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태안 백화산 태을암 마애삼존불, 태을동천

하늘타리. 2014. 11. 18. 08:43

태을암의 역사 <출처 : 수덕사 홈피>

태을암은 태안읍내의 북쪽에 솟아 있는 백화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태을암의 건립연대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원래 백제시대의 불상인 마애삼존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 가람이라고 짐작된다.

그리고 태을암이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다시 지었다고 전하며,

처음에는 절을 중창한 것이 아니라

1479년(성종 10년)에 경상북도 의성에 있었던 태일전과 단군영정을 이 곳으로 이안하였다고 한다.


태안군은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1373년 폐군되었는데,

이 때 다시 군을 복구하고 민생안정을 위해 단군신을 모셨다.

태일전은 태안마애삼존불 위의 옛 성안에 건축하였으나 바다와 떨어져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듬해에 단군영정을 안흥성으로 모시고

백화산의 태일전 건물에 부처님을 모셔 사찰로 용도를 바꾸고 명칭을 태을암이라 하였다.

 태을암은 1970년에 중건한 대웅전과 산신각 그리고 요사 두 채가 있으며,

동편에는 태안마애삼존불이 있다.

 

태안마애삼존불

태안마애삼존불은 백화산 중턱에 있는 높이 394cm, 폭 545cm의 감실모양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이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중앙에 보살, 좌에는 석가여래, 우에는 약사여래불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좌우의 여래상은 큰 반면에 중앙의 관세음보살(관음보살)은 작아

1보살(一菩薩) 2여래(二如來)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가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는 등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양식상으로는 중국 북제 불상양식의 계통을 따르고 있어 제작연대는 6세기 초로 추정된다.

지리적으로 당시 삼국시대 중국과의 교역에서 다리 역할을 하였던 태안반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새로운 석굴사원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가)
마애삼존불은 현재 국보 307호로 지정되어 있다

(1962년 국보지정. 1966년 국보해재 보물로 지정. 2004년 보물해제 국보지정)

마애삼존불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이곳의 바윗면에는 '태을동천太乙同天', '일소계一笑溪', '감모대' 등의 글씨와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김규황과 그 후손들이 쓴 글씨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