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수원 화성 2

하늘타리. 2011. 2. 18. 23:55

2월 18일의 늦은 오후..

 

방화수류정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사진 안찍고 건너온..

아니 찍었나..

동북포루

 동북포루와 동암문을 뒤돌아서 찍고 

 화홍문으로 갑니다.

 

 화홍문(북수문) 설명입니다.

"광교(光敎) 언덕을 대천(大川)이 가로로 자르며 흐르고 있어,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성을 쌓기 시작할 때에 물길을 내는 일을 먼저 하였다.

넓혀서 소통을 시키고 7간의 홍예로 된 돌다리를 하천 위에 걸쳐서 설치하였다.

그 동서로 3간은 아래 너비가 8척 높이가 7척 8촌, 가운데 한 칸은 너비가 9척, 높이가 8척 3촌이다.

7개의 안팎 홍예 사이에는 각각 좌우에 돌기둥 4개를 세웠다.

홍예가 서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잠자리 무사를 붙였다.

중앙에는 장군형 무사를 덧붙였다.

거기에 다리 놓을 돌을 깔고 다리 위 바깥 쪽에는 장대석(長臺石)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화홍문밖으로 나왔습니다.

연못이 아름다운데 오늘은 아닙니다.

그래서 물이 나오는 용의 입만 꾹!

 

 

 

 

  

 

북동치

 

 

 

 

장안문이 보입니다.

 

 

장안문의 옹성위를 돌아보고

 

 

 

 

 내려가서 정면에서 보겠습니다.

 

 

 장안문 설명

?장안문[편액은 전 참판 조윤형(曺允亨)이 썼다]은 성의 북문이다.
북옹성은 장안문의 외성이다.

성서(城書)에는 옹성의 크기는 정성(正城)의 대소에 따르며 모양은 옹기를 반으로 나눈것과 같다고 하였다.

문위에 적루(敵樓)를 세우지 않는 것은 정성이 가로 세워져 있어 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옹성은 정문 좌우의 무사에서 각각 7보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벽돌을 쌓아서 성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17척 안쪽 둘레는 159척 6촌 바깥 둘레는 209 척이고, 아래는 두께가 15척이고 위는 줄어 들어서 12척이다.

바깥 쪽에 현안(懸眼) 16개를 뚫었다[각각 길이 2척, 지름 2척 2촌].

안 쪽에 벽돌로 된 홈통 8개[지름 각 5촌]를 설치하였다.

옛 제도에는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한쪽 문만을 열었으나 지금은 사방으로 열리고 팔방으로 통한다는 뜻을 취하여

중앙에 문을 설치하여 정문과 마주하게 하였다.

양문의 사이는 10보 3척이며 돌로서 안팎으로 홍예를 만들었다." 고 합니다.

 

 

 

 

 

 

 

다시 올라와서 북서적대 

북서포루

 

 

 성곽사이로 본 79년도에 세운 성곽복원 기념비

북포루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이 보입니다만..

석양이 내려 앉습니다. 

 

 화서문에서 서북각루쪽을 보며 고민합니다. 

어두워지는데..

계속 가야하나

멈추어야 하나? 

 

화서문에서 성곽아래 공원으로 내려 왔습니다. 

 

 앞에서 본 화서문

 

성곽 밖에서 본 서북 공심돈 

 

 

북포루

 공원내 화성기적비

복원기념비 앞 

 뒤

 북서포루 앞을 지나

 공원을 가로 질러

 

 

 

 장안문앞으로 왔습니다.

 

어두워져 더이상의 진행이 어려우니 일단 저녁을 먹고

오늘 이부근에서 자고 내일 마저돌아보기로 결정합니다.

 

밤!

저녘먹고 할일이 없으니

왔던 길 되짚어서

여기저기 찍어 봅니다.

디카에

손은 시려서 흔들리고

그래도 자기만족 OK  

 

 

 

 

 

 

 

 

 

 

 

 

 

 

 

 

 

 

 

 

 

내일 아침 일찍 이자리에서 만나요!

Vieuxtemps - Elegie for viola and piano, Op. 30 

Roger Chase    viola  ·  Michiko Otaki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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