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역사박물관
2010년 10월 23일에 개관한 강화역사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적 제137호 강화 부근리 지석묘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 보존 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강화는 각 시대마다 해상관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훌륭한 문화유산을 많이 남기고 있으나 그동안 강화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보관할 데가 없어 외부 기관에서 관리해 오던 실정이었습니다. 앞으로 강화역사박물관은 각지에 흩어져 보관되고 있는 강화 출토 유물과 새로 출토되는 유물을 비롯하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다양한 전시와 교육 문화행사 등을 마련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박물관안내자료에서 발췌)
사인비구 제작 동종 중 강화 동종
보물 제11-8호. 본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의 도로변에 있던 것을 1977년에 현위치로 옮겼다. 이 종은 정상이 반구형이며, 그 중앙에 용뉴(龍?)가 붙었는데, 용뉴의 형태는 U자를 엎어놓은 모양에 양쪽에 용두가 붙은 쌍룡이다.
따라서 용통(甬筒)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종견(鐘肩)은 입화식(笠花飾)이 퇴화된 전 같은 변죽을 돌리고 있다. 종신의 중앙에는 굵게 도드라진 두 줄의 횡선대(橫線帶)가 돌려져서 상하로 양분하였고, 윗부분에는 상대와 분리되어서 4개의 유곽(乳廓)이 배치되었다.
유곽대(乳廓帶)는 연주문 같은 둘레 장식이 전혀 없이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이 양주(陽鑄)되었고, 유곽 안에는 6판연화로 된 유좌(乳座)에 얕은 반구형인 9개의 유두(乳頭)가 표현되었다.
종신에는 당좌(撞座)가 없고 명문(銘文)만 주조되어 있으며, 하대에는 보상당초문으로 장식되었다. 주조된 명문에 의하면 종의 주조 연대는 1711년(숙종 37)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고려종의 양식에서 퇴화하면서 조선시대 종의 특색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두포축언시말비 (조선시대, 선두포 제방공사 과정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
강화 부근리 지석묘(고인돌)
문화재 구분 : 국가>사적
지정번호 : 137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7번지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전국에 걸쳐 분포해 있다. 무게가 수십 톤 이상인 덮개돌을 채석하여 운반하고 무덤에 설치하기까지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의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이다. 강화군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 하점면과 양사면으로 이 일대에는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다. 부근리 일대에는 이밖에도 탁자식 고인돌과 바둑판식 고인돌이 여러 기 남아 있다.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은 아직 발굴조사를 하지 않아 고인돌과 관련된 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하점면 삼거리 유적에서 탁자식 고인돌 무덤 5기를 발굴하여 돌방[석실(石室)]안에서 민무늬토기 조각, 간돌칼[마제석검(磨製石劍)], 돌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달도끼[환상석부(環狀石斧)] 조각 등이 나온 적이 있고 고인돌 언저리에서 빗살무늬토기들이 여러 점 나온 것이 있다. 따라서 부근리 고인돌에도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주변의 여러 고인돌과 함께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박물관,『강화지석묘(부근리고인돌) 주변 시굴조사 약보고서』, 서울대학교, 2004.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강화도 고인돌군 정밀지표조사보고서』, 강화군, 1999. 인하대박물관, 『강화지역의 선사유적·유물』, 인하대학교 박물관, 2000. 이형구,『강화도 고인돌무덤(지석묘)조사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자연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