렇게 이물에 거북이가 나타나는 해에는 라신동에 경사가 생긴다고 합니다.
굼둘애기란 제주어는 물오리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닷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가는 모습을 뜻한다는데
인어가 물오리처럼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하여
이물을 굼둘애기라 부르게 된 것 같다고 합니다.
라신동표지석
그 앞 소못(牛池).
누구는 금들애기물이 원래의 소못이라 하고 누구는 용운동포구에서 나는 물이 소못이라 합니다.
그럼 이물의 이름은 ?
용운동포구 바위밑에서 용출하는 물
용운동포구에서 우지연대로 가는 길가 밭담속의 재활용물품
우지연대
해운사 동쪽,
마을사람들이 망밭이라고 부르는 구릉위에 있습니다.
이 연대는 1976년 복원한 것이랍니다.
테두리에 심석을 엇물려 놓은 후 돌로 쌓아올린 사각형구조물위를 평평하게 마감하고
층계 오르는 부분을 제외하고 돌담을 한번 더 둘렀습니다.
그런데 마을 어른들중 일부는 이 연대의 모양이 타원형이었다고 하십니다.
4.3전 까지는 원형이 남아있었는데
4.3당시 마을성담을 쌓을 때 허물어서 가단만 남았다가
1975~6년경 제주의 연대를 일차복원할때 전부 같은 모양 사각형으로 쌓아올렸다 하는데...
그런데 몇년전 저와 대화한 그 분의 고향이 이곳 귀덕이 아닙니다.
이 마을에서 아니다라는 분도 있고 모른다는 분도 있고 사진이 없으니 알수가 없지요.
차라리 무너진 그상태 그대로 기단만 남겨놓았다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
원형을 바꾸는 복원을 할바에는 무너진 상태로 놔두길 바랍니다.
들어주는 이 없어도 소리쳐 봅나다.
귀덕 3리로 가는 길
통정 김려관처 효열이씨지려
아까 창랑거리 비석과는 달리
잘가꾸어 진
석재홍살문에 기죽어 조용히 지나갑니다.
버들못인가?
귀덕3리 마을회관입니다.
신흥동시절의 허망한 공덕비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귀덕3리는 마흘동과 한교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방직후까지 귀덕4구였다가 1951년부터 신흥동으로 불리었고
1963년 신흥리로 되었으나 1997년 다시 귀덕3리가 되었다는 마을입니다.
馬屹洞은 높은 지대에 말(馬)들이 많은 남쪽 동네라하여 멀왓이라고 불리며
한교동은 마을 모양이 하늘에 닿은 다리(中天多橋)와 같다하여 한다니(多橋洞)라 불렀고
지금은 한교동(漢橋洞)이라고 부른 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봐야 마을전경이 하늘에 닿은 다리 같을까 하면서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데..
한교동 하늘위로 무지개가 뜹니다.
저 무지개가 하늘로 가는 다리일까요?
오늘 하루의 위로!!
감사합니다.
귀덕리 답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