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와 가꾼 아뜨리움/그림읽기

Norman Rockwell

하늘타리. 2008. 11. 14. 16:42

노만 록웰(1897-1978)은 메국인들이 '가장 메국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로 꼽는 분입니다. 정작 자신은 '화가'라는 타이틀을 싫어했지만요. 그대신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불러달라고 했답니다. 주로 잡지 표지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맘처럼 되던가요? 시간이 갈수록 그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그는 열여덟살 때부터 뉴욕시티에서 <소년 생활(Boy's Life)>표지를 그리기 시작했고, 만년에는 <룩(Look)>, <맥컬즈(McCall's)>, <램파츠(Ramparts)> 등의 표지도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력 대부분을 주간 신문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Saturday Evening Post)>의 표지 그림 그리는데 쏟았습니다. 스물 두 살이던 1916년부터 1963년에 예순 아홉의 나이로 그 잡지에서 은퇴할 때까지 무려 48년 동안 그 잡지 그림을 그렸지요. 이렇게 저렇게 평생 그린 록웰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수는 2천점이 훨씬 넘는답니다.



록웰-식사기도

식사기도 Saying Grace (1951)
by 노만 록웰
Norman Rockwell
캔바스 위에 유채, 개인 소장

여기 소개하는 <식사 기도>는 1951년 11월24일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볼일 보시러 도시 나들이 나오신 할머니와 따라나선 손주가 식사 때가 돼서 식당을 찾았습니다. 메국 사람들이 흔히 '다이너(Diner)'라고 부르는 고급이라기 보다는 실용적이고 -빨리 많이 준다는 뜻에서- 싸구려에 가까운 평범한 식당입니다.

창밖 풍경으로 보아 이 식당은 도심 기차역 옆에 자리잡고 있어서 항상 분주하겠군요. 손님들이라고는 대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 일생에 다시 못 볼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습니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오고요. 그래도요, 할머님의 아담한 모자에 꽂힌 데이지 꽃이 앙증맞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앞뜰에 핀 것을 똑 꺽어 모자에 꽂으셨겠지요. 이 화폭 전체를 통해서 자연물이라고는 그 꽃 뿐입니다.

식사가 나오자 할머니와 손자는 집에서 하듯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그러자 식탁이 모자라 합석한 젊은 녀석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이들을 봅니다. 각각 '어라, 뭐 하는 거야' 혹은 '아직도 밥상머리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다 있네' 하는 딱 그 표정입니다. (창문을 등지고 앉은 젊은 녀석은 노만 록웰의 장남 제리 록웰이라는군요. 아버지 모델비 아껴 드리려고 출연했나 봅니다. 아니면 더 크게 뜯어먹었을까요?)

이 그림은 꼭 한 장의 사진 같습니다. 예기치 않게 다가 온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황급히 찍은 스냅 사진. 그런 사진에는 엑스트라가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우연히 옆에 있거나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진 찍히는 사람들이지요. 이 그림에도 엑스트라가 세 명 나오는데 몸뚱아리는 커녕 얼굴조차 제대로 안 나왔습니다.

왼쪽 아래 남자는 식사를 끝낸 후 담배 한 대 피다 말고, 읽던 신문마저 내려놓고서 할머니와 꼬마를 봅니다. (그 신문은 뉴욕타임스라고 봅니다. 와이자가 크게 보이지요?) 얼굴이 너무 많이 짤려서 표정이 전혀 안보입니다만 여기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맨 오른쪽 남자는 이제 막 의자에 앉으려거나 혹은 일어서려는 참인데, 몸의 방향으로 보아 주인공들을 바라보겠군요. 한편, 우산을 접으며 막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는 그나마 얼굴이 제대로 보입니다. 조금은 삶에 지친듯한 그 사내의 표정은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눈빛입니다.

사실 이 그림은 필라델피아에 살던 한 독자가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라는군요. 기차역 부근의 한 작은 식당에서 '메노나이트' ('아미쉬'와는 사촌쯤되는 엄격한 생활로 유명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할머니와 손자가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도 되고 추억에 젖었던 그 사람은 그 모습을 좀 그려 주십사고 록웰 화백에게 부탁했더랍니다. 평생 2천장 넘는 그림을 그리면서 독자로부터 무수한 제안을 받았지만 록웰이 받아들인 건 그중 딱 4건 뿐이라는데요. 이 그림이 바로 그 네 장 중의 하나입니다. 식당 문을 들어서면 멈칫하는 눈빛 따뜻한 사내가 아마 그 제안자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제안 하나 잘 하면 영원히 간직될 미술 작품에 얼굴이 나오는 수도 있습니다.)

'모셔와 가꾼 아뜨리움 > 그림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레오파트라  (0) 2008.11.21
Goya  (0) 2008.11.20
클림트  (0) 2008.11.14
벌거벗은 여인 고디바..  (0) 2008.11.14
로베르 드와노  (0) 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