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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소리가 들리다. 성수산 상이암

하늘타리. 2013. 10. 13. 17:28

 무주의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노령산맥이 임실군 성수면을 지나는 곳,

높이 876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한 성수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산 정상 부근에 상이암이란 암자가 있습니다.
윗상上과 귀이耳 자를 이름으로 쓰는 조그마한 암자인데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설화가 함께 전해내려옵니다.
성수산 자영휴양림을 지나 정상쪽으로 쭈욱 올라가다가 구름재에서 오는 길을 만나후

정상갈림길 표지에서 벋어나 올라갑니다.

 

 

 

 

앞으로 전각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그리 가는 것 보다는 그 직전에서 몸을 돌려 좌측 바위봉우리로 올라갑니다.

 

 

 

 

이 곳에 서면 성수산 정상이 보이고

 

산 아래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그리고 상이암의 상징이라고도 할수 있는 아홉형제가지전나무가 머리끝까지 보입니다

 

바위봉우리에서 내려와 전각앞으로 갑니다. 

 

전각 안에 삼청동이라는 비석문이 있습니다. 

 

 이 비각은 어필각(御筆閣)으로

안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쓴 '삼청동(三淸洞)'을 새긴 비석이 있습니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이고 풍판을 댄 맞배형식의 목조기와집으로 자연 기단 위에 원형주초를 놓고 원형기둥을 세운 건물입니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이성계는

당시 도선암이라 불리우던 이 암자를 방문합니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고

승천하면서 ‘성수만세(聖壽萬歲)’라 하는 길몽을 꿉니다.

그는 크게 기뻐하여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고 썼다고 하지요.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이 삼청동이라고 쓴 바위앞에 어필각(御筆閣)을 지어 보존하게 했다고 합니다.
 
비각 좌측에는 1922년에 세운 <조선태조고황제어필삼청동비각중수비>가 있습니다.

 

비각 우측 커다란 바위에 나무아미타불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이름들이 쓰여 있습니다.

석공도 대단한 이들만을 골라썼는지 글씨체가 모두 그럴듯 합니다.
당시의 풍조가 그랬으니 그러련 합니다만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 집니다.

 

고려 왕건도 저 바위 어딘가에 환희담이라고 써놓았다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신라 말에 도선스님이 이산의 산세가 비범하여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 권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끝낸 후 목욕을 하던 그는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습니다.

크게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 후 왕건은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신라를 복속시킨 뒤 국호를 고려라고 고치고 태조가 되었고

도선스님은 이를 기념하여 이 자리에 도선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합니다.

 

상이암으로 들어섭니다. 

 

무량수전

 

상이암은 창건설화에서 처럼 고려초 도선스님이 세웠다고도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가야선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합니다.

그후 조선 태조3년(1394) 각여선사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원 선사가 재건하였습니다.

이후 상이암은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에 의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어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습니다.


무량수전은 1958년에 세운 인법당을 2002년에 고쳐 지은 것입니다.
앞면 4칸, 옆면 3칸의 겹처마에 풍판을 댄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기와집입니다.
편액은 ‘무량수전’이고 주련은 없고, 내외부에 단청이 없습니다.


내부에 선정인에 유리구슬을 지물로 든 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신중탱

 

 

옆문 위에 붙어 있는 상이암 편액.

 

 

상이암 칠성각입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목조기와집입니다.

특이하게도 전각의 외부에 운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치성광여래좌상

 

지장보살상

 

 

칠성각 옆에 마애글입니다만

산신각중수 참봉 진재석이라고 쓰여 있네요.

 

상이암 부도

 

 

 세개의 부도 중 두개, 해월당 부도와 두곡당 부도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는데

해월당 부도는 항아리모양의 몸체위에 8각형의 옥개석을 올리고 그 위에 보주를 갖춘 194cm 정도의 높이입니다.
두곡당 부도는 석종형 부도로 8각의 하대석위에 교복형으로 된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보주를 얹은 높이 125cm의 부도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이암 산신각

 

상이암 산신각내 산신탱화

 

 

어필각 옆으로 내려와서...

나도 여기서 백일기도 올리면 하늘의 소리가 들릴까?

 들린다면 무슨 소리일까?

 

시간만 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암자의 수조치고는 조금 크구나 생각하면서...

이것도 나하고는 관계없는 것이지요.

 

 상이암에서 내려옵니다.

 

여기서 왕건이 목욕했을까? 

 

  

구름재 갈림길을 지나니 좌우로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하여 환송하고 있습니다.

 

'잘있거라. 다시보자"고 되뇌이며 천천히 내려옵니다.

 

 

 

 

 

 

 

 

 

 

 

 

 

 

 

  

 

 

 

 

 

 

 

 Franz Liszt. Mephisto Waltz, for orchestra No. 1 (Episode from Lenau's "Faust":Dance in the Village lnn)

Sir Georg Solti, cond
Orchestre de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