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읍에서 수산쪽으로 가는 성읍교 입니다.
성읍을 지나와서 돌아본 풍광입니다.
다리 난간에서 하천을 내려다 봅니다.
하류쪽 천미천
아주 오래전에 평탄화공사를 해서 그냥 평평합니다.
동문앞의 정남이소, 허울이통 등이 모두 없어져
물통에 관련된 옛 스토리 들은 모두 다 허망해 졌습니다.
상류쪽 천미천
큰 공사는 아닌데 무슨 공사를 합니다.
그래도 궁금해서 다가가 봅니다.
봐도 모르겠고...
하상으로 내려가 봅니다.
흙물이 고여있던 흔적
참 물앍고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아쉬움으로 다리쪽을 돌아 봅니다.
물맑은 곳을 찾아올라 갑니다.
여기도 흙탕물이 고여있던 흔적...
물새들은 이 주변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 일대에서는 이 부근에만 적당한 깊이로 물이 고여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보자. 맑은 물이 있겠지.
여기도 흙탕자국
조금만 더
잠시 쉬고...
이제는 도대체 어디에서 흙탕물이 밀려왔나 궁금해 집니다.
성읍1리와 2리경계를 연해서 엄청 큰 저수지공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마무리공사 단계라서 그곳에서 흙탕물이 밀려들지는 않거든요.
소 위에서 어떤 공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다리를 놓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왼쪽으로 성읍리교차로까지 연하는 농로가 있습니다.
그 농로에 이어서 하천 우측도로까지 다리를 놓으려 합니다.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수 없지만 공사를 많이해야 유능한 이장이니까 말릴수는 없지요.
뒤돌아 보고...
다시 전방을 봅니다.
엉망이구나
차 있는 곳까지 돌아갈까 하다가 정소암까지 가보려 합니다.
예전에 당이 있었던 기슭을 이용 큰 소옆을 우회합니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 하천계곡은 제주도 대부분의 하천처럼 건천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 물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라산 계곡처럼 험하지도 않으면서 한쪽으로 영모르,
한쪽으로는 바스매가 아주 깊은 심산계곡에 들어와 앉은 듯한 몃진 풍광을 제공하였지요.
그런데 밑으로 읍성동쪽에는 모두 평탄화 작업을 했고
이곳 바로 상류에 저수지공사를 하여 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물이 많이 모여 있었으나 이제는 물없이 바닥이 그냥 드러나는 곳이 많습니다.
공사 때문만이 아니고 오랜기간 비가 않와 가물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여기도 항상 물로 막혀서 주변 기슭으로 돌아가야 했었습니다.
가메소
솥처럼 생겼다해서 가메소입니다.
가메소인근이 정소암인데
그런데 오래간만에 와서인지 물이 많이 빠져서인지
딱부러지게 여기가 정소암이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일대에서 예전에 정소암 화전놀이를 했답니다.
좌우 풍광이 아름답고 벼랑아래로 제주 참꽃이 만발한데다
맑은 물이 옆에 있으니 주변 넓적한 바위에 앉아 화전놀이하기 딱 좋았을 겁니다.
성읍리에서는 재일교포 출신의 고(故) 윤정환 옹의 후원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곳 정소암에서 시회를 겸한 화전놀이가
면장과 마을 유지, 정의향교 임원 등이 대동된 가운데 재현되었었습니다.
양수 3이 두 번 겹치는 3월 3일 삼짇날이 되면 정의현감이 관속뿐만 아니라
선비와 일반서민들을 거느리고 이곳 정소암에 와서 화전놀이를 즐겼다고 전한 옛일을 재현한 것입니다.
진성기 선생의 책 '제주도 민속'에 이에 관한 사항이 나와 있습니다.
" 해마다 춘삼월 삼짇날이 되면 정의현 안의 각 면에서 모여든 선비들과 관속, 서민들이 참여하여 잔치가 베풀어졌다.
사람들은 솥단지를 걸머지고 가서 밥을 하고 떡을 해 먹으며 하루 종일 춤추며 놀았다.
향교의 선비들은 글을 지어 풍월을 다투었고
이때 장원한 사람에게는 황봉(黃封)이라 해서 술을 상품으로 주었다.
또한 기생들은 신목사타령, 사랑가 등 유희요를 부르고,
사령들은 비명에 죽은 죄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칼춤을 추었다.
지방의 양반들은 원님에게 어려운 일을 진정하기도 하였다.
이 날만은 백성이 관리에 대해서 얼마쯤 불경한 태도를 보여도 벌주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대가 전부 정소암입니다.
정소암을 鼎沼岩이라고 표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가메소에서 그렇게 유추하는 가 본데
정소암은 고만고만한 물 구덩이들이 많이 있는 넓고 평평한 암반이라
허방다리 정자를 써서 穽沼岩이라고 표기가 됩니다.
배천소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심한 가뭄으로 가까운 곳에 물이 없을 때는
음용수를 이 소(沼)에서 충당하였습니다.
더 가물어 지면 배천소에도 물이 마릅니다.
그러면 우마가 끄는 마차를 이용 지금 저수지공사하는 곳으로 빙돌아 내려와서 물을 퍼서 싣고가던 곳이 이곳입니다.
그래서 싣고 가는 물이라고 시끄는 물이라고 합니다.
영모루를 보고
성읍2리 구렁팟마을 쪽으로 갑니다.
등수국이 그만 가라고 말합니다.
몸을 돌려 다시 내려가다가 저수지공사하는데로 올라갑니다.
규모가 써있는데 보아도 얼마만큼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알 수 가 없습니다.
단지 보이는 이것이 전부다 저수지가 되는구나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마을과 주민을 위한 공사라니 잘 되야 겠지요.
저수지 공사장을 둘러 봅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곳에서 영모루로 치올라가려고 합니다.
무선돌의 전설을 찾아 가려고요.
이 오름은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기 전에 산이 온통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읍 나이많은 어른 들은 다 바우오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위에 깃든 전설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
" 아주 먼 옛날 이 마을에 어느 부자집 딸과 가난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은 늙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이 효성의 귀감으로 삼을 정도였다.
어느날 산에서 땔나무를 해오다가
물을 긷고 가는 부자집 딸과 마주친 뒤로는 그 처녀 생각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 처녀를 보려고 일은 커녕 어머니를 봉양하는 일마저 다 접어둔체 길목을 지키고 섰기 일쑤였다.
이러한 날이 계속되자 마을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부자집 딸에 대한 연정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그의 어머니는 돌보는 이 없이 외로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마을에서 고립되다시피 했다.
하루는 부자집 딸이 길가는 것을 막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교롭게도 그 광경을 그 처녀의 아버지가 보고 말았다.
부자집 딸은 집에서 쫓겨났고
할 수 없이 그 총각과 살림을 차렸으나
워낙 마을사람들의 눈초리가 매서워 더 이상 마을에 눌러앉을 수가 없었다.
둘은 마을을 뜨기로 하고 막 동구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더니 그들 위로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보니 그들은 무선돌이 되어 있었다."
그 무선돌을 보러 갈까 했는데...
예전 가던 길에는 펜스가 쳐져 있네요
그래서 옆으로 돌았더니 여기는 야자를 심고 철조망을 쳐놨습니다.
산수국 파란 헛꽃을 보며 장마철이 멀지 않았구나 중얼거리며 옆으로 빙 돌았더니
여기는 아예 경보시설을 해놨네요.
이 방향에서는 영모루를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않가죠 뭐...
차 세운곳으로 내려갑니다.
망초밭을 지니다 다시 한번 계곡으로 내려가 봅니다.
다시 길로 올라오는데 배수장이 생겼습니다.
다리공사하는 곳을 지나고
차세운 곳에 와서 앞에 보이는 영모루와 다시 보자며 인사합니다.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Op. 48
1. Pezzo i forma di sonatina,
Andante non troppo - Allegro moderato 8:41
2. Valse, Moderato - Tempo di Valse 4:00
3. Elegia, Larghetto elegiaco 9:00
4. Finale (Tema russo), Andante 7:17
Vladimir Spivakov, cond
Moscow Virtuosi Chamber O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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