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사를 다녀와서 영월로를 넘는데
몇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 중에서 내 개인적으로 어지러운 것 말고
절집하고 관계있는 시왕에 대한 것을 다시 정리해볼까 합니다.
불교미술가 유한울의 지장시왕도 한번 보시지요.
시왕은 일반적으로 사후(死後)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輕重)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이야기 합니다.
통상 절집에 가면 지장전, 명부전에 본존불인 지장보살이 이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장보살과 이들 시왕은 별 관계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지장보살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보관을 쓴 모습보다는 두건(頭巾)을 쓰거나 삭발한 스님형상으로 표현되며,
지물로는 왼손에 석장(錫杖)을 짚고, 오른 손에는 투명구슬을 지닙니다.
기본적으로 협시로는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가 좌우에 배치되며,
아금강역사와 음금강역사가 그를 모십니다.
시왕은 단계적으로 죽은이들을 심판하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시왕이 심판한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도 미루고 그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상당히 모순적인 논리가 되지요.
사실 이 시왕에 대한 것은 도교의 논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민속과 무속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을
산신공양과 함께 불교에 도입하면서
지장이 주가되고 시왕이 종속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묘사하고
거의 모든 사찰에 거의 필수적으로 명부전을 건립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왕신앙은 불교교리적 엄밀성도 없으면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이라는 우리 나라 불교문화의 한 면을 이루어 왔던 것이지요.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말한데로 시왕에 대한 사상은 결코 불교고유의 신앙이 될 수 없으며
불교를 기복신앙으로 몰고가는 폐단이 있으므로 원래의 자리인 무속으로 돌려주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만...
사실 절집운영의 꽤 많은 부분을 여기서 충당하다 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을것이라 보입니다만...
그럴수록 스님들의 가르침은 공허해집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규모의 명부전은 통도사 명부전입니다.
저장되어 있던 사진을 통해 한바퀴 돌고자 합니다.
현판
주련을 모았습니다.
慈因積善誓救衆生 (자인적선서구중생)
당切歸依奚遲感應 (당절귀의해지감응)
掌上明珠光攝大千 (장상명주광섭대천)
手中金錫振開玉門 (수중금석진개옥문)
常揮慧鎰斷滅罪根 (상휘혜일단멸죄근)
業鏡臺前十殿調律 (업경대전십전조율)
자비의 인연으로 적선하고 중생 구하기를 서원하니
간절히 귀의하면 어찌 감응이 더디리오
손바닥 위의 밝은 구슬 대천세계를 비추고
손 안의 쇠지팡이는 지옥문을 열어 주네
항상 지혜의 칼로 죄의 뿌리 잘라 버리니
업경대 앞에서는 시왕이 법률로 다스리네
명부전 지장보살님입니다.
지장탱입니다.
법당 중앙 지장보살 좌우로 다섯장씩 봉안되었다가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봉안되어 있는 시왕탱을
표준 설명과 함께 하나하나 보시겠습니다.
제 1 진광대왕(秦廣大王)
사람이 죽은지 초칠일 (初七日, 7일)이 되면 진광대왕 앞에서 처음으로 죄업을 심판받는다.
여기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왕청의 모습과 그가 다스리는 지옥 장면이 묘사된다.
무섭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棺)에서 꺼내는 장면과 죄인들을 밧줄에 묶여 끌려 가는 장면이 묘사되며,
손이 묶인 채 칼을 쓰고 모여 있는 죄인들 위로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 2 초강대왕(初江大王)
초강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2·7일 (14일) 째 되는 날에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기둥에 죄인을 묶어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과
목에 칼을 쓴 죄인 앞에서 판관이 죄과가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옆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 3 송제대왕(宋帝大王)
송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3·7일 (21일) 째 되는 날 죄업을 심판하는 왕이다.
여기에는 죄인을 기둥에 묶고 혀를 빼내어 그 위에서 옥졸이 소를 몰아 쟁기질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살아서 말에 자애로움이 없고 남을 비방하고 욕하며, 나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제 4 오관대왕(五官大王)
오관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4·7일 (28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파계(破戒)하거나 살생하여 죽여 고기를 먹은 사람이 주로 떨어진다는 화탕지옥,
즉 펄펄 끓는 물에 죄인을 집어넣고 삶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역시 한켠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 5 염라대왕(閻羅大王)
염라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5·7일 (35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염라대왕청에는 업경(業鏡)이 있어 죄인들의 생전의 죄를 비추어 그에 따라 벌을 준다.
여기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보통 업경대 안에는 몽둥이로 소를 때려 죽이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는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사람의 죄가 업경에 나타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제 6 변성대왕(變成大王)
변성대왕은 사람이 죽은지 6·7일 (42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날카로운 칼 숲에 갇혀 있는 죄인들과 죄인들의 머리와 다리를 잡아 칼 숲으로 집어던지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주로 생전에 칼이나 몽둥이로 남을 괴롭힌 자가 받게되는 형벌이다
그 옆에는 옥졸이 창으로 죄인을 찌르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제 7 태산대왕(泰山大王)
태산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7·7일 (49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왕 앞에는 지옥·아귀·수라·인·천의 육도(六道)가 있어서 죄인을 그 죄업에 따라 태어날 곳과 지옥에 보내는 일이 정해진다.
이로 인해 불교에서는 망자(亡者)를 위한 49재가 행해진다여기에는 형틀에 죄인을 묶어 놓고,
양쪽에 톱을 든 옥졸이 마주서서 죄인을 반으로 써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제 8 평등대왕(平等大王)
평등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00일 째 되는 날 심판을 맡은 왕으로
공평하게 죄복(罪福)의 업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평등왕(平等王) 또는 평정왕(平正王)이라 한다.
여기에는 철산(鐵山) 사이에 죄인을 끼워 놓고 압사시키는 장면과 빠져나가려는 죄인을 옥졸이 저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죄인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이 합장하고 서있다.
제 9 도시대왕(都市大王)
도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주기 째 되는 날에 죄업을 심판하는 왕으로
도제왕(都帝王), 도조왕(都弔王)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업칭(業秤)이라는 저울로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다는 장면과
옷을 벗은 죄인들이 차가운 얼음산에 같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 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오도전륜대왕은 시왕의 마지막 왕으로 사람이 죽은 지 3회기(三回忌) 째 되는 날 심판을 마무리하는 왕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죄를 심판받은 죄인들은 마지막으로 이 왕 앞에서 다시 태어날 곳이 결정 된다.
여기에는 법륜(法輪) 위에 앉아 있는 머리가 둘 달린 옥졸의 머리 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장면이 펼쳐져 있고,
그 주위에 재판이 끝난 후 육도윤회의 길을 떠나기 위해 모인 죄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이상에서 보신 바와 같이 대개의 시왕탱은 직사각형의 화면에
상단은 시왕이 여러 권속을 거느리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장면과
하단에는 죽은 자가 각자의 죄업(罪業)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시왕탱은 지옥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광경을 보여 줌으로써
별도의 교화 및 불교 학습없이도 악업(惡業)을 경계하고
선업(善業)을 장려하는 민속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부전 외곽공포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국지의 한 장면이 두곳 그려져 있습니다.
각그림이 검정부분을 확대해 보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此間有伏龍鳳雛漢帝三顧
그리고 西城月夜彈琴退魏兵
유비의 삼고초려장면과 제갈량이 조조의 군사를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게다가 토끼와 거북이의 벽화도 있습니다.
명부전 안 삼엄했던 분위기속에 위축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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