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진천 길상사

하늘타리. 2014. 2. 7. 21:04

(충청북도 기념물 제 1호)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흥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천현 산천조와 사묘조에 의하면

 신라때부터 장군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사당을 건립하고

 국행제를 지내오다가 조선 태종 8년부터 관행제로 치제하였다.

 

그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당이 소실되자

1851년(철종 2)에 정재경, 박명순(朴命淳) 등이 백곡면 가죽리에 죽계사(竹溪祠)라는 이름으로 사당을 재건하여

조감과 함께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죽계사가 철거된 이후

진천읍 벽암리 소흘산(所訖山) 아래 서발한(舒發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사당을 짓고 계속 제향하였으나

 1922년 홍수로 유실되었다.

 

1926년에 후손인 김만희(金萬熙)의 주선으로

현재의 위치인 벽암리 도당산성(都堂山城) 안에 길상사를 건립하였다.

 

6·25전쟁 때 심하게 파손되어 중수하였고

 1976년 사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전면 신축되어 현재에 이른다.


입구의 홍살문과 본전인 흥무전(興武殿)을 비롯한

관리사·내삼문·협문 2동 등 총 6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입구부근에 구 관리사(제기고)인 모운당(慕雲堂)이 있다.

 

흥무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으로

벽면과 기단 등을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목조건물이다.

 

안에는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가로 98cm, 세로 187cm의 영정이 있는데

1976년 11월 5일에 봉안된 것이다.

바깥 뜰에는 1957년 세운 "흥무대왕신성비" <이 선근이 글을 만들고 김 만희 씀> 와

안뜰에는 1976년에 세운 "김유신장군사적비" <이 은상 글 김 충현 씀>

그리고 입구에는 같은 해에 세운 "길상사중건사적비" <조 건상 글 이 상복 씀>가 있다.

 

김유신은 만노군(萬弩郡:충북 진천) 태수였던 김서현(金舒玄)과 만명부인(萬明夫人) 사이에서 태어나

673년(문무왕 13)에 79세로 별세하였다.

후일 삼국통일의 이룩한 공으로 835년(흥덕왕 10)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고

경주의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그의 묘(사적 21)는 경북 경주시 충효동에 있다.

진천군에는 길상사 이외에도  장군의 태를 묻은 태령산의 김유신태실 및 돌담,

탄생지인 상계리의 김유신장군유허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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