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한라산 자락

한수리 신당

하늘타리. 2011. 6. 30. 15:52

한수리입니다.

 

 

 

 

서기 1002(고려목종 5년)

해상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비양도가 형성되었을 때...(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 일대에서 가장 큰 마을이던 대림리의 한 지역으로

거대한 해일이 밀려와 마을 전체를 매몰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바닷물에 잠겼다하여 조물캐(잠수포(潛水浦))라고 불리우던 곳이었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다시 모여살고 어업과 잠녀에 의한 해산물채취로 마을이 커지자

서기 1685년(고종 22년) 대림리에서 분리하여 조물캐를 한자로 표기 잠수리(潛水里)라 하였으나

해녀들의 사망사고가 빈번함으로 지명탓으로 생각하여 서기 1882년(고종 19년)에 洙源里로 지명을 개칭하였고

그 후 수원리 1구(현수원리), 수원리 2구(현 한수리)를 이루다가

1953년 4월 29일 한림면 의회에서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원리에 분리하면서 한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입니다.

 

 

영등에 관한 설화가 오롯이 전해오는 마을입니다.

 어느 날 조물캐 어부들이 고기 낚으러 배를 몰고 가다가

풍파에 몰려 애꾸눈이섬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불행이도 그 섬에 사는 애꾸눈이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자들로서 좋은 반찬이 왔다고 벼르고 있던 참인데,

용왕황제국에 사는 영등대왕이 이를 알고 어부들을 몰래 살려 도망치게 해주었습니다.
어부들은 영등대왕의 지시대로 개남보살(관음보살)을 염송하면서 조물캐 가까이 오게 되자,

안심하고 염송을 중단하였더니 다시 광풍이 일어나 배는 또 다시 애꾸눈이섬으로 내 던져졌다 합니다.

 

영등대왕은 다시 선심을 베풀어

뭍에 닿을 때까지 개남보살을 염송하면서 가라고 하여 살려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너희들 때문에 죽게 될 것이요,

 2월 초하루에 제주에를 찾아갔다가 15일에 돌아올 것이니 내 공을 잊지 말아달라.”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과연 애꾸눈이들은 좋은 반찬을 놓치게 하였다고 하여 영등대왕을 세 토막으로 잘라 죽여버렸고

그 시체 토막이 제주의 세 포구로 떠 밀려 왔습니다.

 그 이후 조물캐 어민들은 영등당을 만들어 영등대왕을 모시고 그를 추모하는 굿을 시작하였습니다.

60년대 중반 까지는 매년 2월 초하루에서부터 4일간 영등당에서 큰 굿을 하고,

15일에는 짚으로 작은 배를 만들어 영등대왕을 태워 보내는 행사를 해왔는데

60년대후반부터 이곳에서는 당굿이 없어졌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여기저기 바닷가 마을에서 바람의 신이라고 할 영등신을 모시는 굿을 하는 개당이 있습니다만

영등신을 단독으로 모시고 영등굿을 한 유일한 곳이 없어진 것이지요.

 

영등대왕을 모시던 영등당도 2000년엔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남당과 대섬밭당이 남아 있지요.

 

나무숲에 있다하여 남당이라고도 하고 갯가에 있다 하여 개당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잠녀들의 안전을 지켜주시는 문씨할망이 계신다하고,

한수리 잠녀들이 생기맞는 날 다닌다 합니다. 

 

 

 

 

 

 

 

 

 

 

웃물?

 

 

 

 

 

 

 

 

 

 

 

 

 

 

 

 

 

대섬밭당입니다.

 진도에서 들어온 하르방을 모시는데
상선, 중선, 하선 모든 어부를 차지하고 있어서 난여 든여에 다치지 말게 합서하고 어부들이 찾아가 빈다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없어지기 직전의 영등당의 모습을 올리면서 오늘의 기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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