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제주시 노형동 - 광평마을

하늘타리. 2011. 1. 23. 02:48

너븐드르마을 억새미드르입니다.

 

억새미드르에서 남쪽으로 갑니다.

  

지형은 변했지만 재미있는 이름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강왈왓입니다.


이 밭 남쪽에서 길이 갈려 동서쪽으로 나 있는데, 마치 사람의 가랭이아래와 같은 형세를 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졌습니다.
곧 강알왓은 움푹 패었고, 동서로 양쪽이 불룩하게 솟아 있다는 데서 붙여졌다네요.

그리고 그 밑으로 숨굴왓입니다.

  숨굴은 사방에서 모여든 물이 스며드는 구멍을 뜻하는 제주어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경사면 위가 천망동산.
 지금은 그 윗부분을 밀어서 도로가 되었습니다만

올라가시면 하늘이 보입니다.

 

강왈왓 오른쪽 바짓가달. 바짓가랑이라는 뜻입니다. 

 

검잿못이 있었다는 지점을 바라보고

다시 동쪽으로 새밋내하천으로 와서 대방구릉질을 찾아봅니다.


너븐드르에서 정준이로 넘어가는 방향에서 옛길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길이 나있었군요.


큰길을 건너서 광평마을 표지석앞 


그곳에서 가장 지름길로 질러 광평마을회관앞 유치동산으로 왔습니다.

 


유치동산위 광평마을회관

 


광평마을은 350여 년 전에 연주 현 씨가 들어와 사냥과 목축을 하며 황무지를 개간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들이 넓다고 하여 제주어로 너븐드르(넓은 들)로 불리기도 하고 한자 지명으로 바뀐 광평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2) 한라장촉에 廣野로, 1709년 탐라지도에 광평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8세기 말부터 지금의 노형에 통합되어 있습니다.

너븐, 넙은은 넓-(廣)의 제주어 넙-에 관형사형 어미 은이 통합된 것이고, 드르는 野, 坪의 훈독자라 합니다.

 

마을회관앞 공덕비

수도를 놓아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광평마을 수도는 재일교포 및 현희영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 그리고 제주경비사령부의 대민지원사업으로 1968년 설치되었습니다.

그 고마움의 표시로 세운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광평은 전기는 다른 지역보다 늦은 편인 1972년에 가설하였지만

이듬해인 1973년에 바로 마을 가로등을 설치하였습니다. 

2개소는 제주시에서 보조를 받았고

13개소는 마을 공금으로 세웠는데

마을공금의 대부분을 재일교포가 충당해 주셨지요.

그 비석도 함께 있습니다.

재일교포들도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자기들 먹을 것 않먹고 입을것 않입으면서 고향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도와주셨는데

그때는 고맙다고 세운 공덕비,송덕비를 

지금은 별볼일 없다고

어느마을처럼 부셔버리지 말고

잘 유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의성학숙, 천진의숙 옛터


노형동에 최초로 설립된 개량서당은 의성학숙입니다.
그 후 1918년경 천진학숙이 되었다가 1945년에 노형국민학교가 설립 개교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1943년에 旭國民學校 老衡分校로 개칭되었다가 1945년 노형국민학교로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너븐드르본향당이 있던 곳이라고도 하는 당밧으로 갑니다.

 

누군가에게 제공받은

옛사진 한장 보여드릴까요

1990년대 초반의 사진이랍니다.

 

너븐드르당 주변을 개발할때 주민들이 이 당에 손을 못대게 하고

당앞에 프랭카드를 세웠습니다만....

 시공자들이 주변을 막아버렸습니다

뒤에 보이는 게 마을회관 안쪽 농산물 창고입니다.

 그 당시는 마을회관이 지어지지 않았지요

광평동 마을회관은 2004년에 지었답니다.

 

  

 

그 북쪽 노형성당.

 

삼위일체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마리아여 당신께 매달리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당옆 옛주택


옛주택이라해야 6~70년대 주택인 듯 합니다만 이 부근에서는 보기 드물어서 한 장 꾹!

이집이 있는 노형성당 북쪽 부근이 너븐드르설촌 이야기 현치적의 설화가 있는 소독동산입니다.

 

 

아파트 정문과 소공원이 있는 곳

이곳사이로 길이 나기전에 여기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당이 있었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아마도 당밧에서 이곳,

지금의 공원에서 아파트정문까지 걸쳐 있던 동산으로 한번 옮겼다가

동산이 밀어지면서 다시 지금의 위치로 또 옮겨진 듯합니다.


넙은드르본향당입니다.

 

노형동의 비지정 문화재 3건중 하나입니다.

예전부터 있던 곳도 아닌 아파트 지으면서 공터 어린이 공원 한곳에 가려 두었으면서도 비지정문화재입니다.

 

 

 


본풀이는 이렇습니다.
“오도롱(이호동)으로 가지 갈라온 송씨 할마님. 석카 여리불법 할마님. 얼굴 차지 혼합 천자벨금상 마누라님.

염제신롱씬 상세경, 중세경 문도령, 하세경은 가령비, 세경 장남은 정수남 이, 그 사이 예 허물 내우는(내는) 보젯도.

낳는 날 생산 차지, 죽는 날 물고 차지, 호적, 장적, 인물도감, 오개통 차지하던 한집 토지관 한집, 올레 안에 좌정 조상님네랑 몬딱 고찌 동력 합서.

천하 해동조선 남방국 우리나라 노자지국 장과 척숙 사백리 주에 물로 곰을 감춘 섬이우다.

삼문 이사당 들어사민 일도 이도 삼도리 넘엉 노형마을 천하대천 너븐드르우다.

성은 아무개, 나는 선솔, 나은 선솔 올렴수다.

과세문안 정중 오랏수다.

보리고슬 촐련 오랏수다(보리 거둘 때에).

가슬홍장 오랏수다(가을 추수의 경우).

춘하추동 사시절 노린 역개, 얻어 먹은 역개 바치레 오랏수다.

받은 공사로 모든 추물 올렴시메 받음서.

… 자손덜이 오랑 상귀 올령 가건 홑은 제물 잃은 제물 다 내수와 줍서.

멩과 복을 제겨 줍서. 자손 창성 부귀영화시켜 줍서. 소원성취 제주대통 시켜 줍서.

 춘사추동 사시절에 취하 농사 짓건 오곡풍덩 육축번성 만물번성 추곡만말 각곡성실 뒈게 하여 줍서.

모든 오만육축덜도 다 고찌 낙루하게 말앙 그눌롸 줍서.

이 시국의 벵난지중 가온디라도 할락산이 펭지 뒈나, 바당물이 잦아지나 천하각국 운영굿(요란한 굿)이 칠지라도 이 자손덜랑 소원성취 바램네다.

정월 이월 삼월달 섣달 구뭄날까지 달로 막아 줍서. 날로 막아 줍서.

벵난지중 가온디 모든 시게돌림(유행병) 모진 신벵 모진 독감 도독적칼(도둑의 칼) 강도덜 만합네다.

이런 일 막아 줍서.

구셀 모략도 막아 줍서”.(현용준, 1980).


굳이 본풀이를 길게 옮긴 이유는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고생하셨을 것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도 누군가 찾아와 명실을 걸어 두었습니다.


어디라고 설명 못할 길을 걸어 광평 섯동네사람들이 길어먹던 까마귀물로 갑니다.

 


아직도 철철 넘쳐흐르고 주변 농지에 물을 대주고 있습니다.

 

 

 

 어스싱오름을 보고 주변동산도 보고 또 아흔아홉골을 보고  

 

 

원장내다리까지 왔습니다.

이 다리를 넘으면 도평동이지요.


다리를 넘지 않고 어찌 어찌해서 차롱궤동산으로 왔습니다.

 


차롱과 같은 궤가 있어 차롱궤동산이라 했는데 동산은 다 깎여 나가고 궤만 남았습니다.
차롱은 채롱의 뜻이고 채롱은 찬장의 뜻입니다.
이나마 없어질리 없겠지만 썰렁한 마음에 찍고 또 찍습니다. 

 

 

 

 

 

Domenico Zipoli
Adagio for Oboe, Cello, Organ and String orchestra 
Pierre Pierlot, oboe
Anne-Marie Beckensteiner, organ
Bernard Fonteny, cello
Jean-Francois Paillard Chamber Orchestra 
Jean-François Paillard,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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