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제주의 마을(개척마을과 없어진 마을 중 몇 곳. 2)

하늘타리. 2010. 7. 19. 15:04

 

동광마을, 동광분교앞입니다.
아!! 아니지요. 동광분교자리입니다.

 

10명내외의 학생이 다니다가 작년도 3월자로 서광초등학교로 옮겨가면서 폐교되었습니다.
1967년도에 참으로 어렵게 개교한 학교인데...
학교 앞에 서있는 학교설립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기념비가 참으로 공허해 보입니다.

 

마을회관앞 또 다른 기념비입니다.


4.3으로 동광마을이 폐촌이 되어 해변 마을로 분산 이주하여 움막생활을 하던 삼밧구석, 무동이, 조수궤마을 분들을

1953년 경 이곳에 한데 모아
동광리 재건운동을 주도하면서 초대이장을 지내신 분의 기념비가 최근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동광양잠단지로 갑니다.

 

동광단지 가는 길에 있는 석교동 표석

 

 
표석있는곳 조금 못 미쳐서 우측 대나무 밭을 한 10미터 해치고 계곡 쪽으로 가서
계곡을 따라 가거나 그 계곡을 연해 한 10분 나무숲을 헤치고 가면 사진과 같은 바위다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석교동이라 합니다.

 

석교동 동쪽일대 마을 무동이왓입니다


삼밧구석과 같이 동광리 설촌터의 한곳이지요.
삼밧구석은 1670년대에 그리고 이곳 무동이왓은 1700년대에 설촌되었지요.
화전을 일구기에는 아주 적당한 지대라서 개촌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와 마을이 만들어 졌고
세월이 흐름에 마을이 커져 자단리가 되었다가 이 마을에서 여러 마을이 독립하였다 합니다만
역사의 모진 풍파 속에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표석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무동이왓 빈터에서 보는 병악, 군산, 산방산 입니다.

 

동광리 산 1번지
동광양잠단지에 왔습니다.

다음 스카이뷰로 보시면 유수암리 개척단지보다 더 계획적인 마을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현장에서 보면 길을 새로 만들면서 단지 중앙 공동공간으로 뚫어 놓아 영 산만해 보입니다.

 

이곳도 제주도내 다른 양잠단지와 마찬가지로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밭 한구석에 남아 있는 뽕나무 몇 그루..


누에를 관리하던 관리사 몇 채

 

원래 토심이 깊어 초가지붕을 덮는 새가 잘 자란다 하여 이 지역을 거새왓이라 하였던 만큼 토질은 좋다 하여

 양잠을 그만둔 후 무언가 해보려고 특용작물단지라는 팻말을 걸고 해 봤는데 그것도 않되서 그만 두고

 

96년도부터는 감자와 콩에만 매달리고 있다합니다.

 

답사당일의 동광양잠단지의 모습입니다.
현실처럼 암울합니다.

 

 

이곳은 경로당이 꽤 큽니다.
당시에 입주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노인이 되어 꽤 많이 남아계십니다.


그리고 이 아래 사진

 


집 문 위에 "성공"이라는 간절한 기원과

그 바램에 달성하기 위해  "더 일하는 해"라고 쓰고 1969년이라고 연도를 표시 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69년에 30세대, 70년에 15세대 이렇게 총  45세대가 이시돌목장에서 지원해준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들어왔답니다.

그 뒤 모든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거지요..

 

상천리입니다.
창고천 상류에 있다하여 상천리인 마을 그 가운데 있는 분교자리입니다.

 1962년 개교하여 1992년 폐교한 학교입니다.

지금은 목공예교실을 운영하는데요.

 

 한 구석 덤불이 우거진 곳에 김신석이라는 분의 망사비가 서있습니다.
학교를 개교할 때 가장 많은 금액인 1500원을 희사하신 분인데
그런데....
망사비로 세운 것을 보니 돌아가심이 편안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천리 자연부락중 하나였던 오리튼물마을 터입니다.

 
영아리와 골른오름사이 가장 큰 못,

오리가 놀고 갈 만큼 큰 못옆에서 우마를 키우고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마을입니다.
48년 12월 마을이 전소되고 소개되었으며 십여 명의 주민이 유명을 달리한 후 다시는 돌아온 분이 없습니다.
도로가 바뀌어서 그런데 예전에는 상창리 마을 남쪽 지금의 새마을 창고 쪽에서 오리튼물 옆으로 마을이 연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길은 남아있는데 상천에서 들어오는 입구와 오리튼물마을 옛 집터에서 들어가는 길이 끊겨 있습니다. 

 

상천에서 오다가 보는 오리튼물  

상천으로 가는 옛길  


오리튼물마을이라 하니까 오리튼물 그 물이 식수인줄로 아시겠지만 그 말은 우마급수용이었고
식수는  찻길로 오리튼물 표석 있는 곳 못 미쳐서 상천2교 지나 이름 없는 다리가 또 하나 놓여 있는데
바로 그 밑지점이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쓰이던 곳이랍니다.


답사당일의 오리튼물과 마을 옛터의 밭올레에서 보이는 주변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안개에 가려져 있지만 이 밭담 옆에서 보면 방주교회가 보입니다. 

  

상천리분에 의하면 마을인근에 있지만 이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고
이 마을에서 보면 교회너머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
사용하는 권한만 15억에서 20억하는 별장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랍니다.

 

선택받은 이들만의 방주처럼 교회건물이 물에 떠 있듯이 지어졌습니다.

이따미 준이 설계했습니다.


그 물을 건너야 구원이 되는데......
건너기 위한 조건이 너무 어려울 것 같네요.

 

아니겠지요...누구나를 위한 구원일 겁니다.

 

주변 밭에 대유산업의 소유니까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경고판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 마을이라는 개념도 이제 바뀔 겁니다.

  

천서동으로 갑니다.

삼나무 길이 아름다웠던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N.Paganini ;; Great Sonata for Guitar and Violin,

Adam Kostecki, Violin   Carsten Petermann, Gui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