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보신각

하늘타리. 2011. 2. 20. 22:41

普信閣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의 제도를 따라 종루를 짓고

종소리에 따라 성문을 열고 닫게 합니다.


처음에는 지금의 인사동입구에 종루를 세우고 경기도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걸었습니다.

태조5년(1396)이라고도 하고 1398년이라고도 합니다.
태종 13년(1413)에 종루를 지금의 광교북쪽 운종가로 옮기고

세조 4년(1448)에 새로 주조한 대종을 달았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종루와 종 모두 파괴되자 광해군11년(1619) 종각을 1층으로 짓고 종을 달았습니다.

그종은 돈의문안에 있던 신덕왕후의 願刹 興天寺에 있다가 흥천사가 폐사되자 당시의 國刹 원각사로 옮겨졌다가.

1488년(성종 19)에 원각사가 소실되자 남대문안과 명례동 고개로 옮겨다니던 종입니다.


그 후 에도 숙종12년(1686)과 고종6년(1689)에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고

고종32년(1895)에 고종이 내린 보신각이라는 사액에 따라 보신각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후 1915년 도로를 낸다고 뒤로 물리고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또 그뒤로 물려서 다시 짓고

1978년 또 뒤로 물려져서 현위치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걸려있는 편액은 이승만대통령의 글씨라고 하고

걸려있던 종은 오랜 병화와 재화로 몸통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할 수 없게 되어 중앙박물관으로 옮겨 갔고

지금은 1985년에 에밀레종이라하는 선덕영왕신종을 본따 만든 종이 걸려있다합니다.


우리 역사와 민중의 삶처럼 참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야의 종 타종행사도 전통인지 아시지만

사실 이것은 한방송국의 이벤트행사가 굳어진 것이지요.

 

보신각 주변 표지석들


1985년 새종을 달면서 무어라무어라 써 놓은 표지석.

 전두환대통령때인데 보신각종 중주위원회 위원장 윤보선이네요.

 

3.1 독립운동 기념터

1919년 만세시위의 중심지로서 4.23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포한 곳

 

 척화비 있던 곳

 

 

 종각역으로 내려가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마련한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공평동쪽으로 나갑니다.

 

종로타워 뒷쪽 인사동 쪽으로 왠 불탑이 보입니다.

  

유리 보호각이 씌워진 원각사지10층석탑이 안스러워 여기다 하나 복제해 놨나 생각하며

멀리서 사진꾹꾹찍고...

 

동수각 방향으로 갑니다.

Erev shel shoshanim  Harry Berafo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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