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청주시 최영장군영당을 갑니다.
청주곻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시내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오근장역 지나 외평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립니다.
내리면서 눈에 들어온 버스노선 안내도
청주의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노선안내도를 볼때마다
동네 사람들이나 알지 객지에서 온사람은 저 그림에서 어떤 도움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넘어가고....
동네입구의 네개의 비석
영당 입구 표지석은 2001년에 세웠습니다.
동주최씨 청주파 손부회일동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뒤로 소류지가 보이는데
임공항조채공세환기념비에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자연적으로 발생된 소류지가 아니고
1926년 홍수로 주변일대가 황폐화되자 그 두분의 출연으로 농업 용수를 저장하기 위해 만든 흙댐입니다.
1930년인 소화5년에 금천보 중간에 비를 세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8년 오근장역앞으로 도로가 뚫리면서 그 큰보가 일부를 남기고 다 메꾸어졌습니다.
이 마을의 입구부근에 있는 집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옛 부락이 아니고
청주공항확장으로 원자리를 빼앗기고 집단 이주되어 생긴 마을입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쭈욱 들어가면 입구표석부근에 있다가
1978년 도로건설로 옮겨진 최영장군의 영당이 있습니다.
고려 후기 八道都統使 武愍公 崔瑩將軍의 影幀을 봉안하였으며
최영장군의 호를 따서 奇峰영당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기록상으로는 1854년인 철종 5년에 창건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1978년 이건 복원하였습니다.
통상 최영장군 영당이라하면
1956년 후손 최영윤(崔榮倫)의 발의로 강릉 병산 덕정봉(德亭峯) 서쪽 기슭에 세워진 덕봉사(德峯祠)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강릉시장을 초헌관으로 하는 꽤 성대한 다례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는데
이곳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최영장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70-2 에 있으며 경기 기념물 제 23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영당을 관리하는 집이 붙어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소리쳐 불러봅니다.
무슨 혹시나 ...
문을 열어주어 영정을 볼 수있지 않을까하는 거지요.
아무런 응답도 없고...
기록에 의햐면
영당 안에는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최영 장군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딴 이야기로...
사당이나 서원등을 참 어렵게 찾아가면
문이 꽁꽁 잠겨있어서 담밖에서 카메라 치켜들고 까치발을 합니다.
이러면서 뭐땀시 찾아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은 어디로 전화하면 어쩌고 저쩌고 한다 합니다만
생업 또는 공무수행에 바쁜 누군가가
몇몇의 비공식적호기심 충족시켜주러 시간을 낼수가 있나요.
앞으로는문화해설사가 배치되지 않은곳은 가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 결심합니다.
사적비
최영을 팔도도통사라고 합니다만
당시 고려의 국왕인 우왕은 요동정벌 결정을 내려놓고는
사령관인 최영을 원정군으로 보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서경(평양)에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원격으로 이성계를 지휘하라고 하였지요.
아버지 공민왕이 가까이에서 시봉하던 내시에 의해 살해된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믿는 최영장군이 멀리가는 것을 참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실제병력을 장악한 이성계는 병사들을 독려하여 싸우려고는 않하고
회군의 핑계를 찾습니다.
병사들에게는 이 모든 고생이 왕과 최영때문이다.
특히 최영은 불필요한 요동정벌을 계획하여 우리를 이렇게 고생하게 하고
자기는 서경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하며
최영에 대한 미움을 일으킨 후 위화도에서 회군을 합니다.
성계가 회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왕과 최영 장군은 서경을 떠나 급히 수도 개경으로 돌아와 수도 방어에 나섰습니다만
절대다수의 병사가 요동정벌군으로 차출되어갔으니 성을 지킬자가 없습니다.
우왕과 최영은 병사들에게 붙잡혀 마구 다루어지다가
우왕은 강화도로 유배된 끝에 강릉으로 옮겨져 이듬해 살해됐고,
최영은 충주로 이배된 끝에 공료죄(攻遼罪)로 개성으로 압송돼,그 해 12월에 목이 베어집니다.
최영을 죽이기 위해 요동을 공격한 죄라는 공료죄를 만들어 참수하였습니다.
최영장군은 그렇게 억울하게 갔습니다.
무속에서는 최영, 임경업, 신립, 남이 장군등이 상당히 권위있는 신으로 받들여집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혁혁한 전공으로 국가를 구하거나 지탱했음에도 그 죽음이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지요.
정북동 토성으로갑니다.
Mozart Violin Sonata K378 in B-flat major violin Karl Suske & piano Walter Olbe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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