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상가리

하늘타리. 2011. 6. 8. 13:50

상가리입니다.

아니. 하가리입니다.

아니. 상가리 입니다.

상가리지경에서 상가리민들이 세웠던 하가리 답다은목 사탑을 봅니다.

 

상·하가리는 '웃더럭'·'알더럭'으로 불리는 마을입니다.

더럭이라는 마을이름의 유래는

연화못(하가연못)을 둘러싼 두둑의 형태가 한자의 가(加)자 모양이라서

거기에 즐거울 락(樂)자를 붙여 상·하가락리(加樂里)라고 한 것을

加의 뜻을 따서 '더락→더럭'이 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럭마을의 더럭의 뜻을 알수 없기 때문에

한자이름이 먼저 생기고 한글이름이 뒤에 생겼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말이 좀 애매합니다.

 

고내현 가락촌으로 등장하는 조선시대에

가락이면 가락으로 읽었거나 약간 음이 바뀌었겠지

새삼스러이 한자이름을 이두식으로 읽을리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럭마을의 더럭을 한자식(漢字式)으로 쓴 것이 가락(加樂)일 것이다라는 의견에

한표 던지고 마을길을 걷습니다.

 

상가리 방사탑은 지금의 지번은 하가리이지만 상가동동(東洞) 사람들이 세운 것입니다.

 자·축방(子丑方)이 虛해서 방사탑이 있어야겠다고 400년쯤 전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합방직후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컸었다고 하는데 

 1930년대 중반부터 길을 계속 확포장하면서

한 2미터씩 몇번을 옮겨지다 보니

탑도 작아지고 지번도 하가리지경이 된듯하다 합니다.

 

2001년도인가에 정비를 하면서

허물어져 있는 높이 그 부근을 시멘트로 마감하고

그 위의 돌을 세워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합니다.

 

 

상가리 동동 표지석

동동마을 올레앞의 나무도 기가 막히지요.

 

표지석 앞에서본 고내오름

 

천년폭낭으로 갑니다. 

 

일부 식물학자는 850년에서 900년 사이라 추정합니다만

안내판에서 쓴 글에 의하면

수령 1000년된 도내 최고령 어른이십니다.  

 

이 팽나무는 누운 형태에서 윗몸을 일으키신 것 입니다.

 

1959년 사라호 태풍때

강타당해 쓰러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윗몸을 일으켜 세워 오늘까지 건장하십니다. 

 

승천하려는 용이 잠시 이곳에서 기력을 보충하고 계십니다. 

 

해방전 까지만 해도  

이 곳에 팽나무가 우거져 폭낭거리로 유명했었다 하고 

 

나무 가지만을 이용하여 골목끝 집있는 곳(당시 대나무밭)까지 갈수 있었다 합니다.

 

이마을 최고령 강선생댁 담장안에 있는 귤나무

 

 

도련동 감귤나무보다 더 오래되어 보입니다.

 

마을어른의 도움으로 안으로 들어 가 볼 수 있었습니다.

 

1994년에 향토재래귤나무로 지정은 받았습니다만

 

그후 아무런 관리 등을 해준적이 없어 지정사실조차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튼튼하게 실한 꽃을 피어냅니다. 

 

 

하운암앞 

500년이상된 후박나무 입니다.

 

사람이나 나무나 위치를 잘 잡아야 합니다. 

 

다른 동네, 다른 곳에 있었다면 500년이상된 후박나무라 하여 그 대접이 지극할 것이지만

이 곳 상가리에서는 천년폭낭이 있는지라 500년 후박이란 명함도 못 내밀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와서 뒷면 하운암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던 머들지대를 밀어서 평평하게 만들어

마을운동장을 만들겠다는 바람에

밀려내려온 잡석과 흙으로 나무 뒷부분이 절개지나 다름 없습니다.

 

굉장히 마음이 않좋습니다.

 

포제단으로 올라갑니다. 

 

이곳도 2009년도에 행정에서 1억원을 지원받아 

예전시설을 다 헐고 다시 지었다 합니다.

 마을 공동의 간접시설은 당연히 지원받아 만드는게 마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만

마을의 안전을 비는 의례시설은 자기주민의 돈으로 지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포제단에서 마을을 내려다 봅니다.

 

중산간 마을에서 드물게 나오던 용천수로 갑니다.

 

 지금은

잡목과 잡초에 덮혀

식별이 어렵지요.

 

 잘 찾아보면 물통이 있습니다

 

여기는 도로 위편에 봉천수를 모아두던 곳입니다.

 

마을의 생명수 였지만 

 

지금은 모기들의 천국입니다.

 

마을 보건진료소

 

참 정겹지요.

굉장히 친절하실것 같아요. 

 

상가리 흥학비

아니 하가리 흥학비 안내표지석

 

애월농협 간이집하장 앞에 있습니다.

순조33년 癸丑, 道光13년, 1833년에 한응호 목사에 의해

제주시 화북 동학당, 제주시 오등동 남학당과 같이 건립된 서학당이 있던 곳입니다.

서학당의 유적과 유물은 거의 소실되고 그 후학들이 西學堂址에 세운 흥학비만 남아 있습니다.

그 안내표지석입니다 

 

 이 서학당지의 흥학비는 감귤선과장 신축공사로 파헤쳐졌다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세워졌습니다.

 

비석전면에는 使相韓公應浩興學碑라고 쓰여 있습니다  

 후면에는 제주도청자료에 道光十四年九月이라고 새겨져 있다합니다.

 

사장밭이 있던 곳에서

고내봉을 쳐다봅니다.

 고내봉 큰신머들에 상가리 하르방당이 있습니다.

그곳도 지경은 하가리라 하네요.

 

하르방당으로 가기위해 고내봉입구로 왔습니다.

 

 연꽃 구경을 하며 잠시 쉬겠습니다.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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