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오천 구정동을 찾아갑니다.
구정동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정승이 살았다해서 구정승골이라 불리우던 것이 세월이 흐르며 구정리라 변했다 합니다.
그곳에 정몽주선생의 유허비가 있습니다.
탄생지라고 하는 문충동에도 정몽주로가 있고
이곳에도 동네 골목길은 정몽주로라 이름지어져 있습니다.
유허비각입니다.
안내판의 글귀를 옮깁니다.
이 비는 고려시대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고자 이 지방 유생들이 뜻을 모아
선생의 생장지이고 고택의 유허지인 이 곳에 인조12년(1634)에 비각을 건립하였다.
정몽주선생은 영일정씨 시조인 추밀원 지주사 형양공 습명 선생의 11세손이며,
고려말엽 충숙왕 복위 6년(1337) 12월에 탄생하였고, 자는 달가,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다.
유허비각은 현종 6년(1665), 숙종 25년(1699), 순조 31년(1831),건국 7년(1954),건국 40년(1987) 등 5차례에 걸쳐 중건·개수하였으며,
당초에는 오천서원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있었으나, 서원은 오천읍 원동으로 이건되고 현재는 비각만 남아 있다.
비석의 높이는 1.52m, 폭 0.5m이고,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유허각을 둘러봅니다.
최근인듯 새로세운 비석과 비각
정준흠이라는 후손이 쓴 유지기사전말과
누군가의 이름이 희미해진 중건기가 걸려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제가 가보았던 정몽주선생의 유허비는 영천시 임고면에도 있고
그가 우왕시절 親元排明정책에 반대하다 1년 가까이 적거되었던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도 있습니다만
다 옛비석을 잘 보존하면서 주변을 가꾸었는데.....
이곳은 옛비석은 한갓진 곳에 모아 두고 새비석을 세우고 유허비각을 세웠습니다.
옛비석이 파손되거나 마멸된 것도 아닌데 왜 궂이 이랬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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