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산리.
누운산...누운메....눈미마을
이름이 그렇게 변해옵니다.
설촌유래에 의하면 설촌당시는 마을이름이 臥虎山마을이었답니다..
마을의 당산이 누워있는 호랑이같아서 그렇게 불리 었는데
지형의 영향으로 태어난 사람의 성품이 거칠고 포악하였다 합니다.
풍수가에게 도움을 구하자 산의 형세를 바꿀수는 없으니
누운호랑이의 형세로 보지말고 산자체를 누운산의 형세로 보고
마을의 이름을 누운산으로 바꾸면
악한자는 태어나질 않는다하여 마을이름을 누운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합니다.
그 이후 악한자가 태어나지 않더랍니다.
그런데 마을의 형세는 평온하지 못하여 남쪽과 북쪽에 방사탑을 쌓아 액운을 막아왔다 합니다.
지금은 모든 액운에서 벋어났나 봅니다.
이제는 남과 북 어디에도 탑의 흔적이 없습니다.
마을의 진산 당산기슭 당샘입니다.
이름이 무색합니다.
당샘옆 올레길.
길옆에 반하가 나왔습니다.
벌써 여름이라는 이야기이지요.
반하는 반 여름에 싹이 나와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끼무릇이라 하기도 하지요.
천남성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동의보감에 법제방법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약재로 치던 식물입니다.
구경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구토·설사와 임신 중의 구토에 약재로 많이 쓰이기도 했고
거담·진해 효과가 강력하다하여 한방의학에서 많이 쓰이던 약재입니다.
와산리 본향 당오름 불돗당입니다.
마을 보호수 팽나무와
당을 새로 가꾸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의 송덕비
한분은 땅을 내주고
한분은 돈을 대주고...
집을 지어 모신 신체
이당은 불도삼승(佛道産神)의 당입니다.
옥황상제의 따님이신 별공주또님이 눈미 당오름위 바윗돌로 내려오셨습니다.
가까이 오십사하는 간청에 의해 그 바위를 지금의 자리로 굴러내리시고
포태와 양육을 관장하는 불도삼승또로서 자리잡으십니다
조금 헷갈리는 분이 계실 수가 있네요.
제주도 삼승할망 전설에 의하면
동해용왕이 동해용왕따님애기를 인간세상의 아이를 잉태시켜주고 낳게해주고 길러주는 생불왕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해복시켜주는 가를 미쳐 알지못하여 결국 산모와 아이가 죽을 지경에 처하고
그러다 보니 옥황상제는 인간세상의 명진국아기를 불러 생불왕으로 정하지요.
승복하지 못한 동해용왕따님애기와 명진국아기씨는 옥황상제 앞에서 꽃피우는 경쟁을 하였습니다.
이 경쟁에서 이긴 명진국아기씨가 삼승할망이 되었고
동해용왕따님애기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난 영혼을 관장하는 저승할망이 되었다고 하지요.
저승할망이 된 동해용왕따님애기가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면 내가 경풍(驚風), 경세(驚勢) 따위의 온갖 병에 걸리게 하겠다.”고 하자
명진국애기씨가 “아기가 태어나면 너를 위해 좋은 음식을 차려줄 테니 서로 좋은 마음을 갖자.”고 하여
백일잔치가 생긴거라 하지요.
그런데 이동네는 삼승할망이 아니고 눈미웃당 불도 삼승또가 포태와 양육을 담당하십니다.
불도삼승또가 당신이자 조상신이면서 삼승할망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이지요.
3월 13일을 제일로 삼아 매인 심방을 빌려 당굿으로 지내는데,
이곳 당굿은 생남은 물론 육아에 효험이 있다고 하네요.
이 당에는 반드시 여자 심방이 매인 심방이 되어야 한다하며 은 김윤수 심방(인간문화재)의 부인인 이용옥 심방이 굿을 한다 합니다.
당굿을 할 때는 이 바위가 원래 있었던 자리인 당오름 꼭대기에 가서 삼석을 울리고 내려와서 굿을 시작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삼석 울린다’함은 신에게 굿의 시작을 알리는 뜻으로 악기를 세 차례 쳐 울리는 것을 뜻하는데 요새는 닭을 들어 고한다 하기도 합니다.
신석좌우에 물색이 참 곱습니다.
신석을 지키는 부엉이가 아니고..
박쥐
문무병이사장이 답사자들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사이 바로옆 토광물 산신당에 왔습니다.
앞에 있어도 모르면 못찾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토광물 산신당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기가 당새미 토광물 산신당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 답사에서 문무병이사장을 보좌하여 와산리 신당을 안내하는 분이 말씀하시길
토광물 산신당은 길도 멀고, 주변도 험하고, 땅도 질어서
않가는 것으로 하겠답니다.
제가 토광물 산신당으로 알고 있는 이곳은 불돗당에서 5분정도로 조금만 걸으면 되고
그리 험한길도 아닌데....
그래서 잠시나만혼자 ...
서로 아는 곳이 다릅니다.
하여간 저에게는 이곳이 토광물 산신당입니다.
와산리가 지금은 중산간 마을이지만 그 옛날에는 완전히 산간마을이었겠죠.
그러다 보니 사냥 목축을 관장하시는 산신이 계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을 겁니다.
교래리 본향 다릿하로산당에 계시는 송당신의 아홉째아들 바람웃또 큰당산신또를 가지갈라 모셨습니다.
아참! 이따가 가기로 계획되어 있는 대흘리 비지남밧 하로산당에 계시는 분도 그당 본풀이에 의하면 송당신의 아홉째아들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북촌리가릿당 노보름한집에 계시는 분도 가릿당본풀이에 송당신의 아홉째아들이라 합니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정갈한 물색이 보기가 좋습니다.
베락당으로 가기위해 와산리 마을로 나왔습니다.
마을중심가에 옛구조의 집이 있어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베락당으로 갑니다.
저 500년이상되었을 팽나무가 베락당 신목입니다.
원래 눈미마을 본향이었습니다만
흉험이 너무 무서워 당궐들이 다 불돗당으로 옮겨가서
지금은 폐당이 되었다 합니다.
한동안은 불돗당에서 같이 젯밥을 올렸다 하는데
지금은 어찌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옛날이야기 하나.
옛날 제주도 조천읍 와산리 ‘검은 땅 밭’에서 송씨 할머니가 큰딸과 밭을 매고 있었습니다.
귀가 가려워진 송씨 할머니는 딸에게 귓밥을 파 달라고 했지요.
딸은 나뭇가지를 꺾어 귓밥을 파다가 실수로 귀청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송씨 할머니는 딸에게 ‘벼락 맞을 년’이라고 욕을 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화덕벼락장군이 이 소리를 듣고 딸에게 벼락을 쳐 버렸습니다.
자신의 말 때문에 딸이 벼락을 맞아 죽자 송씨 할머니는 두이레동안을 울며 통곡했습니다.
애끓는 울음소리를 들은 옥황상제가 땅을 내려다보니 화덕벼락장군의 실수로 죽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옥황상제는 화덕벼락장군에게서 벼락 몽둥이, 벼락, 벼락틀 등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화덕벼락장군은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지요.
할 수 없이 화덕벼락장군은 세상에 살게 되었는데, 화덕벼락장군이 가는 곳마다 불길이 따라 다녀서 사방에 불이 났습니다.
마을에 계속 불이 나자 마을 사람들은 '불탄밭'이라는 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화덕벼락장군을 모셨습니다.
우람한 베락장군의 신체입니다.
엄낭굴 철산이도 산신당으로 갑니다.
새미오름이 보입니다.
2소둔마장이 있던 곳
한때는 이 일대의 중심가인 대흘리 원동으로가는 주요도로이었지만
지금은 밭일외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걸어갑니다.
좌우를 둘레 둘레...
이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철산이도 산신또가 계시는 산신당입니다.
사냥과 목축을 주관하는 산신또가 계십니다.
한때는 와산리마을에서 거리가 멀어 골왓술당으로 가지갈라간후 다니는 사람이 없었으나
최근에는 차량을 이용하여 다니시는 분들이 꽤 계시다고 합니다.
당앞에 고개숙여 피어있는 진황정
새미오름을 한번 더 보고
걸어내려와
체육공원앞 밭에 있는
눈미 웃질왓 감낭밧 산신당입니다.
한씨조상당으로 알려져 있고 와산리 한씨집안에서 다닙니다.
건강과 자식의 안녕을 기원하고있습니다.
신목은 상수리나무입니다.
골왓술 산신당은 생략한답니다.
저도 그곳은 몇년전에는 찾았었는데
작년 이맘때는 부근만을 헤메이다 못찾고 돌아섰습니다.
마을에서 물어보니
최근에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 표시가 없을것이다. 그러니..
그 앞에 가서도 못찾을 거랍니다.
대흘리 비지남밧 하로산당입니다.
김오생본 송당리당본풀이에는 백주또의 아홉째아들은 교래리 도리산신또입니다만
이 당 본풀이에는 이곳 거무영청 산신또가 아홉째 아들이라고 합니다.
스스로가 송당계당신이라고 나선것이지요.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곳 신당에 거무영청 산신또가 모셔졌다고 아는 분이 많은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거무영청굿을 받아먹는 산신이 계신곳입니다
심방이 집행하는 의례는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비념이고, 또 하나는 굿이지요.
비념은 제상을 소박하게 차린 뒤, 심방이 그 앞에 앉아 요령을 흔들어 소리를 내면서 비는 것이고,
굿은 제상을 크게 차리고, 심방이 무복을 입고 무가를 부르며, 춤을 추는 의례를 말합니다.
따라서 비념과 굿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춤이 있느냐, 없느냐가 되겠습니다.
또 굿은 굿을 하는 장소, 규모, 형식,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가제(家祭)와 당제(堂祭)로 나누어지고, 규모에 따라서는 큰굿과 작은굿으로 나누어집니다.
큰굿은 다 아실테니 생략하고
작은 굿에 귀양풀이, 성주풀이, 거무영청대전상, 영감놀이, 칠성새남 등의 굿이 있지요
이중 거무영청대전상을 받는 당신이라 해서 거무영청 산신또라 부릅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라고 하니 찬찬히 둘러 봅니다.
이당에서는 산신또와 함께 광주부인 정중아미 일뤠한집을 함께 모십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예전 이마을 분들의 상당수가 이런 저런 소송에 걸렸답니다
이곳에 와서 빌고 나니 억울한 일이 없이 잘 해결되었다 하여
지금도 타지에서 억울한 소송에 걸린 분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성드리는 것은
생업과 치병에 관해서 이겠죠.
답사를 마치고 ..
한번 뒤돌아보고..
신당과 민속에 관한 전문연구기관인 전통문화연구소와 다니다 보니
해답은 못들어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생각가는데로 쓰다보니 꽤 긴글이 되었습니다만...
민속을 알기위해서는
설화를 알아야 하고
그 설화에 배경이 되는 신화를 알아야한다고 하지만
그 설화도 하도 여러갈래이다보니
어쩌면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Mozart
Symphony No.40 In G Minor K550 I Molto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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