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이호동 오도롱마을, 골왓마을

하늘타리. 2010. 9. 3. 07:46

 

오도롱마을입니다.

탐라순력도와 1709년 탐라지도에는 오도롱마을이라고 나오다가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오도마을로 나오지요.
그러다 1708년의 제주읍지와 그 뒤에 나온 탐라방영총람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때는 도두리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이부근 몇몇 무덤 묘비에는 도두리 오도촌 또는 도두 억삼이드르라고 표기되어 있답니다.
1962년도에 이호동으로 편입되었고 오도롱마을이라고도 합니다만
오도롱의 어원을 아는 사람도 없고
마을회관이름도 오도마을회관으로 되어 있으니 앞으로는 계속 오도동으로 불리울것 같습니다.

 

고전적집터가 여기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습니다만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원조의 저술로 알려진 탐라지의 실질적인 집필자라 할 수 있는  현종때 성균관 전적을 지낸 고홍진의 집터가

이곳 팔백육십얼마인가 하는 지번내에 있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와본거지요.

 

포기하고 마을회관옆 포제단이 있던 곳에 왔는데
그 곳도 어디론가 이전했답니다.

마을복지회관을 멋지게 지으면서
그 부근에 있던 각종 공적비 감사비도 쓰러지고 흩어져 있습니다.
향사를 지어주신분
일제 강점기 때 마을 발전을 위해 희사하셨던 재일교포들

 


일제당시 오도여자야학에서 공부하다 일본 대판에 가서 생활하면서 포제단 제단시설 보수에 쓰라고 돈을 모아주신 여자교포들


이전 마을회관 건립때 도움주신분들


이모든 비석이 오늘 현재는 여기저기 기울어지고 팽개쳐져 있습니다.

 

염량세태.....

 

마을 올레길 몇곳을 기웃기웃하다가

 

 

자사모루로 갑니다.
수령 150년이 넘은 해송 세그루가 보호되고 있는 곳입니다. 

 

 


보호수지정 숫자가 네개이면 네그루여야 할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세그루 뿐이 없습니다.
한그루는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자사모루의 뜻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주변 묘 비석에 紫紗旨, 紫紗峴, 子沙旨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그렇다는데
원래는 송개모루라고 했다합니다

송가들이 많이 모여살던곳이라는 거지요.
해송 옆 길가에 통정대부 송현인의 묘가 있습니다.

 

 

산담과 묘비가 않보일정도로 풀이 자라있습니다만
산담을 따라 누군가가 봉선화를 예쁘게 심었습니다.

 

세밋내로 왔습니다.


오도롱마을 동쪽으로 흐르는 냇물인데
그너머 동쪽마을 그러니까 소왕마을사람들은 항골내라고 한답니다.
지도에는 마두천이라고 표기되고요.

이부근에 외눈베기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주위가 메워져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혹시 사진속에 비슷한 바위가 있나한번 보시지요

 

 

골왓마을입니다.
갈대가 많은 마을이라는 겁니다.
갈대가 많다는 것은 바닷가마을이라는 것이고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는 것이 되겠지요.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는 것은 지금으로는 그 조망권만해도 값으로 칠 수 없겠지만 예전사람들에게는 바람과 모래가 밀어닥치는 뻥뚤린 허전한 곳이지요.
그 허전한 곳으로 액운이 들어온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은 그 허한 곳에 방사탑을 쌓았습니다.
골왓마을사람들은 액운을 막기위해 마을 남쪽에 2기 북쪽에 4기를 세웠습니다.
북쪽의 탑 위에는 돼지를 묻어 탑을 쌓고 새 모양의 긴 돌을 세우고 남쪽의 돌탑에는 긴 나무를 세웠는데 꼭대기에는 나무로 까마귀 모양을 만들어 붙였습니다.
그러나 마을을 수호하기 위한 이런 모든 노력도 헛되이 4.3이라는 인간이 만든 광풍에 휩쌓여 마을이 황폐화되는 재난을 겪었지만 사건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무너진 탑을 보수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의 미비로 남쪽 1기는 다시 세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방사탑과 그 주변의 모습을 둘러 봅니다.

 

 

 

 

 

 

 

 

 

 

 

 

 

 

 

 

 

 

 

 

마을길을 따라 속구릉에 왔습니다.

여기는 골왓마을이 아니고 섯가물개가 될겁니다만

6차선 너븐도로에 막혀 가물개와는 왕래가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꽤 중요한 식수였는데
지금은 누군가 심었는지 수련잎이 가득합니다.

 

 

 
메꿔지지 않은 것만 해도 엄청 고마운거지요.

 

아직도 쓰이는 물통을 찾아갑니다.

 

 

 


섯가물개 고망물
지금도 물은 펑펑납니다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마을의 주식수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대의 논을 경작하기도 하였던 덕지물입니다.

 

담장앞 덕지물간판 

담장안으로 들어가니

 잡초만 가득합니다

 저쪽끝에 물통이 보이는데 

 

다가가다가 무릅까지 푹 빠졌습니다.

물이 일대전체를 가득 채웠는데 풀잎에 가려 않보일 뿐입니다.

우물로 못가고 옆에 칸막아 놓은 데로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물통옆 주변의 모습입니다.

미나리밭입니다.

아주 충분한 물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펜스타고 올라가는

 친구들 사진 몇장 찍고

 

 

 

 

덕은 시렁이나 선반모양의 돌언덕을 말합니다

그래서 덕지는 언덕아래 못이라는 뜻입니다.

그 언덕,  예전 덕지물 동산을 올라봅니다.

지금은 수운교지부가 자리해 있네요

 

 

 

 

 

 

 수운교 법당에 앉아 수운교의 의미를 생각하며 답사를 멈춥니다.

프로코피예프 // Sonata for Cello & Piano in C Major,Op.119   2악장 Moderato - Andante dol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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