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절오백 당오백

전통문화연구소와 함께한 당올레 기행 네번째 3

하늘타리. 2011. 6. 29. 11:42

애월입니다. 

 

답사코스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점심먹으려 들렀습니다.

 

개항기념비

 

1971년에 1종항으로 지정되었고

1982년에는 목포까지 배가 운항하였고

1995년에 연안항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올라앉은 바위가 참 예쁘네요.

 

내항 저쪽에 도대불이 보입니다.

 1930년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쁜 도대불이 있었는데

2003년도에 정비한다면서

느닷없이 저모습을 만들어 놨습니다. 

 

거의 모든 정비가 마을에서 주관하여 마을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행정에서 일률적인 모형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라서 원형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조형물이 하나 새로 세워집니다. 

 

애월리 해신당입니다.

식사후 이야기들 나누시는 사이

혼자 털레 털레 걸어 왔습니다,

 

 

 

잠녀와 어부들을 수호하시는

여러해신을 모시는 곳인데

마을 포제 다음날

어부와 잠녀들이

다섯그릇의 메를 준비하여

일반 제사와 유사하게 제를 지냅니다.

 

 

 

 

 

납읍리 입니다. 

 

과납서당

향회재현마을이라는 현판을 보니

마을의 분위기를 알수 있지요.

 

몇몇 마을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로

納邑이라는 마을 이름은 큰 고을을 들일 만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납읍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 2km 반경내에

곽지, 애월, 고내, 상가, 하가, 어음, 봉성 등 7개 마을이 병립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곽지도 그렇고 애월도 그렇고

자기마을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을 보면 그 마을이 중심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납읍이라는 한자가  큰 고을을 들일만한 곳이라는 뜻이라면

납읍리 한마을을 말하는게  아니고 

이 7개 마을을 포함해서 큰 고을 납읍이 되는거라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마을의 설촌이야기를 들어보면

납읍의 최초입주지는 곽남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근동에서 모여 마을을 이루어

1300년 경에 곽지남동(郭支南洞)이 되었고

이것을 약하여 郭南이라고 호칭하였답니다.
곽남이 과납으로 불리어지고 마침 마을출신자 중 과거에 급제한 이가 생기니

과납을 科納으로 쓰고

科자를 과거의 뜻으로 결부시켜 과거에 합격하는 마을이라는 한자 리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지 참조).

  

나름 여러가지 이유로 반촌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한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월인사, 청용사, 고광사 등 절이 네곳이나 되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중 사장못옆 청용사는 70년대 중반에 하귀에서 옮겨올 만큼

이 마을 사람들의 불심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마을의 불심이라는것을 설명하기 어려운데 ...
이게 당신앙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몇곳의 절은 당자리에 들어섰다고도 하고
지금 가장 불사를 활발하게 하는 월인사같은 경우

1961년에 창건되어 재가불자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하나

1988년 주지로 부임하신 스님이 

토굴같은 곳에서 당인지 절인지 구분도 않되고  당에서와 같은 기복행위만 있다하여

절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납읍에는 바구사니우영에 돗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납읍주민이 다니는 당으로 어음리 홍골물옆에 목축신을 모시는 산신당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구사니우영안에 송씨할망을 모시는 돗당에 갑니다.


 

 

 

 

 

 

 

 

 

 

 

 

 

 

 

 

 

 

 봉성리입니다.


예전에는 통상 도노미라고 불리웠던 마을입니다.
고려 공민왕때인 1352년 무렵 기록에는 도내리, 도내산리로 표기되어 있고

고종 32년(1895) 제주도 행정구역 개편시 도내산리를 어도리로 개명하였다가

1993년 4월 어도리를 봉성리로 바꿨습니다.


지세나못입니다.

 이 연못때문이라고 합니다만

이 자연마을의 지형이 거북이가 진흙에 빠진 형이라 하여 구몰니동(구몰동)이라 합니다.

 지금 가는 당이름을 그래서 구머리당이라고 합니다만

 갑자기(엉뚱하게) 삼성그룹의 태평로 빌딩이 생각납니다.

그 건물이 지어진 땅의 지형이 거북이 진흙으로 몸을 감춘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으로

거북이 진흙 속에 빠지면서 생긴 기가 땅으로 올라와 재물을 많이 쌓게 되는 명당이다라고

 자칭 타칭 풍수전문가들이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이마을에도 곧 재물이 많이 모일것으로 기대하겠습니다.

 

 구머리 송씨할망당 입구에 방사탑입니다. 


금성리 방향 바닷가 허한 벌판에서 불어오는 삿된 기운을 막고 서 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느낌이라고요?
아닙니다.
반쪽이 없어진 것을 남아있는 부분을 그대로 살리면서 측면을 보완한 것 입니다.
남아있는 부분을 살리면서 측면을 쌓다보니 고생을 몇배로 더 했을 겁니다.
이제 돌들이 고정이 되었으니 오래오래 마을을 지켜주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밭을 지나  당으로 갑니다.

 

 

 

구머리 송씨할망당
 

 

 봉성리일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당입니다.

4.3후 마을을 재건하면서
남아있는 이당에서 목축을 주관하시는 산신도 모시고

산육과 치병을 주관하시는 할망을 모십니다.

 묘일당이라고 하지만 마을당궐들은 특별한 제일없이 생기맞는날 다니신다 합니다.

 지전물색을 걸어놓은 신목앞에 덤블이 점점 우거지고 그 것을 쳐내지 않다보니 당이 점점 좁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