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제주시 노형동 - 월랑마을

하늘타리. 2011. 1. 21. 22:26

노형교.

 


1970년대 이 다리가 생기면서 노형이 발전되기 시작을 합니다.

제주 제2우회도로라 하는 당시 16번국도가 지나는 주요길목이 된 것이지요.


사진을 잘못 찍어 아주 작은 다리처럼 보입니다만

왕복 6차선에 좌우 인도가 있는 꽤 넓은 다리입니다.

지금도 이 도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16번이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지금은 1136번 지방도가 되었고

16번 도로는 언양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다시 붙여 졌습니다.

 

빼앗겼다 해야 할지 ...

넘겨주었다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도민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도로번호 하나 바뀌었다고 빼앗겼다는 말을 쓰냐 하실분도 있을 것 같아서..

국도인 경우 유지, 보수비용이 국비이지요.

지방도일경우 지방자치단체 예산에서 유지, 보수가 됩니다.

 

이름만 거창한 자치도가 된 후

도지사의 권한만 커지고 주민은 시장도 자기손으로 못뽑게 되었지요.

행정시장이 주민의 편익보다는 임명권자인 도지사만 바라보고 행정을 하고

중앙정부는 넘겨주겠다는 규제자유화, 중앙권한의 추가 이양 등 추가과제는 타지역과의 형평성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강정해군기지라는 국책사업을 밀어 붙이기로 시행하여 도민의 갈등만을 키웁니다.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좀더 세련된 방법, 주민의 합의를 이끌어 가면서 시행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이렇게 분열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 후 또 분열을 치유한다고 나서겠지요.

 

공연히 센치해져서 이제는 제목을 바꾸어야 할  시 한수를 읊어봅니다.

 

16번 국도/ 오시열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 따라 달린다.

동쪽 16번 국도 .
 
그대의 입맞춤이 서성이는 곳.
작은 산등성이 내 마음처럼 누워 있는 곳.
젖꼭지에 나무 한 그루 올려놓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곳.
나무 위에 산새 한 마리가 필리리 필리리 우는 곳. 
꿈 속 푸르스름한 안개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곳.
억새꽃 하얗게 머리 풀고 우는 곳. 늘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곳.
사글세를 사는 슬픔이 빈 방에 쓸쓸히 앉아 나를 기다리는 곳.
질긴 개민들레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
 
바람이 나를 따라 달리는 길.

동쪽 16번 국도


노형교위에서 원노형쪽 방향을 돌아보고
몸을 북으로 돌려 하천을 따라 월랑마을쪽으로 갑니다만…
지금 걷고 있는 지역은 연동입니다.

 

 

 


그래서 공원이름도 흘천공원


다시 하천을 건넙니다.


도랑곶 마을 동쪽이라 하여 동빌레,

넓고 큰 빌레라하여 광대빌레라고도 하던 지역에 있는 노형동 도랑곶마을 마깨당입니다. 

당신은 연동 능당으로(부터) 가지갈라온 도랑곶 동빌레 마깨낭연 그늘 알로 좌정한 송씨할마님입니다.
도랑곶본향당, 송씨할망당, 마깨당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만 본풀이가 좀 구슬프지요.
옛날에 송씨 한집 어멍이 딸을 나무라며 마께(빨래방망이)로  때리다가 그만 실수로 그 딸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 어멍도 따라 죽으니 동네사람들이 본향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당신은 송씨 할망 한분인데 당에 갈 때는 메 두그릇을 가지고 가고

그 딸이 좋아하였다는 삶은 계란을 꼭 가지고 갑니다.
옛날이야기지요.
몇 년 전만 해도 한쪽은 트여있고 마깨낭(마가목) 그늘아래 벤치가 놓여서

비념이 아니라도 동네 할망들이 마실 삼아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벤치도 없어졌고

한쪽 빈 구석마저 공사를 한다고 막아놓아 왕래가 없습니다.
이 표식도 이지역이 연동구역으로 잠시 넘어가 있을 때 연동청년회에서 세운 것입니다.

 

연동만 해도 옛시설이나 그 터에 지명유래라든가의 설명 표식을 해놓았습니다만

노형동은 옛 시설 자체도 없지만 그 터에 어떤 표식을 세운 것도 없고

아까도 보셨지만 비록 비정문화재이긴 하지만 노랑굴등이 아무 흔적 없이 훼손되어도 그에 따른 어떤 조치가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1948년 4.3이 일어나고 노형동 지역은 도랑곶 서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난 마을이 없었거든요.
전부 소개되어 텅 비어지고 불태워진 마을에 한 6년 뒤 돌아와서 급하게 재건한 마을이고
뿌리를 내릴 만하니 재개발에 밀려 원주민은 거의 떠나고 상전벽해된 곳에

외지 출신이 대부분 들어와 사니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찾아와 비념을 합니다.


월랑초등학교입니다.

 


1983년에 설립된 제주서중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2006년에 중학교가 길 건너 건너 동뱅뒤지역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초등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예전에 짚은구릉(깊은구릉)이라고 불리우던 곳으로 도랑곶주민들의 식수난해결에 크게 기여했던 구릉으로

깊고 넓어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합니다.
(제주어에 유의해서 읽으시지요. 제가 일반적으로 쓰는 구릉이라는 말은 표준어에서 말하는 언덕을 의미하는 것이고

제주도 지명에 붙여쓰는 구릉은 대다수가 물이 고여 있는 굴헝을 의미합니다)


제주서중학교가 지어지기 전에는 이곳에 붕어를 기르면서 개방하여 무료낚시터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길 건너 오일장들어가는길 서쪽지역이 도랑곶마을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수두머새라 불리우던 지역입니다.  

 

주변의 묘 비석에는 水頭磊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 이 지역에 ‘새구릉’과 ‘알솔구릉’이라는 우물이 있어서 마을 머리에 물통이 있는 머세라 했습니다만 지금은 빈 벌판입니다.

 

사진은 안 찍었습니다만 오일장 들어가는 길 동쪽으로 서중이 옮겼습니다.
예전 이름으로는 동벵뒤입니다.
도두동에 속해 있다가 다시 연동으로 구역조정이 되었습니다만

예전 이지역일대에 사람이 살지 않는 넓은 벌판지대라 이 지역에 있던 묘비석에는 연동정북 동뱅뒤(蓮洞正北 東坪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오일장 동쪽 진입로 입니다.

이 일대까지가 노형동 입니다.
예전이곳은 머귀나무가 많았다 하여 머구남밧이라 불리우던 곳입니다.

 

월랑초등학교 서쪽 알빌레지역입니다.
마을 아래쪽에 있는 빌레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요,

명신개량서당이 있던 곳이라 합니다.

명신개량서당위치가 여기였다라고도하고 


여기였다라고도 합니다.

 

설립시 하나의 에피소드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서당법이 개량되자 제주읍에서 명신개량서당을 개설하려고

제주읍내와 주변마을 사람들이 회합을 갖고 성금모금에 착수하였는데

제주읍에서 절반 월랑마을에서 절반 모으기로 하였답니다.
하루는 월랑마을 김의관댁에서 회합이 있어 제주읍에서 최판사(최원순), 김응두 등 10여명이 동석하였답니다.
그러다 말다툼이 생겨 김응두라는 분이 월랑의 김중하와 싸움이 벌어졌답니다.

월랑사람들이 김의관댁의 장작개비로 읍내에서 온 사람을 공격하자

최판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망갔다고 하고

이일로 제주읍에는 명신학원, 월랑에서는 명신서당이 생겼는데

제주읍의 것은 재정난으로 폐교되고 월랑의 것은 4.3사건으로 불타고 소멸되었습니다.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옛길을 따라 큰 바령밧이 있던 곳으로 갑니다.

 

 


바령밧은 보리를 벤 다음 농사를 한철 쉬고 거름대신으로 마소를 가두어 놀리는 밭이라는 뜻으로

돌무더기와 잡목 속에 그래도 귀하게 마련한 밭이라 애지중지했던 곳입니다.

 

무엇인가 있었던 곳이라고 알고 미화1차를 어렵게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이곳도요…

 

 

못데 또는 못구릉이라 하던 곳입니다.

 


옛 월랑정미소 주위에 있었던 일련의 못 지역을 일컫습니다.
옛날에는 이 지역에 ‘먹는 구릉, 쇠 멕이는 구릉, 빨래하는 구릉’ 이렇게 구릉이 세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못구릉’이라고도 했다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어요.

 

옛길자리를 걸어서 60년대 말쯤 지어진 재건가옥옆을 지나고

 

 


월랑마을회관입니다.

 

 


도랑곶마을 즉 월랑마을은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을 따라 동쪽을 동반월 서쪽을 서반월이라 하였는데

두 반월이 합치면 달이 밝다하여 "월랑"이라 하였다 합니다.


月朗은 ‘도랑’의 훈가자와 음가자가 결합한 한자 표기입니다.
또 누구는 ‘도랑’은 인가 근처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밭을 뜻하는 옛말 다랑이(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에 108층짜리 다랑이논 아시지요?)나

제주어 도렝이의 뜻(박용후, 1992:85)이라고도 합니다.


곶은 풀, 나무, 덩굴 등이 한데 어우러진 수풀의 뜻으로, 한자 藪(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뜻입니다.

이원진의 『탐라순력도』 ‘한라장촉’에 ‘도랑’으로, 1709년의 「탐라지도」에 ‘도랑곶’으로,

1770년의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도랑곶마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을 볼 때, ‘도랑곶’이 고유 이름으로 보이며,

민간에서 불리는 ‘도랑곳, 도랑굿, 다랑곳, 다랑굿’ 등은 이의 잘못이거나 변이형이고,

‘월랑, 월랑동, 월랑부락, 월랑마을’ 등은 한역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랑곶마을 웃빌레 사람들이 다니던 제신당이 있던 곳입니다.

 

 


택지로 개발할 때 찜찜하여 손대지 못하고 빈 공터로 남겨 두었는데 세월이 지난 후 어린이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신당 할망이 아직 이곳에 계시다면 어린아이들 뛰노는 소리에 마음이 흐뭇하시겠습니다.

 

신제주 로터리 쪽으로 나가다가 안내판을 봅니다.
말 그대로 주변 지역안내판입니다.

 


이 마을을 찾아온 사람에게는 보탬이 없고 이 마을을 벗어나는 사람만을 위한 안내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월랑마을 표지판을 보면서 도랑곶마을의 마지막 지점으로 갑니다.

 


노형로타리 큰길을 건너 노형초등학교동쪽동산입니다.

 

도랑곶마을 맨 서쪽지역이라 섯동산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섯동산을 넘었으니 이제부터는 정존마을입니다.

A. Ponchielli - La Gioconda: Act3 中'Dance of the Hours'
Eugene Ormandy (conductor) Philadelphia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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