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벽화속 청룡도가 그려진 담장
맹사성 집터입니다.
고불 맹사성이 살던 집터에
불교와 유교, 그리고 민속 관련 유물을 모아
동양문화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불서당
조선 태종 때. 승정원 동부대언으로 있던 고불 맹사성은
역모사건으로 조대림(趙大臨)을 조사합니다.
이때 맹사성은 태종에게 보고도 하지않고
태종의 사위이자 조준의 아들인 조대림을 잡아와 고문을 합니다.
조사해 보니 무고였습니다.
맹사성은 태종의 노여움을 사 참형에 처해질 뻔했습니다만
세자를 비롯한 성석린·권근·하륜·이숙번 등 태종의 측근들이 구명운동을 벌여 겨우 죽음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맹귀미는 그때 죽고 말지요.
맹사성은 겨우 목숨을 유지해 유배를 갑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맹사성은 그때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고 신중히 생활하여 세종 때 정승 자리에 올라 명재상이 됩니다.
그를 비롯한 그의 일가들이 이곳에 많이 살아서 한때는 맹현이라 했던 곳에 조성된 민속박물관입니다.
갤러리 하루고양이
고양이 테마 아트숍인듯 합니다.
북악산
Sari....
이름에서 떠오른 족쟈카르타의 따만 사리.
전혀 관계가 없을 겁니다.
기도는 뭔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안에 숨어있는 거인을 불러내는 일이다.
김재진의 거인...
골목길 틈으로 보이는 삼청동.
7표연탄.
북촌 생활사박물관
벽에 있는 사진, 말 그대로 희미한 옛그림자
아마도...브라질대사관 부근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고..
바로 옆에 있는
조선시대 말 근대식 무기를 제작, 저장하던 관아인 機器局 번사창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어륀지같은 일이 !!
금융연수원 후문을 잠가놔서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해놨네요.
노태우 취임준비위원회, MB 대통령인수위원회는 이건물을 사용할 수 있고
일반 백성은 건물옆 문화재도 볼수없다??
이 건물에서 인수위원회를 운영할 때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어륀지타령이나 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더만
지금 이 건물관리자는 문화재로 접근하는 길을 아예 막는 황당한 일을 벌이네요.
어쩌다가 문화재가 인심 좋은 사람 만나면 돌아볼 수 있고..
인심 사나운 이 만나면 접근할 수 도 없이 되어있는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네요.
털레털레 돌아서서 어느계단
계단옆 석물들에게
나쁜 사람들이다 그지?
동조를 구해보지만...
고개만 외로 꼽니다.
너희들 사는게 다 그렇지...아마추어처럼 왜그래!
이준구 가옥표지판
일제시대 당시 세도가 민대익일가가 재력을 자랑하며 서양식 주택을 뽐내며 지은 곳인데
안내문 옆에서는 아무것도 않보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가진사람이 사는듯 쓸만한 차 한대가 문앞에 다소곳이 서있습니다.
최근에 정비한 듯한 한옥골목으로 내려갑니다.
대문이 부조화스러운 한옥문화원
이런 변화가 어쩌면 생활입니다만...
여기가 한옥과 우리 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교육, 출판, 건축,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는 그곳이 맞나?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려 봅니다..
한다는 일에 비해서는 너무 협소해 보입니다만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는 이 없습니다.
옛골목
그런데 이 동네는 관광객들 빼면 사람도 안 살고 아이도 없나? 어찌 이리 조용하냐?
새로 지은 듯한 한옥
가회동 성당.
별도 브로깅합니다
동림매듭공방
가회박물관
비슷비슷한 박물관도 많고 각종 공방도 많은데
들어갈 때마다 4~5000원이면 하나씩은 적은 돈이지만 도저히 감당이 않될 듯...
꽃담을 만나다...
화살표. 어디로 갈까요?
자수전시공방
계동 쪽으로...
중앙고등학교가 보이고
대동상고가 보이고
중앙중고등학교정문
별도브로깅...
중앙중학교 운동장에서 본 창덕궁내 건물 몇 동
중앙중학교 정문앞 계동길
절이라 하기보단 아담하고 예쁜 한옥집 대승사
유심출판사터
한용운 선생의 불교혁신 운동 관련 사적지 표지석입니다.
실제 위치보다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어떻다 등 말이 있습니다만
서울지역 독립운동 및 일제침략 관련 사적지 199곳 가운데 162곳이 없어졌다는데
이런 표지라도 만족해야지요.
목욕탕이 있었는데 없어졌나? 지나쳤나?
소슬대문 李家. 일본관광객을 위한 민박
등록문화재 제85호 배렴가옥 표지
전통적 화풍에 따른 온화하고 유연한 필치의 실경 산수화로 유명했던 배렴이 살던 곳
외국인 대상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촌선생고거
훌륭한 일도 많이 하셨고....
부와 기업세습의 선구자이시기도 하지요.
고창의 인촌생가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솔직히 부럽습니다.
인촌의 증조부 울산김씨 명환까지는 장성에 살았답니다.
그가 고창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학식과 재력으로 인근에 소문난 연일정씨 계량댁에 하룻밤 유하기를 청합니다.
김명환의 행색이 선비인지라 정계량 진사가 술 한 잔을 나누었고
의기투합하여 사돈을 맺기로 합니다.
명환의 셋째아들 요협과 정계량의 외동딸이 결혼하게 되고
김요협은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 처가집으로 옮겨와서
처가의 만석지기재산을 모두 물려받습니다.
그 아들이 인촌의 양아버지 기중과 친아버지 경중입니다.
인촌의 큰아버지 기중슬하에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래서 삼양사사장을 지낸 친동생 연수와는 호적상 4촌입니다.
부모대부터... 형제가, 그리고 그 아들. 그 손주가 대대손손 번창합니다.
그냥 부러울 뿐이지요.
스물네살 젊은 나이에 양부의 돈으로 자기가 나온 학교를 사들여 이사장이 되고
그 몇 년 후엔 대학을 사들이고.
또 그 후 신문사 사주가 되고 자자손손 물려주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열몇살 무렵의 나는... 우리아버지를 생각했었는데...
스물다섯 졸업과 취업준비에 바쁜 우리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보고 무어라 할까...
왕짱구식당
1970년 옛날 속칭 걸레빵집 거기인가?
학생들이 그렇게 사먹었는데 아직도 저런 상태는 아닐 테고...
서울 종로 한옥체험관
옆을 지나는 여성들 말하길
이 집안에서 동갑내기 과외하기2를 촬영했답니다.
그러고 보니까 중앙고등학교에서는 겨울연가를 촬영했다고 하데요.
실용과 기능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관광이라는게 감성을 건드려야 주객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만..
골목속 골목을 지나
원서동쪽으로 갑니다.
Mendels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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