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비양도 1

하늘타리. 2010. 8. 20. 16:38

 

비양도.
협재리 앞바다 바로 코앞에 떠있는 섬입니다.

 
보통 협재나 금릉에서 비양도를 바라볼때는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데
관광안내도에서 보니까 꼭 꽃게가 앞발을 오물오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주 가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않되는게 아침 아홉시에 들어가면 오후 세시에나 나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여름철 성수기에는 12시에 배가 한차례 더 다닙니다.
룰루랄라 노래하며 비양도를 가려 나섰습니다.


한림항주변 비양도를 가는 도선장입니다.

간세를 강조하느라 부분만 찍었더니 좀 그런가요?

  

배가 올때까지 주변도 한번 둘러보고
2층에도 올라가 보고 그렇게 한 30분을 보내고 있으니까

 

 

 

 


쌍팔년도식 표현으로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배가 들어옵니다.

(참 요새는 쌍팔년도도 모르던데..힌트: 단기 ??88년의 서기는? )

 

자 떠나자 고래잡으러...아니 코끼리 잡으러...아니 꽃게 잡으러...
안개속에서 희미한 섬이 슬금슬금 다가 옵니다.

 

 

 

 

 

 

 

 

 

비양도에 내립니다
안내판.


동서 및 남북길이 850. 해안선 연장길이 3.5키로.
한림항에서 5키로 협재에서 1.5키로
보존이 잘된 유일한 도서지방


즉 우도, 마라도, 가파도는 이미 관광지화해서 그 가치를 잃었고 보존이 잘되어 있는 섬은 이곳뿐이 없다는 자부심.
이런 섬에다 단지 왕복의 편의만을 위해 케이블카를 놓고 그 수익을 따먹겠다는 어느 기업의 발상
거기에 동조하는 몇몇. 우스울 뿐입니다.


케이블카가 다니려면 바다 위로 몇십미터는 떠야겠지요.
그 케이블을 연결할 타워를 시종착점과 바다위  최소 두군데 정도는 세워야 겠지요.
그리고 안전을 대비해서 보조지지대가 양쪽에 서야겠네요.
높이가 최소 5~60미터는 되어야 할거구요.
그럼 한림에서 보면 협재에서 시작된 약 2키로쯤 되는 케이블 종점지점에 매달린 섬하나 보겠군요. 


그런 섬에 누가 갈까요.
가는 사람이 있다한들 케이블카타고 휙들어갔다 휙나오면 그게 비양도주민한테 무슨 보탬이 될까요?
케이블카 업자들만 돈버는 것이고
비양도주민은 글쎄 얼마정도 줄지 모르는 마을발전기금이 전부겠네요. 
보존이 잘된 유일한 도서지방이라는 자부심이 충만한 이섬 주민들이

마을발전기금 얼마에 마을을 파괴하고 경관을 파괴하고 연안를 파괴하는 공사를 찬성할리 없을 겁니다.
케이블카사업자는 승하차비용을 받겠지만 섬주민에게는 환경파괴로 얻을 경제적 파급효과조차 하나도 없는 사업.

케이블카사업자가 아니면서 이 사업에 동조하시는 분들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개발이 없을 수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 개발이 절대다수에게 어떤 편익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일부의 주머니만 불리우고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하고

주민에게는 득이되지 않는 개발을 동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다시한번 안내판에 그려진 섬 일주코스를 봅니다.


지난번에는 동으로 돌아 마을로 다시와서 비양봉을 올랐으니
오늘은 오름먼저 오르고 서쪽에서 돌아야지...


자 출발.

 

송덕비가 두기 있습니다.


식수에 관한
해군대령 누구와 당시 군수에 대한 송덕비입니다.
1960년대 초반 그 당시 이곳 제주에는 해군경비부가 있었고 주기적으로 도서지방 의료진료를 다녔던가 봅니다.
그중에서도 그당시에는 본섬과의 왕복수단인 행정선이 없는 이곳을 자주 왔었나 봅니다.
이곳에 의료진료를 왔던 군인들이 다녀가서 보고를 했겠지요.
필승!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어떻게 진료는 잘 했나?

예 이어저러한 환자 몇명을 어떻게 어떻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비양도지역은 용천수나 봉천수 등 식수가 전혀없어서 빗물을 침전해서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탈 설사 및 풍토병환자가 아주 많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경비부사령관은 무언가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싶어 본섬에서 정기적으로 식수를 운반해주는 방안을 강구하다가

 직선거리가 2키로뿐이 않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도지사와 북제주군수에게 해저파이프를 연결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1965년에 북제주군에 예산이 할당되었고 관과 군 합작으로 해저파이프설치작업이 실시되어 10월에 준공

그때부터 지금까지 협재리에서 해저파이프를 통해 식수가 공급됩니다.
그공을 잊지 않고 세운 송덕비가 낡아 없어지자 다시 세운것입니다.


간혹 거센파도로 인해 해저파이프가 끊기는 경우가 있어 마을 한가운데 물저장탱크가 있고 집집마다 물탱크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마을공동물탱크에서 부터 집까지 개인수도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전기는 마을 발전기로 꼭 필요한 곳에만 쓰다가 1995년에 마을에 발전소를 확충하여 24시간 전력을 공급하고 잇습니다.
24시간 전기공급이 당연한 건데 당연한 말을 당연치 않게 쓰려니 좀 이상하네요.

 

설촌유래입니다.


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 솟아 나왔다...는 우리나라 유일한 화산활동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조 고종때 처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고려때 해상방어를 위한 망수를 설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답니다.

 

봄날이라는 드라마의 주장소가 되었다는 비양도 보건소인데


TV를 않보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기도도량
부처님을 뵐려고 열린문 사이로 들여다 보니 가운데 비어있는 공간뿐입니다.


가운데 공간 좌우 벽면에 문이 몇개 있는데 그 문안의 공간에서 개인기도를 드리는 곳인듯 합니다.  

 

 쉼터

 

비양도 천년 기념비.

 

 


2002년 7월 비양도 생성 1000년을 기념하며 이비를 세운다고  쓰여있습니다.
지질학계 쪽에서는 비양도 화산석을 탄소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1만년 이전으로 확인되었고

화산폭발 당시에는 육지였지만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7500년전께 섬이 됐다고 하며

그 증거로 비양도에서는 호니토와 거대 화산탄, 집괴암 등을 통해 시스텍의 독특한 화산지질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술조사도 게속되어야 하겠지만
비양도를 수식하는 천년의 섬을 허물어 버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과거 새마을 운동때 사용했을 법한 게시판.

 
지금보니 반갑네요.

 

상뒤거리 폭낭 


나무크기를 보면 오래되지 않은 것 같고
나무의 형태를 보면 오만풍상을 다 견딘것 같고
꼭 비양도같습니다. 천년뿐이 않된 섬이 많은 풍상속에 힘들어 합니다.

 

올레길도 한번 기웃거리고 밭길을 따라 오름으로 갑니다. 

 

 

 

 

 

비양도 비양봉
어디서 날아왔을까요?
어디로 가려했을까요?


안개를 자욱하게 깔아 자기몸을 감추고 바다위를 날아오던 오름이 한림앞바다 어느 해녀에게 그 모습을 들킵니다.
놀라소리지른 오름이 날아온다는 비명에 오름도 놀라 그 자리에서 떨어집니다.
바닷속에 있던 모래가 넘쳐 올라서 협재리 해안가를 덮칩니다. 해안에 있는 마을이 모래에 덮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모래밑을 파다보면 사람뼈, 그릇들이 나오고, 집터와  밭흙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떨어진 오름도 급정거의 충격으로 뒤로 밀리니 오름정상이 섬중앙에서 뒷쪽으로 많이 밀려있답니다.

 

들풀의 터널을 지나면


협죽도가 지천입니다.

 

  

약간의 오르막
데크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정도가 편의를 제공하는 적정수준입니다.

표고 114미터. 여기서 부터 500미터를 걸어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한답니다.

올라가면서 앞만보고 가지 마세요.
앞도 보고 옆도 보고 뒤돌아보고

 

 

 

 

 


그러면 힘이 하나도 않들고 이야! 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대나무가 많네요.


예전 어느때는 대나무가 많다고 이섬을 죽도라고 한적도 있었다 합니다.

 

전망대.


날이 좋으면 이곳에서 해남의 산자락까지 보인다는데
오늘은 코앞의 한림도 않보입니다.
이섬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지요.


등대
1958년에 설치한 무인등대입니다. 

 

 

 

 


등대가 다가온건지 내가 간건지
어느새 등대앞에서 주변을 봅니다.
작은 분화구 그너머 금능쪽


큰분화구 그 너머 협재쪽


분화구 전체

 

등대를 다시 보고


서쪽 바닷가를 내려다 봅니다.
저 오른 쪽 바위가  코끼리로 변신을 합니다. 

 

조근원과 큰원일대 

 

올라오신 분이 있어 사진한번 부탁하고


한번더


뒤쪽 작은 분화구가 백양나무 자생지라는데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백양나무는
쐐기풀과의 바위모시를 이르는 말입니다.
바위모시가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작은규모이긴 하지만 군락지어 자생한다고 합니다.
그냥 멀리서 어 저기 있다는구나만 하고 내려갑니다.

 

소나무 군락도 멋있지요. 한장 꾹


내려오다가 등대쪽을 보니까 갑자기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억새를 헤치고 큰 분화구옆을 따라 작은 분화구쪽으로 갑니다....만

 

포기하고
쭉 내려와서 협죽도꽃밭 옆을 지나서 


코끼리 만나러 갑니다.

Rossini, Gioacchino Antonio  String Sonata No.3 in A maj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