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신선을 찾아서....방선문계곡1.

하늘타리. 2010. 7. 28. 21:56

장마철이라고...
며칠 비가 내려서...


이은상이 말한 천성의 홍예문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보려고....
한천이 흐르는
방선문 계곡을 갔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밑으로 다 빠져 버렸네요.
용암석사이를 흐르고 흘러
먼 훗날 어느 시간 바닷가 마을에서 용천수로 다시 올라올 겁니다만....
지금의 내 기분은....
글쎄요?.

 

돌아 나왔다가…..
잠시 망설입니다.

 

들렁궤밑에서 마애탐사를 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영구춘화표석입니다.


영주십경이라하죠.

그 중 하나, 영구춘화.

관광안내책자에 보면
한라산 중턱에 진달래가 붉게 물들어 있는 사진 밑에 영구춘화란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 위에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어나는 진달래의 황홀한 모습에서
그 말이 나왔다 합니다.


매계 이한우의 시 앞부분입니다.
瀛丘春花
兩岸春風挾百花
花間一經線如斜………


양안춘풍은 여전하나 백화는 없으며
화간이 아니라 암간일경입니다.

 

들렁궤입니다.


큰 바위로 지붕을 하고 앞뒷문을 활짝 열고 있는 바위그늘 집이지요.
그 아래가 꽤 넓어서 최근에는 이곳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합니다.

 

신선을 만나러 가는 문,

방선문.

언제적 누구의 글씨인가는 모른답니다.
신선이 찾아오는 문이라는 백거이의 장한가의 시구에서 인용했다는데
과문한 탓에 장한가에 방선이라는 어귀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차라리 道家의 여조전서중 라부방선기(라부산에 사는 신선을 방문한 이야기)에서 따 왔다고 하면 더 그럴 듯 했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제영도 신선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그런데 못 만났다.

그래서 신선을 부른다. 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리고 여기는 실레합니다 누구누구를 뵈러 왔습니다고 전하는 문이고

신선을 만나는 곳, 遇仙臺는 문을 지나 한 5~60미터 가까이 고생을 하며 올라가야 나타납니다.

 

방선문 마애 앞에 최익현, 이기온의 이름이 문패처럼 쓰여있는데 


제명은 나중에 언급하고 우선 제영부터 보기로 하지요.

 

등영구입니다.

 

홍중징,

 제주향교에 牧使洪公重徵立淸琴案碑라고 쓰여진 비석이 세워져 계신 분이지요.
바위가 들러진 궤라는 뜻의 제주어 들렁궤를 한자로 차자 하면서
기가 막힌 창의력을 발휘하여

신선이 사는 영주로 오르는 언덕이라는 등영구라 하시고는 시를 한편 읊으셨습니다.

돌문이 크게 입을 벌린 이곳에
바위 사이로 무수한 꽃이 피어나네....

 

그 좌우로 목사를 지낸 이명준과 판관을 지낸 박창봉의 제명이 있습니다.

이원조의 탐라지 초본에 등영구가 이명준의 시라고 나와 있다고 해서
이명준 이분이 남의 시를 자기 것처럼 했다고 욕을 많이 먹는데
욕먹을 이유가 없지요.
다른 제명에서도 보시겠지만 빽빽한 바위 사이에 눈에 잘 뜨이는 빈 곳에 그 수행원이 이름 석자 쓴 것이고
등영구 제영 말미에 있는 홍중징제라는 글자를 지운 것도 아닌데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쓴 이원조(사실 탐라지 초본은 이원조가 이름만 걸었죠)의 잘못이지요.
그리고 제주도민의 구휼에 힘썼다 하여 재직 중 가자 되기도 한 분인데 남의 것을 제 것으로 했겠습니까?

 

이원조의 제명도 목사 김윤의 제명이 있는 바위 왼쪽 빈자리에 써 있고
김윤의 제명도 한창유의 제영옆에 있습니다.


게다가 한창유의 제영옆 좌우에는 삼동갑이라하여

오른쪽에 두분 이름, 왼쪽에 한분 이름 써있습니다.

 한창유의 제영입니다.
골짜기 들어오니....나 역시 신선이 된듯하다....
용연에도 옥계 한창유의 제영 한 수 걸려 있습니다.

 

환선대


목사 김영수의 글씨입니다.
관덕정의 탐라형승이라는 글씨를 남기기도 한 무신인데
역시 무인답게 신선이 않계시니 화통하게 신선을 부릅니다...
신선님 계십니까?라고요.

기다리면서 시 한 수 읊으십니다.
깊은 골짜기는 천지의 위대함이요.
견고한 돌문은 해와 달의 조화로다.

 

양응상의 시 한 수 

 바다로 흐르는 물
봉해진 한라산 문을 열었구나.
신선은 떠나고 돌이끼만 남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오는구나.

 

내가 올지 어찌 아셨습니까?

 

판관 이의겸입니다.

포구는 빨간 해를 삼키려 하고
산은 흰구름을 어깨에 짊어졌네..
오늘밤이 점잖게 놀기 좋을 듯 하니
술 한잔 하며 글을 논해보세.

 

목사 조희순입니다.


빼어난 절경이 세속에 닿아 있다고 찬탄합니다.
고종 때 가뭄과 홍수 등으로 기민이 발생하자

조정에 쌀 2천석과 내탕금 2천냥을 요청하여 기민들에게 분배하기도 하였고,
진휼에 힘쓰면서도 학문을 사랑하여 서책을 매입하여 향교와 서원에 나누어 주기도 한 사람입니다만...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삼성사, 귤림서원, 영혜사, 향현사 등의 철폐를 지휘하면서

제주 유림으로부터 무식한 무인놈이라는 욕을 정말 많이 먹은 분이지요.
한림 명월부근에 선정비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목사 한정운입니다.


홍중징의 시처럼 來를 운으로 하여 지은 시입니다.
뾰죽뾰죽한 돌은 구름에 잠겼고 꽃은 조용히 해를 보고 피었다...


그러니까 홍중징의 시나 이 시가 있기 전에

바위 벽 어느 곳에 운을 따올 만큼 기가 막힌 시 한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산방굴사에도 空자와 中자를 운으로 한 한정운의 차벽상운이 있습니다.

 

임태유입니다. 


절벽 사이 한줄기길이 터져 있으니 신선이 떠나면서도 내 올 줄 알았구나 라고 쓰여 있네요.

예. 나도 왔습니다.

 

김치목사의 제영은 흙에 뭏혀 있습니다.


한라산을 등정 후 유한라산기라는 글을 남기신 분이지요.
유한라산기는 소암 현중화님이 글씨를 쓰셔서 제주 자연사박물관에 걸려 있습니다.
제주목사를 마치고 중앙정부에서 대사간을 하면서 동계 정온을 탄핵하기도 합니다만
제주도에 계실 때는 관의 민폐를 없애는데 공이 커서 도민모두 그를 칭송하였다 합니다.


동계 정온은 후에 제주도로 유배를 와서 제주도 학문진흥에 많은 도움이 되셨죠.
정온은 오현단에도 배향되어 있고 대정골에도 유허비가 있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캡춰한 김치목사의 제영 탁본을 올립니다.

아마도 후손이 탁본하여 인테넷에 올렸을 겁니다만
시간이 오래되어 출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갈라진 돌은 신의 도끼질이 아니고
혼돈 속에서 그리 열렸으니
하얀 구름이 천만년 흘러갈 때
신선이 속계를 몇 번 다녀갔다네

 

글자는 많은데...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름 전문가라고 에헴 하는 분들이 한번 와서 복원해주심이 어떨까요?

 

뭉개진 건지....뭉갠 건지....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뭉갠 겁니다.

 

답답한 마음에 굴 밖을 내다 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간절한 비념으로 궤 가장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는 촛불에


저도 한가지 바램을 걸칩니다.
이곳에 있는 마애들이 자연적으로 마모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인위적인 훼손 없이 오래 보존되도록 하여 주세요.

 

Vasily Kalinnikov 
Symphony No. 1 in G minor

4,1,2,3악장
I. Allegro moderato 13'58
II. Andante commodamente  07'23
III. Scherzo: Allegro non troppo  07'34
IV. Finale: Allegro moderato  07'56USSR Symphony Orchestra
Evgeny Svetlanov,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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