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내봉 올레길입니다.
하가리 인지 고내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적도를 떼면야 자세히 나오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고
고내봉 큰신머들에 있는 당
통상 상가리 하르방당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고내봉입구 강씨 세장비 비석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편할 듯 하지만
그길로 가지 않고 둘레길을 조금 더 가서
예전 상가리 사랍들이 다녔던 그길을 따라 올라가려 합니다.
그런데....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고...
잡목이 나랑 놀자며 계속 붙잡는 바람에
고생 고생하며 올라갑니다.
고내봉 중턱에서 뒤돌아 본 상가리
하가리
한라산을 잡고 또잡고
큰 머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머들이 아닌 다른 머들로 가야죠.
앞으로 돌아서 약간 우측으로 가면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입니다.
당이름에서도 볼수 있듯이 새당 하르방당입니다.
새로 만든 당이고
하르방들만 계신 곳이지요.
언제적이 새당이냐?고 물으신 다면..
오당에 계시던 목축을 관장하시는 산신백관과 초립동이를 모셔왔을 때가 새당이지요.
그리고 오당에는 송씨할망이 일곱아기 단마실정을 거느리고 좌정하신거지요.
송씨할망이 오셔서 비켜준것일 수도 있고
먼저 자리를 이리 옮겨 오신것일수도 있지요.
쉽게 말해서 목축이 주업이던 곳에 농경이 들어오면서 목축의 주무대가 바뀐 겁니다.
산신백관과 초립동이가 먼저 와 계신곳에
고내리 본향 큰당에 있는 호국산신 황서, 국서가
일대주민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시키고 짐승처럼 부리는 김통정이를 쫓아낼때
이를 도와주러 왔던 을서, 병서가 좌정합니다.
그리고 서제동궁이 산천 경계 유람 중 장소가 하도 좋고 정결하다하여 함께 입참합니다.
그런데..
서자동궁(庶子東宮 : 세제동공, 서제동궁)은 누구일까요?
여기 안내판에 보면 문무병선생님 해석에 따라 천연두의 신이라고 쓰여있는데..
그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제주의 당은 언제부터 생겨났다고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육지부처럼 불교가 당신앙과 무속신앙을 흡수한 게 아니고
당이 불교와 무속을 습합하여 유지되어 내려왔습니다.
서자동궁이라는 말은 무속의 해석으로 보면
자미원의 중심에 있는 북극오성에 속한 서자성의 책임자로써
새로이 별상이 될 신령을 일컫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 안내판에 써있는 천연두의 신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지요.
그리고 우리는 서자(庶子)의 개념을 적서(嫡庶),
즉 본처(本妻)의 아들을 적자(嫡子)라 하고, 첩(妾)의 아들을 서자(庶子)라고 칭하는 이른바 유교식 해석에만 익숙해 있습니다만
원래 고사에서 쓰이던 이 서(庶)라는 용어는 ‘뭇(=중(衆)’이 원래 기본 뜻입니다.
그러니까 뭇사람으로 부터 추대받은이가 바로 서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뜻은 춘추전국시대 상앙의 기록에서도 알수 있듯이
군주의 총애하는 가신을 서자라 하였습니다.
나 혼자만 이런 저런 생각하기로 하고 넘어가지요.
지금은 누가 계신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당에 다니는 분들도 누가 계신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 자손 잘 그늘루게 해달라는 바램으로
영급좋은 당을 찾아다닙니다.
지금은 당 주위가 영 스산합니다만
잡목과 잡풀이 우거졌던 이 곳을 하가리주관으로 깨끗하게 청소했나봅니다.
주변이 안정되면 분위기가 꽤 괞찮을 것 같습니다.
당 한구석에 마을 경계 표지가 있습니다.
하가리와 고내리를 구분하는 표지인듯 합니다.
표지앞에서 하가리 더럭초등학교를 보고
그 앞 연화못도 보고..
연화못위로 연잎이 덥혀서 꼭 채소밭처럼 보입니다.
연화못으로 갑니다.
Enya- China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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