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평동 마을공동묘지 잡목숲안입니다.
몇기의 비석이 있고 그 중앙에 윤구동목사선정비가 있습니다.
牧使尹公九東善政碑라 쓰여 있고
그 좌우에하늘이 재앙을 내려 굶주리게 했으나
공이 덕을 베풀어 배부르게 했다는 뜻으로
飢天之災 飽公之德라고 새겨져 있씁니다.
순조 18년(1818년)인 가경 23년 3월에 세웠다고 쓰여 있습니다.
윤구동 목사(겸방어사)는
1754(영조 30)∼1823(순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입니다.
1801년(순조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교리를 거쳐서 1811년에 순흥부사가 되었습니다.
1812년에는 필선·문학·사서를 역임하였으며,
순조 15년(1815) 5월에 부임하고
순조 17년 (1817) 10월에 형조참의로 임명되어 갔습니다.
재임 중 그는 홍피전(洪彼錢) 1천 8백 냥을 마련하여 다른나라 배가 표도하였을 때 공궤하는 비용으로 비치했다가,
뒤에 환모(還牟) 1천 88 석을 바꾸어 창고에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또 순조 17년에는 제주에 흉년이 들어 육지부 곡식을 옮겨서 도민을 구휼하였는데,
이때에 그는 환모조(還耗租) 2천 5백석을 미리 준비하여 보관해 두게 하였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공동묘지 가운데 잡목숲 속에 이 비석들이 있을까요?
이곳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516도로와 동일주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이 나옵니다.
이름하여 비석없는 비석거리지요.
이길은 예전에도 서귀포를 드나드는 길목으로 제법 큰 길이 나있었고
그 길목에 한때는 목에 힘좀 주었던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연에 대한 비석들이 꽤 있었다 합니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몇기는 연고자들에게 인계되고
남아있던 몇기가 당시 마을공동묘지앞을 지나는 큰길인 이곳으로 옮기었다 합니다.
옮길당시는 법호촌에서 남주고등학교 부근을 지나 삼매봉까지 가는 큰 길이 있었다 합니다
(상효동 1288-3번지 사시는 80세 어르신)
그런데 길이 법호촌에서부터 없어지더니
516도로와 연결되는 길이 새로 생기고
이 일대가 농원으로 편입되고
그러다 길이 막히니 사람이 않다니고
그러다보니 잡목숲을 이뤘다 합니다.
일대가 개발되어 비석이 없어진 것 보다
차라리 잡목숲이 되어 사람이 않다니는게 보존에는 좋았을지 모릅니다.
비석의 정면에서 보아 맨 왼쪽비석옆으로
어떤 비석이 하나 더 있었던 듯 한데 기반만 남아있고 본체는 없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윤구동목사의 비석이 송두옥의 비석에 너무 위축되어 있는 듯 하여
윤구동의 비석을 몇곳 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김녕비석거리
오른쪽에서 네번째
牧使尹公久東淸德善政之碑
좌측면에 嘉慶二十三年正月이라 음각되어 있어
순조 18년(1818) 정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외도동 월대
사상 윤공구동휼민선정비
선흘리 마을회관앞
구재용선정비 오른쪽
화북비석거리
구엄리
장인식목사 비석 오른쪽
다른 곳에도 또 있겠지만 제 사진에는 없네요
말그대로 청덕휼민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Keiko Mats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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