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길리입니다.
본향 당팟 일뤠할망당으로 갑니다.
중산간 지역은 주로 치병을 담당하시는 할망이
마을의 도주관(토지관)역할도 함께 하십니다.
갯것이라고 불리우는 어촌 마을사람들, 그리고 사농바치나 테우리 들은 남자들도 당에 다녔습니다만
반촌이라고 하는 농경을 하는 마을에서는 당에 다니는 사람은 주로 여성입니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생활하면서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하소연하고자 할망당을 찾아갑니다.
제주의 남신들은 마을에 흉험을 주어 자기를 나타내려 하지만
제주의 여신들은 자기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는 여인네 곁에서 같이 눈물 흘리며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해 줍니다.
할망이 나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주고 달래준다는 생각이
의지할 데 없는 제주의 여인네들이 당을 찾아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산육과 치병을 담당해주시는 일뤠할망을
자연스러이 도주관인 본향신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곳 소길리 본향당에는 소앵동 황다리궤 송씨할망의 첫째따님인 또 다른 송씨할망이
장씨하르방과 함께 좌정해 계시면서
산육과 치병 그리고 생산, 물고, 호적, 장적을 관장하십니다.
몇 년 만에 왔는데.....
신목인 왼쪽 팽나무 한쪽 나무 가지가 부러져 있습니다.
350년 된 보호수라고 안내판을 세워놨습니다만 부질없는 일입니다.
당으로 들어가는 올레에도 잡풀이 가득합니다.
신목이 부러지면 영험함을 잃었다고 당궐이 끊기는 경우가 있던데
이곳도 그런 케이스인가 봅니다.
한 가지 뿐이 안남은 신목입니다.
안쓰러워서 찍고 또 찍습니다
.
나무 가지밑둥에 물팡을 닮은 제단이 있는데 풀이 우거져 제단위 판석만이 보일 뿐입니다.
옛날 같지 않지만 그래도 일부의 지전과 물색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입니다.
부러진 가지 쪽에서 올라오는 버섯이 내 마음을 또 안쓰럽게 합니다.
버섯이 피어난다는 것.
그것은 자연에 의하여 소멸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얼굴에 피어나는 검버섯이 그리 슬퍼 보이는 가 봅니다.
가지 윗모습을 찍고 또 찍고
고영철님 사진첩에서 당당하던 당의 옛 모습을 꺼내 봅니다.
멀지 않은 곳에 큰 암석이 있고 그 밑으로 큰 궤가 있습니다.
그곳을 덩덩굴이라하고 그곳에 장씨하르방이 계십니다만
아무도 찾지 않아 궤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늘은 그냥 지나칩니다..
길을 건너면 방사탑이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삿된 기운을 막아준다고 세운 것인데
윗면 생이의 모습을 보니 방향이 당을 향해 있습니다.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한기씩 있었다는데
길을 건너기전...당쪽에서는 그 흔적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장전리본향 능선이 고지물 일뤠할망당으로 갑니다.
장전초등학교앞을 지나
동쪽다리건너 나지막한 동산을 빙둘러가면
돌담으로 울타리를 쌓고
자연석으로 계단을 만든 당이 있습니다.
일뤠할망과 산신백관을 모시고 있습니다.
신목이었던 팽나무가 고사하여 새로 팽나무를 심어 고정을 해두었습니다만
지전 물색은 담을 타고 가는 송악에 걸려 있습니다.
당을 나와 마주보이는 능선이 고지물
한때는 참으로 정성껏 가꾸어 그 주변에 제피나무 울타리도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지금은 점점 메워지고 있는 물통일 뿐입니다.
용흥리로 갑니다.
새로 지은 이름의 분위기가 풍깁니다.
한때는 중엄에 속한 마을이기도 했고
사방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송냉이(松浪伊)라고 일컬어지던 신엄3구였습니다만
1952년에 신엄리에서 분리되면서 용마루(龍旨) 동산의 정기를 상징하여 마을이름을 용흥리로 하였다 합니다.
저한테 이 마을은 아름다운 못으로 기억되는 마을입니다.
기행식구들이 진빌레 일뤠당으로 가는데 그쪽을 따라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뜁니다.
그나마 길옆에 있어서 만나기 쉬운 새중이물을 보려고 하는 거지요.
오래간만에 만난 새중이 물입니다.
이곳 말고도 어생이물, 어욱못과 샘, 그리고 있다고는 하는데 못 찾은 볼레물이 기억납니다.
혼자서 당으로 가는 중 만난 올레길과 초가
옛기억을 부수고 있습니다. 그게 마을발전이라니 감수해야지요.
밭잣너머로 송씨할망이 좌정하고 있는 마을의 본향 진빌레 일뤠당이 보입니다.
산육과 치병신이자 마을의 도주관이 계신
진빌레 일뤠당입니다.
다시, 진빌레 일뤠당입니다.
또, 진빌레 일뤠당입니다.
아무리 진빌레 일뤠당이라 외쳐드려도 이제는 흥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당을 정비했다하면서 옛 자연석 비석을 없애고 비석을 다시 세웠습니다만
애매하게 본향지신위라 써놓고
이제 그 비석앞 제단에서 포제를 지냅니다.
당굿을 준비하는 당집을 지었다면서 포제시 포제청으로 씁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이 횡포, 이 수난,
신앙의 영역이라 타지인이 무어라 할 수 없고
막을 수가 없음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당을 나와서 방사탑으로 갑니다.
제가 알고 있기에는 마을 서북쪽 상뒷마루와 동북쪽 진빌레에 방사탑이 각각 1기씩 있습니다.
마을을 보호한다는 의미와 부부의 금슬을 나타내는 의미로 웅탑과 자탑으로 마주 세웠습니다.
그 중 자탑이 있는 곳입니다.
웅탑은 꽤 멀리 있다고 알고 있는데 바로 당 앞집 벽에 기대어 있다 합니다.
그 집 담벽에 가서보니 제가 보기에는 방사탑이 아닙니다.
그냥 또 하나의 방사탑, 웅탑은 조금 멀리 상뒷마루에 있다고 생각하려고 아예 사진조차 찍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집 마당에 있는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다는 물통을 찍습니다.
용흥리를 떠납니다.
광령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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