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블로거기자단팸투어

청원 문의문화재단지

하늘타리. 2014. 6. 24. 17:45

 문의문화재단지를 답사합니다.

 

문의문화재단지는 청주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32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문의가 나오고

 좀 더 가면 넓고 시원한 대청호가 눈에 보입니다.

문의문화재단지는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답고 시원스러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답사에 앞서 문의문화재단지 홈페이지에서의 인사말과 설립취지문을 옮깁니다.


" 인사말.

시골스런 투박함과 신도시로의 새로움을 꿈꾸는 퓨전마을 문의를 살짝 지나면

병풍처럼 펼쳐진 녹음에 물든 대청호가 눈앞에와선다.

그리고 곧 양성산 언덕바지에서 손님맞을 준비를 하는 문화재단지를 만날 수 있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빛햇살을 잘 받아든 대청호를 애잔한 추억과 고즈넉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문화재단지!

양성문을 들어서 장승과 솟대앞에 서면 넉넉한 호수의 청량한 바람이 이 무더운 여름에 흐르는 한줄기 땀을 마르게 한다.

1980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수몰위기에 처한 지역문화재를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에

 1992년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총 4만여평의 대지위에

민가 5동, 관아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와 5,000평의 주차장이 조성 되었다.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특히 청동기시대를 가늠케하는 고인돌,

다산과 번식을 상징하는 기자석을 돌아서면 충신문과 효자각이 마음에 깨달음을 일러준다.

 

설립취지.

문의문화재단지는 1980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1992년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총 4만여평의 대지위에 문화재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이곳은 청원군내 유형·무형의 문화재등를 수집 전시함으로써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조상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한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문화단지앞 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문의 수몰유래비

"충북 청원군 문의면은 옛날 백제 때에는 일보산군이었고,

통일신 라 때에는 연산군으로 개칭 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청주군에 속해 있었다. 고종 46년 문의현이 되었고

1930년 양성면과 용흥면이 합쳐져 문의면이 되었다.   


 대청댐이 1975년 3월 착공하여 1980년 6월 30일 완공,

그해 12월 5일 준공됨으로 문의면 18개리 73개 부락 2,299호 12,786명) 중

12개리 35개 부락 (1,031호, 7,385명)

수몰로 인해 정든 땅을 떠나 전국 각지로 이주하게 되었다.


  수몰 20여년이 지난 오늘, 정든 고향을 떠난 수몰민의 애환을 달래고

향수와 망향의 한을 그리며

문의의 역사를 여기 비에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함이라.
 
                                          2004.   11.   11 

문의수몰유래비 옆 "고향을 그리는 마음" 조동마을탑

 

"갈라진 땅이야 합치면 북쪽 끝 땅자락 어디인들 밟지 못할까마는

 우리는 언제 우리가 보금자리 틀고 오순도순 모여 살던 그 땅을 밟아 볼 수 있을까
이제 다시 밟아볼 수 없는 고향 마을에 그때의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이렇게 탑을 세운다..."

 고읍시비

古邑(고읍) / 霓谷 洪聖來(예곡 홍성래)
 
養性山(양성산) 靈氣(영기)받아 한자락 펼처지니
眞境(진경)좋을시고  福(복)하여라
모두가 큰 所望(소망) 지레 품고
태어나게 한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文(문)과 義(의)로 氣極(기극)삼고 善隣(선린)바랫더니
정답던 이웃벗들 어디론가 흩어지고
아끼던 情(정)든 山河(산하) 마음에 새롭고야
大淸湖(대청호)에 잠긴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陶唐山(도당산)에 비췬달빛 太古(태고)에 변함없고
無心(무심)한 물결보니 哀憐(애련)도하다.
恨(한)참고 눈물짓는 失鄕民(실향민)의 아픈마음
아는지 모르는듯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榮枯(영고)의 긴 歲月(세월) 忠孝烈婦(충효열부) 태어나고
三國(삼국)의 名將(명장)들이 목숨걸고 다투든곳
넓은품에 물을 담아 蒼生(창생)의 젖줄되니
갸륵하다 너의베품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문화재단지안내도

 

 

 

 양성문

 

양성문은 문화재단지가 위치한 양성산에서 유래 되었으며,

산에는 신라 자비왕 17년에 축조한 산성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단지 정문인 양성문은 산성 정문을 상징하며

성곽도 산성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문옆 안내문을 봅니다 

 

성문을 들어가서

 

 

성담위로 보이는 대청호를 봅니다.

 

다시 문의문화재단지 홈피내용을 옮깁니다.

 

"단지소개
문의민가, 낭성민가, 주막집, 놀이마당이 옹기종기 둘러 옛조상들이 살았던 마을형태를 보여줄뿐 아니라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과 궁색하기 이를데 없는 흙벽돌 초가삼칸 토담집이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양반가옥안에는 관람객들이 단순히 보고 지나치지 않도록 의·식·주를 기본으로하여

민속예술과 일상에 필요한 도구 등 주제별로 자세히 분류하여 사진과 함께 그 쓰임과 의미등을 밝혀 이해를 도왔다.

양반가 뒤편에는 효 문화의 상징인 시묘(侍墓)살이용 여막(廬幕)을 가묘와 함께 조성했다.
신세대들에게 경로효친사상을 일깨워주고자 건립된 여막안에는

전통상례 및 제례절차안내문과 관련사진, 제사상, 상제 모형 등을 전시하였다.


단지 위로 올라가다보면 중부지방에선 보기 드문 돌너와집(부용민가)이 자리하고 있다.

돌을 판판하게 기와처럼 만들어 지붕을 이은 집으로 이색적인 형태의 지붕이다.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에는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날에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하여 절을하는 의식을 거행하였을뿐 아니라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였던 중요한 건물이다.
.
문화재단지의 자랑거리라면 유물전시관을 들 수 있겠다

기와를 테마로 추진하여 현재는 신라, 백제와당 등 시대별, 종류별로 200여점이 전시되었고,

 민속자료 90점, 서적류 150점 기타 유물 60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관 앞뜰에는 고려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산석교를 복원하였다." 

단지내에는 문의 아득이 고인돌, 미원 수산리 고인돌, 내수 학평리 고인돌이 이전되어 있고

문의현의 관아 객사 건물인 지방유형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이 이전 복원되었으며

낭성면 관정리와 문의면 노현리, 부용면 부강리에서 민가가 이전 되었으며,

서길덕 효자각, 김선복 충신각 및 문의지역에 있던 옛 비석도 이전 되어 있다.

옛 조상들의 생활풍습을 알기 위하여 양반가옥, 주막집, 토담집, 대장간, 성곽 등이 고증을 거쳐 건립되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영조대왕태실 조성을 기록한 지방유형문화재 제70호인 영조대왕태실가봉의궤를 비롯하여

군내에서 수집한 유물을 전시한 유물관과 백제부터 근대까지 기와를 시대별로 분류한 기와전시관이 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답사코스를 잡아
양성문을 들어와서 산성을 따라가서 청원군내 유물을 볼 수 있는 문화유물 전시관에서 부터 답사를 시작합니다.

 
안내문이 잘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을 참고하여 사진을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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