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수원 서호, 축만제, 항미정

하늘타리. 2014. 7. 8. 08:38

신도림역에서 천안방향 전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화서역을 지나갑니다.
문득 지난 2월 경기삼남길을 걸을때 AI로 인해 서호공원일대가 폐쇄되어

여기산 서쪽으로 빙돌아서 내려간 기억이 납니다.

수원 서호 그 자체로는 몇번을 다녀 갔지만

경기 삼남길 루트로서는 건너 띄었구나하는 생각에 수원역에서 전동차를 내립니다.


다시 화서역으로 올라와 전동차에서 내립니다.

 

서쪽 출입구로 나와 꽃뫼공원을 지나 서호로 갑니다.

 

 

 

 

웨딩펠리스

농촌지도자회관에서 수익사업으로 하는 예식장의 이름입니다만

이제는 이 건물의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농촌지도자회관이라고 부르는 것도 조금 어색한게

1971년 지어질때 부터 농민회관으로 불러왔기 때문일겁니다.

농민회관은 우리나라 전체 농업인의 전당으로 활용토록 상징적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농민회관 정면에 그 당시 농민회관 건립을 적극 지원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농민회관"이라는 글씨가 청동판으로 부각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농촌지도자회관이라고 개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수공원 입구로 들어갑니다.

 

공원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조형물이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 몇주년 기념탑과

이곳에 연수원이 있었다는 표식입니다.

지금의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은 성남시 분당구에 있지요.
같은 성격인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새마을 운동 중앙연수원이라고 합니다.

 

서호공원에 크게 자란 소나무숲을 보고

 

서호천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를 봅니다.

새싹교라고 이름붙여져 있는 저다리
그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까요?

 

어도아래 모여 있는 새들

 

정말인지 억울한건지 누군가는 이아이들이 어딘가에서 AI를 가져 왔다 그러고
누군가는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금류들에게서 병을 옮겨받았다고 합니다.

 

한때는 철새가 오고가는 물가에 접근도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접근통제는 하지 않습니다.

철새를 보며 느끼는 마음이 어째 
미안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호숫가를 걸어갑니다.

 


수중섬이 둥실 떠 있습니다.

 

저 섬은 언제나 저 모습 저 크기일겁니다.

 

수중섬 가장자리가 물살에 깍일까봐 빙둘러 사방공사를 해 놓았으니까요.

 

 

삼남길 표식을 봅니다.

아주 아주 반갑습니다.

 

외로운 물새 한마리 보아주고..

 

너의 친구들이 금년초에 병을 얻어 많이 세상을떠났단다.

이제 한풀 지나간듯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건강해라...

 

우리도 이 길을 걸어 마음과 몸의 건강을 지킵니다.

 

 

 

방죽을 만납니다.

 

 

 

국립농업과학원이 보입니다.

그 뒤로 보이는 산이 수원에 사람들이 일찍부터 살았음을 보여주는 선사유적지인 '여기산'입니다.

 

여기산 중턱 국립농업과학원이 잘 보이는 곳에 우장춘(禹長春) 박사의 묘가 있습니다.

우장춘박사는 명성왕후를 시해하는데 가담한 아버지 우범선의 죄과를 갚고자 1950년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귀국후 갖은 박대속에서도 한국 육종학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 유명한 ‘씨 없는 수박’와 척박한 강원도 땅에 맞는 ‘강원도 감자’,그리고 지금의‘제주도 귤’을 개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 재래종 채소와 양배추를 교배하여

우리 땅에서 잘 자라고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 배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동쪽 경부철도와 서쪽 서호천까지의 넓은 논지역

이 서둔 벌판이 일제 침략초기 설치한 통감부에서 1906년 6월 15일 개설한 권업모범장입니다.
‘권업모범’이라는 이름은 쓴 것은 일본식 농업방법을 이곳에서 실행하고

이를 조선인에게 보여주어서 개량에 노력하게 한다는 의미였지요.


통감부가 추진한 권업모범장에 대하여 대한제국 정부는 모범장을 이양해 줄 것을 요청하여,

1906년 11월 이양받았습니다.
이듬해인 1907년 3월 22일 ‘권업모범장관제(勸業模範場官制)’가 고종의 재가를 얻어 발포되면서

1907년 5월 15일 수원 권업모범장이 공식적으로 개장식을 하였습니다.


이는 농업개발이 국가적 재정확보의 중요한 영역임을 알았던 때문입니다만...

다 허망한 것이 1910년 합병과 동시 모든 것은 일본의 재산으로 속하게 됩니다.
1929년 권업모범장은 ‘농사시험장(農事試驗場)’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뚝에 꼬리명주나비 복원지역이라고 쓰여 있네요
꼬리명주나비는 호랑나비과의 한 종류입니다.
한국 고유종으로 가늘고 긴 꼬리와 날개 뒷쪽 붉은무늬가 무척이나 매혹적이고...

나는 모습이 꼭 유영을 하듯이 우아하게 납니다.


그런데 요새는 자주보기 어렵지요.
이 나비를 잡아 어떻게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나비의 애벌레가 먹고 자라는 쥐방울 덩굴들이 주변 제초및 제초제등의 영향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으니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벌채나 방제작업뿐 아니라 제방의 출입을 금한다고 써있습니다.
사향제비나비도 쥐방울덩굴을 식초로 사용합니다.

 

둑방을 걸어가며 파노라마사진 몇장 찍어봅니다.

 

 

 

 

 

 

 

 


작물시험장 뒷문으로 갈 수 있는 길

 

다시 둑방길

 

축만제표석

 

 

조선 정조때 수원성을 수축하면서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게 되자

사관병졸들의 급료나 기타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한 화성둔전(華城屯田)을 설치합니다.
그 둔전에 물을 대려고 수원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호수를 파고 방죽을 축조하였는데,

서쪽에 축조한 것이 이 축만제(祝萬堤, 西湖)입니다.
북쪽에 판 것이 만석거이고,

동쪽, 지금의 수원시 지동에 축조한 것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남쪽에 축조한 것이 사도세자 묘역인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 앞의 만년제(萬年堤)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세를 날리던 곳은 정조 19년인 1795년 축조된 만석거입니다.
정조대왕의 화성능행차 시에는 이곳을 경유하여 장안문을 통과하고 현륭원으로 원행이 이루어졌지요.
저수지 가운데는 작은 섬을 두어 화목을 조화롭게 심고,

수에 연꽃을 심었으며,

호수 남단의 약간 높은 곳에는 영화정을 세워 정자에서 만석거 부근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습니다.
현재의 영화정은 1996년에 원래의 자리에서 북동쪽으로 이전하여 복원된 것입니다.


이 축만제는 만석거축조 4년뒤인 1799년에 축조되었습니다.

 

만석거의 영화정이 명소가 되었지만

수원의 외곽에 위치한 규모가 큰 저수지였던 서호는 실질적인 농사에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방수구 위에 건설된 다리를 넘어갑니다.

 

 

 

수문

 

그 넘어로 항미정이 보입니다.

 

순조 31년인 1831년에 수원유수 박기수(朴綺壽)가 축만제를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정자를 지어

‘항미정(杭眉亭)’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수문앞을 지납니다.

 

 

항미정

 

 

 

 

항미정은 순종황제가 쉬어 갔던 정자이기도 합니다.

 

순종황제가 수원을 찾았던 것은 1908년의 일입니다.
1908년 10월 1일 건릉과 융릉에 나아가 친제(親祭)를 올리고 점심을 드신후

기차로 서호 임시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방수로(放水路)를 따라 도보로 걸어가서 권업모범장을 순람한 후

항미정에서 잠시 쉬셨습니다.
이후 권업모범장 방문기념으로 조선 소나무를 기념 식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909년(융희 3) 6월 1일 순종황제의 계비였던 순명효황후도

독자적으로 권업모범장을 순시하고 양잠(養蠶)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지요.

 

그 이듬해 나라가 망하니 전부 부질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항미정이 건축된 이후 서호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습니다.

 

해질녘 석양이 드리운 서호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서호낙조(西湖落照)’는

수원을 대표하는 수원8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항미정은 1986년 4월 8일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러한 풍취는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의 그림에도 남아 있습니다.

나혜석이 그린 그림 ‘수원 서호’를 감상하시지요.

 

서호천을 따라 내려갑니다.

 

 

 

 

 

 

 

 

 

 

 

 

 

 

 

 

 

 

 

다리로 올라가

한국전쟁중 터키군이 불쌍한 한국전쟁고아들을 위해 설치한

앙카라고아원터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