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의귀리

하늘타리. 2011. 8. 30. 16:32

다른 곳을 가려다고 시외버스를 타고 남원을 가다가

의귀초등학교앞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의귀리 사무소 앞에서 보는 넋시오름

 

 

의귀리 섯내를 건너

 

 

넋시오름 가는 길

 

 

공용기지국에 길이 막혀서 

 

돌아내려오며 본 주변 오름

 

다시 길을 찾아서 정상으로..

 

마을어른들은 통상  백이악(魄犁岳)이라 부르는

넋이 나간 얼룩소형상의

표고 146m 비고 56m의 오름입니다.

 

정상

숲으로 주변이 꽉 막혀 있네요

 

동굴같은 숲터널을 지나

 

숲길을 내려오다 만난

 

의귀리 재건후 제일처음 만든 급수조

 

 

 지금은 철조망 속에서 무너지고 있고..

 

당시 사용하던 양수기

또한 녹슬어 갑니다.

 

 

오름을 내려와 빙돌아서 진몰교를 건너고

 

진물교 아래부분을 멍하니 보다가

 

의귀리와 남원2리 사잇길로 지나가 

 

 

 

이름모르는 沼 옆을 지나

 

(나중에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소의 이름을 묻는 나를 도리어 이상하게 바라보데요)

 

 

넋시오름 널당입니다. 

 

 

웨은둘러 웬도깨비 노다들러 노단 도깨비

 

왼쪽에 모시는 상갈퀴 삼신선또도 외방신

오른쪽에 모시는 둘레낭굽 일뤠한집도 외방신

 

외방신을 통상 도깨비라 칭하는데

이곳에 모시는 두분 모두 토산계 뱀신입니다.

 

 

 

 

 

 

 

 

 

 

 

산하동 길을 빙둘러 걸어

 

군모루로 왔습니다. 

 

길을 내면서 주변을 모두 깍아내 지금은 모루라는 말이 이상하지요

 

뒷쪽에 위치한 연딧동산에 연대를 쌓고

이곳에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하여 군모루, 곤모루라 했답니다.

 

이 농장이 연딧동산이 있던 곳이랍니다.

 

수문장격인 개하고 통성명을 하고

 

 

 옛 연딧동산이라는 곳으로 왔습니다.

 

누구는 해안에서 4km나 떨어진 이곳에 연대를 세울일이 없으므로

고려말에 몽고인들이 이일대에 살면서 말을 위해 제를 지낸

마조단이었다 하는데...

 

그래서 의귀라는 지명이 몽고말 고어 ok(하늘)과 uk(목장)에 주목하여

그에 파생된 옥기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합니다.

저는 잘 모르겠고 여러분이 선택하시지요.

 

사실 김만일이 말을 바쳐 임금으로 부터 의류일습을 하사받아 옷귀라고 했다는 말은 말이 않되지요.

하지만 몽고어를 같다 붙이는 것도 말은 잘 않된다 여겨집니다. 

 

그냥 현재의 모습만 둘러보세요 

 

 

 

  

 

산하동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보는 넉시오름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해서 마전동 그러니까 몰진밭으로 갑니다.

 

 83감귤농특사업저장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말을 기르던 넓은 밭에 감귤을 길러 소득이 꽤 좋았습니다.

83년 경이면 귤을 팔고난 겨울에는 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다니던 시절이었을 겁니다.

 

 

 

 

제5의귀교로 이어지는 배고픈 다리입니다. 

 

이다리 중간에서 내로 내려와 냇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의귀천이 흘러 가는 곳

 

창세미소는 한참 더 내려가야 합니다. 

 

 

 

 

 

 

 

이 소주변에도 누군가가 명실을 달고 비념을 한 흔적이 있습니다.

나무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진 명실을 안쓰러이 쳐다보고

천변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를 따라 걷습니다.

 

 

 

 

 

 

 

창세미소

 

 

그 어느 시절 수없이 많은 사랑이 다녔을 다리가

좌우 모두 막혀 있습니다. 

 

 

가뭄이 들어 물이 귀해지면

신흥리에서도 수망리에서도

이곳으로 물을 뜨러 다녔습니다.

 

다시 한번 바라보고...

 

 

계단을 올라 숲을 뚤고 나와서

 

 

다시 서쪽 숲을 뚫고 갑니다. 

 

창세미소당

 

토산에서 가지 갈라온 일뤠또와 요드레또를 모시는 곳이고 

 

넋들임과 액막이에 효험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특히 이 당앞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을때 몸을 씻게되면

피부병을 없애준다고 하던 곳입니다.

 

 

 

 

 

걸어서 걸어서 몰진밭으로 왔습니다.

 

몰진밭은 말을 치는 밭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합니다.

한문으로 마전동이라 하지요.

 

윗 사진을 보시면 전에는 이지역이 넓은 들로 목장지대였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전부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몰진밭 일뤠당

 

이곳도 창세미소당과 같이 토산 일뤠또와 요드렜또를 모십니다.

 

주로 치병의 역할을 담당하셨으나 넋시오름널당에서 하던 본향의 역할이 최근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예전에는 이 궤옆 생달나무에 지전물색을 걸고

궤위에 재물을 차리고 비념을 했으나

길이 생긴이후 궤위에 당집을 지어놓고 그안에서 제를 지냅니다.

 

 

 

당집의 문은 잠겨있습니다.

 

 

 

관전밭입니다.

몰진밭지경내의 관이 소유했다는 밭입니다.

사진이 좀 애매한데

넓다란 평원이 분지형으로 있어 곡물을 재배하던, 목축을 하던 참 좋은 조건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팬션인데 왜찍었나 모르겠습니다.

 

 

  

개턴물로 가는 길

 

현의합장묘 유허비

 

의귀국민학교에 수용되었다가 처형된 주민들의 

시신을 세개의 큰 봉분에 집단매장했던 곳입니다.

그후 유족들을 중심으로 1976년 삼묘동친회를 결성하여 성묘를 해오던중

1983년에 현의합장묘비석을 세웠습니다.

 

그후 2003년 9월에 수망리지경에 새로운 묘역을 만들어 이장하였고

이곳에는 유허비만이 남아 있습니다. 

 

 

제3의귀교아래 개턴물 또는 개튼물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물이라는 뜻이랍니다.

 

의귀리 중앙동사람들이 먹고 쓰던물입니다만

 지금에는 개턴물이 아니고 개천물입니다.

 

 

 

 

개턴물이 있는 의귀3교에서 이곳 초등학교앞까지

1912년부터 1935년까지 의귀리가 서중면의 중심지였을때 5일장이 들어섰다는

옛 장판거리를 걸어 초등학교앞으로 왔습니다.

 

4.3당시 1948년 12월 26일 부터 1949년 1월 20일까지 토벌대가 주둔했던 곳입니다.

 

 

의귀리 마을회관앞

 말의 본향

 

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김만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진물교를 건너 새가름교를 건너

옛의귀원터라고 추정되는 큰 폭낭옆에

비석들이 많이 있던 곳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비석들이 20여개 있었다 말씀하십니다만

5년전에 왔을때는 두세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금은 남원2리 지경으로

자리를 옮겼네요

 

 

현감 위혁만청덕선정비


황구하선진활민비


현감 신상흠휼민선정비입니다

 

다시 김만일 생가터입니다. 

 

 이 디딤돌이 그때의 흔적이라 합니다.

 

 

향사터 

 

 

의귀리에 있는 교회

 

다른 마을과 달리 의귀리 마을내에는 절이 없고 교회가 한곳 있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의귀교회로 통합측의 교회입니다.

 기독교가 이 마을에 전파된 것은 약 60년정도 된다하고 제주도의 다른 마을에 비하면 신도수가 많은 편이라 합니다.
의귀에서 수망리로 출가했던 한 할머니가 1951년 이곳으로 다시 찾아와 어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구락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국민학교가 폐쇄되어 있던 때라서 120여명의 어린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에게 성경공부와 글자공부를 병행하여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1953년 개인 주택에서 의귀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68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아직도 갈곳은 많은데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날이 너무 더워서인지..

더 이상은 발이 않떨어집니다.

 

오늘의 답사를 마칩니다.

 

December by G. Winston

1.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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