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한림읍 상명리 느지리 케인틈당
느지리는 상명리의 옛이름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느지리 캔틈이라고 하니까
그걸 동네공식 명칭 뒤에 갖다 붙이니 이름이 중복되고 말았습니다.
당이 있는 위치가 참 그럴듯 합니다.
머체위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길쭉하게 뻗어 있고 폭 2m정도 되는 캔틈을 형성합니다.
길이는 7∼8m쯤 되며 틈의 남동쪽에는 두 그루의 종가시나무가 10개가 넘는 수간을 벌려 엄청난 크기로 자라고 있습니다.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에 의하면 이곳 느지리캐인틈축일본향은
"검은오름 할망으로 발이 벋어온 정씨 할망입네다"라고 하여
금악 본향당에서 가지갈라다 모신 당으로 묘사 됩니다만
금악당을 포함한 주변 당의 본풀이로 보아서는 느지리 당신은 금악 본향당의 정좌수 따님애기의 딸이라고 유추되며
마을 사람들도 금악본향당신의 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서 방향으로는 성벽으로 막혀 있는데
이 성벽은 언제 쌓았는지 왜 쌓았는지 마을분 중에서도 아시는 이가 없습니다.
당을 둘러보고 다시 당주변을 둘러봅니다.
한경면 조수리
메와짓당으로 왔습니다.
마을 남쪽, 동네사람들이 메와지라고 하는 지경에 있습니다.
메와지다 남은 땅이라는 뜻이랍니다.
원래 이당은 굉장히 큰 당으로 한때 마을의 중심인 賓請堂(속칭 손천당)에 있었으나
반촌이라하여 당을 타기하는 이들에 의해 구릉물(한장동)로 옮겼다고 합니다.
1890년에 다시 당을 옮겨 약100여 년간 천주교 건물 뒤쪽 과수원에 있었으나
1986년 밭주인이 자기 땅에서 당이 나가줄것을 요구하자
마을 부녀회가 이장에게 부탁하여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메와지다 남은 땅 보리수 그늘아래 나지막하게 돌을 쌓아 제단을 마련하였으나
보리수가 점점 밀고 들어와 신목을 자를수도 없으니 이제는 제장이 너무 협소합니다.
모시는 당신도 헷갈립니다.
이 당은 낙천이 분동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조수낙천본향으로
사신용궁 외딸애기 삼대바지를 모시는 당입니다만
용궁 딸 애기라면 바닷가에서 모시는 신명이지
이렇게 중산간에 들어와 사는 당신이 될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남국의 무가에 실린 본풀이를 보며는
"메와지 축일본향은 또신모들로 가지가른 삼대바지,
난는 날 생산차지 죽는 날 물고차지 하던 축일할망" 이라고 하여
금악리 또신모들에서 가지갈라온 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마을신앙의 중심에 있던 당이 어느날 갑자기 하대를 받아 이리저리 떠도는 과정에
목축신에 대한 신앙이 소멸되고
아녀자들의 이런 저런 비념이 덧붙여져서 여성신으로 변화된 것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하등 관계가 없는게 개인적 비념에는 상대가 신이기만 하면 되지
꼭 누구여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요....
당 윗부분 평지에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멀리 당산봉을 봅니다.
그리고 그 당산봉 아래로 와서 한경면 고산리 갯그리 할망당으로 갑니다.
당은 안찍고 당에 가기전 한 구탱이에 세워져 있던 지질공원관련 안내판을 꾹합니다.
당산봉과 수월봉중 누가 형이게?
맞추면 사탕한게 주지.
오래간만에 돌아본 당답사의 기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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