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마을입니다.
1899년 제주군읍지에 월산리가 처음 보입니다.
1914년 제주면 노형리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형이 반달 모양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월산이라 했다고 합니다.
마을 안내판을 한번 보시지요.
이 마을은 식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랑을 파서 빗물을 모아서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새비리 서쪽으로 흐르는 도감내(도근내)냇가 도평동지경의
곱은기(고봉기)라는 물과 검은소라는 물로
몰음 사람들은 마을 서쪽 녹남당물로
뱃밭 사람들은 석숙이 물로
모두 인근 마을 꽤 먼곳으로 물허벅을 등에 지고 빨래거리 손에 들고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이런 여건에서 수도시설사업은 월산마을의 숙원사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설치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1962년 연동에 상수도가 보급되고서도 2년후,
제주중심부가 상수도 혜택을 받기시작한지로 치면 7년후에 인근 월랑에 수도가 가설되었고
이어 원노형에 일본교포의 성금 60000원으로 2곳의 급수전이 설치되고
정존은 월랑보다 2년후인 1966년에야 군 대민지원 사업으로 수도가 연결됩니다.
당시 열안지가 수원지인 수돗물이 연동을 거쳐 월랑까지 설치되었던 급수전에서
1800미터 파이프로 연결하여 정존마을내 3곳에 급수전을 설치하게 됩니다.
부러웠겠지요...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 재일교포의 도움으로 공동수도를 설치하게 됩니다.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뜻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후 1972년 전후 인근마을에는 마을부담으로 하여 전등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던 시절.
전기가설을 위한 공금조성을 꿈도 꾸지못하고 있을때
타국에서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성금을 보내주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준 재일교포들의 은공을 기린 송덕비입니다.
몰음 마을로 갑니다.
월산 남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습니다.
지금 서부산업도로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남양 홍 씨가 설촌했다고 합니다.
몰음은 몰(말의 고어)의 음(재갈의 쇠붙이)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몰음을 약간 지나쳐 뱃밭마을입니다.
집집마다 하늘타리를 문에 묶어두어 귀신을 쫒고 있습니다.
제주 북동부지역에만 이 풍습이 있는지 알았는데 이쪽에도 그렇게 하네요.
다시 몰음 마을 옛 중심가
폭낭은 그 언제적 나무일지 모르나
주변 집들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1960년대 이후의 건물입니다.
왜냐고요?
이마을 월산의 150호의 가옥
특히, 몰음과 뱃밭 마을의 가옥은 4.3때 한채도 남기지 않고 다 부수웠거나
불을 질러서... 단 한채도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뱃밭과 몰음의 구별이 무의미합니다.
어린이집에 붙어 있는 소조가 귀엽네요.
하늘로 올라가려다 멈추어버린 하늘타리를 보면서
녹양교를 건너 해안동 지경 녹남당물에 왔습니다.
녹남, 녹낭’은 녹나무를 말합니다.
옛날에 큰 녹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물은 해안동지경에 있지만 월산 몰음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습니다.
안내판을 보시지요.
새로이 심겨졌을 녹나무위에 직박구리가 와 있습니다.
녹남교를 다시 건너 문달루니를 오릅니다.
문달루니의 뜻은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현지인들은 지형이 달 형체라서 그리 부른다고 합니다.
문달루니위에 산담을 한것도 아니고 안한것도 아닌 둥글게 주변을 파놓은 묘를 보면서 의아해 합니다만…답은 없지요.
새비리마을입니다.
새별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언젠가 부수다만 건물에 사람이 삽니다.
새비리마을의 옛 중심가 정자목.
당시의 게시판.
예전에는 도근내까지 이어졌던 올레.
지금은 막혀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서 이 원장내를 넘으면 물욱이로 갑니다.
물욱이마을은 밭의 지형이 낮아 아래쪽에는 물이 고입니다.
제주시 봉개동 물루기왓의 물루기에서 보듯이 물욱이, 물루기는 물이 자주 고이는 물컹한 밭이란 뜻으로 보입니다.
뒤로 돌아 갑니다.
새비리사람들이 물을 길어먹고 아이들이 물놀이 하던 고봉기물과 검은소로 갑니다.
고봉기물과 검은소.
(간단한 사진을 올리고 별도 브로깅합니다)
평화로 변으로 나와서 제주시 쪽으로 걷습니다.
임주왓일대 뒤로 방일봉이보입니다.
임주는 임지, 즉 깻묵의 뜻으로 이 일대의 밭을 누군가가 누군가와 깻묵을 주고 바꾼 밭이라고 합니다.
월산정수장을 끝으로 헤메임을 마칩니다.
12시간넘게 눈길을 헤매며...
엄청 힘들었는데...
본게 없습니다.
그래도 이나마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때 돌아본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침에 그 얼음이 아직도 달려있는 아파트입구를 지나 집으로 들어 갑니다..
베토벤 / 피아노 3중주곡 제7번 B♭장조 '대공' 아쉬케나지, 이작 펄먼, 린 하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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