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見 寫而不作/우리강 우리산

군산 해망굴, 흥천사

하늘타리. 2012. 10. 25. 23:17

신흥동 골목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중앙로를 따라 월명공원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일정때 부터 해망령 산기슭에 메달려 살아온 동네가 보입니다.

해망령 동남쪽.

태산 같은 삶의 무게가 버거워 산기슭에 기대어 모여있습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일제강점기 군산의 조선인 하류층의 삶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언덕비탈을 의지삼어 오막사리들이 생선비눌가티 들어 백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올라안즌 어느 토담집.

방이래야 안방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님이네가 도통 5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어더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 한테 이원씩 밧고 세를 내주었다.

대지가 일곱평네홉이니 안방 세식구 건넌방 세식수 도합 여섯사람에 일곱평네홉이다".


갑자기 고운의 글이 생각납니다.
"본래 원주민이란 현상이기보다 개념 아닌가.

식민지 시대에도 본디 살던 조선인은 산등성이 모듬살이로 쫓겨 가고 도시 복판이나 요지는 일본인의 거동이 대세였지.

원주민이란 극소수의 그늘진 오만으로 응결되는 것 말고는 지하화되지.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런 오만의 기회도 없이 모든 것을 강탈당하지만 말이네."

 

아메리카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원주민에게도 그런 기회가 없었지요.

그리고 저기 보이는 곳 사람들은 그 질곡을 벋어날 어떤 계제조차가 없었을 겁니다.


멀리서 동네를 보기만 합니다.

 

월명공원 입구에 교회와 사찰이 나란히 있습니다.

 

군산 감리교회

교회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군산에 있는 감리교회를 보니

군산 어청도 앞바다에 잠들어 계시는 아펜젤러가 생각납니다.
아펜젤러는 감리교 한국선교부의 첫번째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그의 부인과 언더우드선교사와 함께

1885년 4월 5일인 부활주일에 지금의 인천에 상륙했습니다만

입국이 여의치 않아 다시 일본에 가 있다가 6월 20일 재입국하였습니다.

지금의 동인천역 부근으로 옮겨져 있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내리교회를 세웠고

그후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교육사역을 하고

정동교회를 통해서 목양 사역을 하였습니다.
1902년 6월 배편을 이용 목포로 내려가다

어청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군산 내초도에 있는 내초동감리교회에 있는 기념관 옥상에서는

아펜젤러가 잠들어 있는 어청도 앞바다가 보입니다.

 

흥천사

일제의 조선강점간 군산에 8개의 절과 3개의 포교소가 있었습니다.

그 중 금강사는 동국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당시 안국사는 법당을 다시지어 흥천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 모든 절은 지금은 없어졌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대부분 그자리에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해망굴부터 다녀오겠습니다.

 

 

 

이 굴은 군산항의 제3차 축항공사가 진행되던 1926년 10월

당시 군산중앙로와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든 길이131m 높이 4.5m의 반월형터널입니다.
한국전쟁 당시는 인민군의 부대 지휘소가 터널 안에 자리하였다 합니다.


굴을 지나 해망동으로 가보렵니다.

 

 

어디인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부근에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창고가 있었고

그 창고는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자연스러이 이 일대가 피난민의 집단 거주지가 되었던 것이지요.

1960~1970년대에는 수산업과 합판산업이 크게 번창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주해온 부둣가 노동자와 뱃사람들이 모여들어 산기슭까지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흥남동·중동과 함께 군산의 3대 동(洞)으로 꼽히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텅빈 거리...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 하니 도로가 건물은 리모델링이 한창입니다.

 

큰길변에서 산기슭을 바라봅니다.

한때는 골목에, 담장에, 건물에, 그림을 입혔습니다.
좋은 의미였지요.
하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

삶의 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감상일 뿐입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희미합니다.
월명공원 위에서 그쪽으로 접근하기로 하고
다시 돌아나갑니다.

 

 

 

 

흥천사.

 

건물은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처마의 곡선이 아름답고 단청 또한 곱게 느껴집니다.

비구니사찰이라서 예쁘게 꾸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절은 광복 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다가 한국전쟁후 국군장병및 전몰 군경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찰이 되어

한때는 忠義祠라 불리기도 했던 곳입니다..
1958년 현 회주 이지환스님이  군산시로 부터 인수하여 1972년 흥천사로 개창하였습니다.
지금의 법당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다시 지은 현대식 건물입니다.

 

3층 법당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뵙습니다.

 

 

 

 

 

 

 

 

 

 

 

 

 

 

 

 

 

 

 

돌아나오는 길...


내려오는 계단에서 본 글귀하나를 다시 떠올립니다.


변화하는 모든 것을
그저 변화하도록 내버려 두라
변화하지 못하게 붙잡이두며
멈춰 세우려 하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