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치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신경림의 시, '주천강가의 마애불"입니다.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시귀에서처럼
마애불은 바위에 새겨진 우리의 심상이지요.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조상들은 바위 속에 영험한 신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기에,
마애불은그러한 암석신앙과 불교신앙이 결합된 결과라고 보아야 할것 입니다.
삼한시대에는 영주․안동과 함께 진한 기저국 땅이었던 봉화.
봉화에서 부석사로 향하는 길목, 들판에서 만나게 되는 신라의 돌부처가 있습니다.
지림사에 있는 국보 201호인 북지리 마애불여래좌상입니다.
마애여래좌상은 봉화 호골산 줄기 끝 부분에 있는 자연암벽을 조각해 만들었습니다.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1.7m 이상 도드라진 양각으로 새겼습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습니다.
감실(龕室) 안의 본존불(本尊佛)로 조성된 보기 드문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입니다.
오른손이 파손되었으나 흔적으로 보아 가슴에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왼손은 무릎에 내려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손의 모습과 위치에도 뜻이 담겨있는데,
올린 손은 시(베풀), 무(없을), 외(두려워 할), 내린 손은 여(줄), 원(원할)이라 하여
두손을 합쳐 '두려워 말라, 너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부처님들을 살펴봅니다.
안내판의 공식설명을 보시지요.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지림사는 축서사 창건설화에도 등장합니다.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의상대사가 지림사에서 산쪽을 바로 보니
멀리 서광이 비취는 것이 보여 빛이 도달한 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智林寺在文殊山)’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중․후기까지 사찰이 존속하였음을알수 있습니다만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혹은‘축서사로 인하여 사세가 기울었다’는 등의 이유로
폐사되었다고 구전되고 있습니다.
1949년경 현 위치에 '수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워 1980년 국보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을 보호관리 하며
지금의 원통전을 큰법당으로 하여 전통을 유지하다가,
2009년에 창건당시의 절 이름인 지림사로 개명하고 2010년에 대웅전을 중창하여
중앙 불단에 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등 삼존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새로운 대웅전 중건전까지 이 절집의 큰법당 역할을 해온 원통전입니다.
신중탱과 산신탱, 그리고 석고로 만든 지장보살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법당 뒤편 야트막한 산의 암벽에도 마애삼존불과 마애삼층탑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높이 5m 폭 7m 가량의 석벽에 얕은 감실을 파고 불좌상 4구와 탑을 돋을새김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암질은 사암이 많이 섞인 화강암이고 돋을새김이 깊지 않아 남은 형태는 그리 뚜렷하지 않습니다.
1미터가 좀 넘는 3구는 그나마 대강 윤곽을 알아 볼 수 있으나,
가운데와 왼쪽 불상 사이 무릎께에 있는 1구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체로 결가부좌에 합장한 모습이라고 유추합니다.
그 옆에 남향한 삼층탑 1기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 높이 1.5m정도 되며, 조각 솜씨도 소박한 편입니다.
마애탑은 이곳과 경주 남산 탑곡부처바위의 구층마애탑과 칠층마애탑,
그리고 경주의 백률사 삼층마애탑말고는 아직 알려진 예가 없습니다.
이곳의 부처와 탑은 마땅한 이름 하나 제대로 얻지 못했습니다.
실재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존재를 쉽사리 알지도 못합니다.
와서도 보지도 않고 보고서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다 같은 부처의 모습인데 국보부처와 무명의 부처 사이에는 이렇듯 큰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과 비바람속에서 소멸되어 갑니다
C. W. Gluck
La Clemenza di Tito (Wq.16)
(Act 2) Sesto's Aria
Se mai senti spirarti sul volto
만약 당신의 얼굴에 숨결을 느끼면
Magdalena Kozena, mezzo-soprano
Prague Philharmonia
Michel Swierczewski, c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