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영목항에서 황포항까지
걷기동우회 "우리땅 걷기"에서 하는 서해안 기행을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땅 걷기"에서는 매년 주제를 정해서 매월 1회씩 1박 2일을 이어 걷습니다
그렇게 해파랑길도 걸었고...
관동대로도 걸었고...
한강 1300리길을 걸었고...
여기도 걸었고 저기도 걸었고...
사는 곳은 멀어도 작년까지는 주제별 이어걷는 길에 종종 참여했습니다만
이번 서해안 걷기는 처음부터 일정이 않맞아서 태안군지역을 지나가는 7회째 길에서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안면도 끝자락에 있는 항구 영목항으로 갑니다.
고남면 고남리에 위치한 영목항은 안면도에선 몇 손가락안에 드는 항구입니다.
이곳에서 장고도, 고대도 가는 여객선은 1일 1회 운행하고 유람선은 인원만 맞으면 수시로 운행한다고 합니다.
까나리 액젓이 유명하여 김장철에는 무척 바쁘다고 합니다.
태안군은 태안읍, 안면읍, 고남면, 남면, 근흥면, 소원면, 원북면, 이원면 이렇게 8개 읍면이 있습니다.
이중 안면읍과 고남면이 안면도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는 옛날 부터 섬은 아니었지요.
현재의 남면과 연육되어 있는 곶이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稅穀)과 조운(漕運)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1630년대인 조선조의 인조 때에
지금의 남면의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 그러니까...
지금의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사이를 절단하므로써,
이 때부터 안면곶이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운하의 효시가 되었으며 이름을 백사수도白沙水道라고 불렀습니다.
안면곶을 절단해야 겠다는 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인종때 "소태현(태안의 옛 이름) 인근에 물길이 여러 물과 충격하는 곳이 많고
또 암석의 위험한 곳이 있으므로 자주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으니,
도랑을 파서 이를 통하게 하면 배가 다니는 데에 장애가 없을 것이다 하여,
인근 군읍 사람 수천 명을 징발하여 팠으나, 마침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조 세조 때에도 한번 시도해 보고자 하였으나
팔만하다 하고 혹은 팔 수 없다 하여 논의가 일치하지 않아서 중지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은 1970년에 연륙교(連陸橋)가 생기면서
다시 배를 타지 않고도 육지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곳 안면도는 섬 전체가 사람이 살지 않는 소나무 숲이었습니다.
이곳 안면도에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고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고 하여
왕실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기 위해 산지기 30여명쯤을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 산지기를 따라서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조성되었지요.
황장봉산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한 것 같은데
黃腸은 黃腸木에서 온 말이며,
黃腸木이란 소나무가 오래되면 심재 부위가 빨갛게 변하여 붉은 내장을 가진 나무라는 뜻입니다.
요사이는 곧게 뻗어 자라고 목재의 질이 좋은 소나무를 金剛松이라고 하는데,
금강송은 근래에 학자들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황장목이 많이 생산되는 산지를 궁궐용 목재 공급처로 정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에서 봉할 封자를 부쳐 "黃腸封山"이라고 이름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황장봉산은 문경에도 있고 경북울진에도 있고 이곳 안면도에도 있고 여기도 저기도 있었습니다.
그 중 안면도는 섬 전체가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단일 지역이라서 보호가 조금 더 잘되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해변 백사장옆으로는 소나무숲이 울창합니다.
물론 조선당시의 소나무는 아닙니다.
합방후 1914년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엄청 베어나갔지요.
천만 다행인것은 그 당시 일본놈들이 베어낸후 빈자리에 소나무 묘목이나마 심어두었다는 것이지요.
그 것들을 지금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해변길을 따라 황포항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최근에 원북면 신두리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영목항까지
97kM로 이어지는 태안해변길이라는 7개의 트레킹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서 모래언덕과 사구식 식물, 숲과 해변을 볼 수 있습니다.
7코스 바람길을 역으로 걸어갑니다.
만수동입니다.
가경주마을
섬옷섬
썰물로 옷점항에 배가 닿지 않을 때 옷감교역이 이뤄져서 섬옷섬이랍니다.
조개부리마을
예전에는 마을 저잣거리에 바다너머에서 가져온 옷감교역이 활발하였고 그 옷과 포목등를 파는 옷점이 있었다하여 옷점마을이라고 했는데
어느날인가 부터 인근에서 선사시대 조개더미유적이 발견되었고
풍어와 마을민의 안녕기원을 위해 조개부르기라는 전통행사를 계승한다고 조개부리마을로 마을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해변길 안내판에는 옷점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예전에는 갯벌체험객들이 꽤 많이 왔는데 지금도 계속 오겠지요.
독살체험장
돌로 담을 쌓은 뒤 밀물과 썰물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형태의 하나를 체험한다는 것이지요.
해안가에 돌로 긴 담을 쌓아두면 밀물 때에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이 돌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나뭇가지와 각종 망, 항아리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간석지에서는 돌을 이용해 만든 독살이 발달했지요.
멀리서 당겨본 돌로 만든 그물, 독살입니다.
고남제방을 지나 바람아래 해변으로 갑니다.
바람아래해변은 마치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도 비켜간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바람아래 해변은 패스하고
해변길을 버리고 내륙길을 걷습니다.
장곡리 마을길로 들어섭니다.
장곡리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장곡해수욕장은 장돌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아늑하고 조용한 해수욕장입니다.
장삼포로 갑니다.
안내판에 보조설명이 필요하네요.
이 바닷가에서 대숙이라 불리는 뿔소라가 많이 나서
그 뿔소라를 먹고나서 버린 껍질이 밭을 이루어 이 일대를 대숙밭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태안반도의 갯가는 갯것이 풍부하여
먹을 것이 필요하면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고 합니다.
특히 ‘대숙밭’이라 불렸던 충남 태안 장삼포해수욕장 주변 마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갯가가 반찬 창고였다고 합니다.
숲길을 넘어 운여로 갑니다.
운여
운여에서 황포항을 이어주는 제방을 넘어갑니다.
황포항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타고 점심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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