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래 곤을동마을의 흔적이 보입니다.
더 내려가니 곤을동은 사라지고
화북동과 멀리 원당봉이 나타납니다.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며..
곤을동쪽으로 내려갑니다.
주상절리 쪽으로 가면 안곤을 사람들이 마시던 물통이 있습니다.
안드렁물입니다.
깎아지른 주상절리대 절벽 밑에서 솟는 샘인데, 서너 칸의 칸막이를 해놓았습니다.
맨 윗물은 먹는 물, 다음 물은 나물·채소 손질, 그다음 물은 빨래하는 데 썼다고 합니다.
먼 수평선은 제주외항 부두 공사장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옛 마을 올레의 흔적을 따라
안곤을 마을 바닷가로 내려갑니다.
안곤을 사람들이 멸치를 잡던 곳입니다.
해원상생 거욱대
그 옆 민예총 제주지부에서 세운 표지석은 누군가에 의해 산산이 깨어져 있습니다.
4.3의 평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욱대 뒤로 보이는 안곤을 마을과 별도 사라봉
올레길을 지나갑니다.
터를 나누기 위해 둘러친 돌담은 남아 있는데 사람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아직 곤을동이 있습니다.
여기는 철수네 집이고 여기는 영희네집
그리고 뛰어가는 아이들 뒤를 따라 강아지도 뛰어가던 올레...
4.3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밧곤을로 넘어가는 화북천길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밧곤을에서 본 안곤을
곤은돌에서는 애기 달맞이꽃도 처연해 보이네요.
곤을동표지판
코스를 벋어나
곤을동 환해장성
고려원종때 진도에 웅거해 있던 삼별초의 제주진입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했다합니다.
그 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가며 성을 쌓았는데 이를 환해장성이라 합니다.
현재 성벽이 남아있는 곳으로는 온평리, 행원리, 한동리, 동복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14곳이 있다고 하네요.
현재 남아 있는 곤을동 환해장성의 성벽 길이는 약 140m입니다.
환해장성이 있는 밧곤을에서 바라본 별도봉, 사라봉
해안을 따라가다가 해안도로공사로 더 이상 전진을 못합니다.
다시 코스로 돌아옵니다.
전형적인 제주도 바닷가 주택의 돌담
처마 밑까지 바짝 올려 쌓았습니다.
예쁘다! 그런데 이름을 모르네. 미안하다 예쁜아.
애기능금꽃
폐가입니다만
전형적인 한칸집 제주초가의 모습입니다.
집 앞에 우영밭
집 뒤에 안칠성을 모시고
집옆 뒤뜰로 가는 길에 만든 우영밭
오른쪽 끝이 돗통시
밭담올레를 걷습니다.
보리밭을 지나고
갈대밭을 지납니다.
갈대밭 너머에 해안도로를 만드는 공사현장이 보입니다.
제주도
참으로 공사를 좋아합니다.
곶자왈지역에는 리조트와 골프장을..
바닷가에는 해안도로
중산간에는 중산간도로, 산록도로. 넓히고 새로 뚫고
산업도시에서는 물류를 빨리 하기 위해 길을 뚫고 넓히고 해야겠지만
관광지에서는 사람이 머물게 하고 오래있게 해야 돈이 될 텐데...
차타고 한바퀴 휭돌고 가게 만들어서 그것이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미래가치를 생각않하고 현재가치만을 생각하여 싸구려 개발을 합니다.
뒤돌아서 별도봉과 사라봉을 봅니다.
이제는 이 자리에서 저 오름들이 않보일겁니다.
왜냐구요?
길이 넓혀지고 포장이 될테니 무슨 건물이 들어설 겁니다.
옛 해녀탈의장
다가가 볼까요.
잠수탈의장 1968.8.1.
부셔진 해녀탈의장 앞에서 보는 바다
발밑의 갯쑥부쟁이
늦가을에 피었을 꽃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서쪽바다
가운데
그리고 동쪽바다
다시 뒤를 보고..
화북동 금산마을 방파제 쪽으로 갑니다.
잠녀 한분
뭐하시나 당겨보고
또 한분
바닷속에서 채취한 해초류를 정리하고 계십니다.
화북동 잠녀는 1동과 2동 모두 합쳐서 20명이 않됩니다.
그리고 그중 열몇분이 70대입니다.
화북포구 개발로 백화현상이 일어나 인근바다 해조류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전복이나 소라등 패류의 먹이가 없어졌다는 거지요.
2000년도에 전복종패를 한 4년했지만 환경에 적응하기 전에 고기밥이 됩니다.
나이 드신 잠녀 몇몇이서 톳과 천초를 채취하여 판매하여 용돈으로 쓰십니다.
방파제에 대나무 깃발이 펄럭입니다.
시가 있는 등대길
코스를 벋어나 다가갑니다.
화북포구 제방공사에 직접 돌을 지어 나르며 독려하기도 한 김정목사에 대한 안내글이 있습니다.
김정이 지은 화북포구공사를 시작하며 하늘에 고한 고유문입니다.
김정의 화북진이라는 시와 또 다른 이의 화북진
시가 있는 등대길을 걸어갑니다.
등대..빨간등대
먼 바다를 바라보는 소녀
그리고 이바람속에서 책을 읽는 소녀
나는 방파제건너편을 봅니다.
당겨서 본 포구안쪽 해신당
포구로 가는 길 옆 넝쿨. 꽃이 곱네요.
포구옆 물통
더 큰 물통
화북서카름포구
또 다른 물통
화북진성터
화북포는 제주목을 보호하는 수전소로서 전선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고
무기고를 두어 무기를 보관하였습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 화북성조에 보면 옛 화북초등학교자리에 성이 그려져 있어
1678년 화북진을 창설하면서 진성을 쌓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김정목사비석과 그 옆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비석, 그리고 고유문
제주목사 김정.
그는 현재 화북방파제를 있게 한 토목공사의 주인공이자
그 토목공사로 인해 화북포 후풍관에서 순직한 목민관입니다.
당시 화북포는 제주목의 관문으로,
제주를 오가는 公私船이 왕래하며 정박하는 곳인데,
포구가 비좁아 배를 부리는데 불편함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정이 화북포를 정비할 때 남긴 告由文을 보면,
270여 년 전 화북포구 방파제 정비 공사를 한 연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화북포구는 섬의 목구멍이면서 배에게는 요긴한 나루이나 포구의 암석이 들쑥날쑥 솟아 있고,
큰 물결이 찧어대며 거센 바람이 격렬하게 부딪쳐서,
옛날에 쌓았던 석보(石堡)가 무너져 내려 남아 있지 않습니다.
움직이다가 엎어짐을 당해도 사람들이 노력하여 수리하려고 아니하고,
오히려 하늘에 한탄하고 모두 바다에 원망을 하였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쌀 300섬을 내어 만 명의 일꾼을 모아 선창을 축조했습니다.
스스로 돌덩이를 들고 공사 인부들을 격려하니,
앞을 다투어 돌을 들면서 공사를 하니 한 달이 못되어 공사를 마쳤다고 하네요.
화북방파제는 그 후 여러 차례 정비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화북포유지표지석
물통너머 성창
해신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 의하면
순조20년(1820년)에 목사 한상묵이 해상통행시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화북진 서쪽에 사당을 짓고 매년 정월초닷새에 해신제를 지내기 시작한 후
1841년 이원조목사때 해신사건물을 중수하여 제액했다고 합니다.
그 후 1828년에 장인식방어사가 해신지위라는 석위를 각하여 보존했다 합니다.
이곳 해신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를 실은 배가 제주를 향해 오던 중
풍랑을 만나 배에 큰 구멍이 나 침몰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큰 뱀이 나타나 선체에 터진 구멍을 막아주어 간신히 포고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뱀은 고으니모루 서쪽 석간굴로 들어갔다 하고
이를 감사히 여긴 목사가 해마다 정성을 다해 제를 지내오던것이
한상묵에 목사에 의해 정례화된 것이라는 설과
조선조 조정에서는 명산과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올려 나라와 가호의 안녕을 기원하였는데
이곳 제주는 왕이 직접 제를 지내지 못하니
왕명에 의해 목사가 제를 대행하였는데 그 유습이 남았던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 앞바다의 풍랑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유배에서 풀려 다시 해남으로 돌아가는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풍랑을 만나 죽지 않도록 기원하는 해신제를 올렸습니다.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인데 문을 닫았네요.
일부러 먼 곳에서까지 찾아오던 곳이니까 망하진 않았을 것이고
돈을 벌어 어딘가 좋은 위치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화북포구 동카름성창
물통
재산을 출연하여 마을 물통을 파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여기저기 있던 것들을 모아 다시 새겨판 기념비
원본그대로 새우면 더 좋았을 텐데..
꼭 이렇게 다시 만들고 예전 것은 버립니다.
옛 부두창고
70년대 버스정류장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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