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Amedeo Modigliani(伊,1884-1920)◈ Self-Portrait (1919) Harry Nilsson ◈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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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월 겨울 어느날,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을 완성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그이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의 자화상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는 얼음장 같이 찬방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었다.
[그림]Amedeo Modigliani(伊,1884-1920 ◈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1918)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방안에서 환자는 피를 토하며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고,
이젤엔 오일이 채 마르지 않은 바르고니의 초상이 미완성인 채 남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만삭의 잔느가 웅크리고 앉아 죽어가는 모딜리아니를 조용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잔느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달려와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병원으로 옮겼다.
[그림]Amedeo Modigliani(伊,1884-1920)◈ Portrait of Mario Varvogli (1919-20)
모딜리아니는 의식이 몽롱한 채,
"나는 딸이 크는 것조자 보지 못하고 죽는다.
사랑하는, 내 사랑하는 이태리여!
내가 죽으면 잔느는 친구 수탄하고 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것이 생전의 모딜리아니가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1920년 1월 24일 저녁 8시 50분에 그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그림]Amedeo Modigliani ◈ Jeanne Hebuterne with White Collar (1919)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 께요
다음날 아침, 죽은 남편의 시체를 보러 병원에 간 잔느는
오랫동안 말없이 물끄러미 시체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뒷걸음쳐 영안실을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께요"
라고 전설처럼 말했다는 잔느 에뷔테른느...
그녀 역시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자신의 양친의 집 6층 창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의 아기는 단 한번도 입 밖으로 울음소리를 토해내지 못한 채 부모의 뒤를 따랐다.
[그림]Amedeo Modigliani ◈ Yellow Sweater (aka Portrait of Jeanne Hebuterne,1919)
이때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말하는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잔느가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사랑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림]Amedeo Modigliani ◈ Seated Woman with Child aka Motherhood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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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인간도 동물인 이상
뱃속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 본능을 초월한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모딜리아니의 장례식은 비참한 그의 생애에 비해 무척이나 화려했다.
온통 꽃에 파묻힌 그의 관이 실린 영구차의 뒤에는
파리의 유명한 모든 화가들이 뒤를 따랐다.
피카소, 데리앵, 우틸로, 작크 립시츠, 키슬링, 올티즈, 자라데, 부랑빙 ...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화가들이 페르 라쉐즈 묘지로 가는 슬픈 행렬을 이룬 것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36세의 짧은 생을 그림이라는
예술형식에 묻힌 채 열정적으로 살다간,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행적에서 삐죽이 드러나는 예술에의 의지는 실로 대단하고,
그 집념은 무서운 광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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