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이야기/제주의 마을

조천읍 북촌리

하늘타리. 2011. 1. 6. 10:40

북촌리입니다.


오늘은 고두기엉덕, 서우봉 진지동굴, 너븐숭이 이야기는 빼고 북촌포구주변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시내에서 출발하여 북촌 초등학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비석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입니다.


조금 더 지나서 유턴을 하고 비석군 옆에 차를 세웁니다.

사상공덕비등 총 7기의 선정비입니다.

 
1990년대 말 이 부근에 도로 확장작업을 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쓰러져 있던 것들을 2002년도에 한데 모아 세워두었다 합니다.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지금도 이 부군과 뒷쪽 당동산에 그럴듯한 팽나무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지점이 그 당시는 우마가 많이 통행하다가 쉬었다 가는 지점이었나 봅니다.

 

세우고 싶어 세운 것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세워라해서 세운 것도 있겠지마는 세우는 마음이야 한결같았겠지요.
원님들이 제발 이 비석을 보며 마음을 바로잡아 우리 백성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을 겁니다만
거의가 허망한 바램이었다 합니다.

 

누구누구의 비인가 볼까요?

 

使相李公oo思碑

 

 使相尹公oo淸白追思碑

 

 使相白公希洙淸德善政碑

 

牧使金公永綬淸德碑

 

 牧使張公寅植永世不忘碑

 

 使相尹公久東淸德碑

 

 牧使oo淸德碑

 

이왕 모아놓은 것 안내판이라도 설치해서 비석 주인공의 재직당시의 치적을 알려주면  더 좋을 텐데요.
점점 더 비석이 마모되어 글씨가 예전보다 더 않보여요.

 


그리고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마모되어 읽을 수 없는 글자를 각종기록이나

비석을 판독할 수 있는 첨단 기술 등을 이용해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맨날 팔아먹은 자료만 팔아먹고 있으니 쯧쯧...


길을 건너가서 제주시 쪽으로 조금가다 다시 한라산 쪽으로 조금만 가면 효열비가 있습니다.

큰길가에 있었는데 도로확장 공사 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는 데

비석에는 故金汝彬妻高氏若其男金才明烈孝碑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뒤에 써있는 내용을

제주향교지 672쪽을 바탕으로 알아보면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던 가정입니다.

 남편 김여빈이 바다에 나갔다가 바람을 만나 중국 복건성에 표착하였는데

육로로 돌아오다가 의주에서 죽었답니다.

그래서 김여빈의 처 고씨 부인이 13세의 아들 재명을 데리고 의주까지 가서 返葬을 하니

의주부윤이 노자를 보태 주고 경기감사는 역마를 내 주어 이어가며 호송하여 와서 남편의 고향 땅에 안장하였답니다.

이 사실을 고종2년(1865) 양헌수 목사가 아뢰어 정표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고씨 부인이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한참 세월이 흐른 다음인 소화8년(1933)에 신좌면 유지 일동이 부인의 烈과 아들의 孝를 기려 열효비를 세웠다 합니다.

 

당동산 당팟입니다.

 

300년 이상 되었다 하는 팽나무가 대여섯 그루 있습니다.

 

 

 당은 별도 블로깅하기로 하고 


포구 옆에 있는 사원잇물로 갑니다.

 북촌리는 물통이 꽤 많이 있습니다.
먹는 물 이름만 해도 사원잇물, 우앙물, 정짓물, 도와치물, 큰고망물, 족은고망물, 새끼고망물 등 기억하기도 어렵습니다.


물통이 집주변에 있어서 물 길어다 먹는 일이 다른 지역에 비해 쉬웠지만.
이 사원잇물은 한국전쟁끝난후 개조를 하면서 모양을 낸다고 원통모양을 했는데 물이 깊어서 물박으로 뜨기가 더 어려웠답니다.


두 개의 원형 식수통을 만들게 된 동기는 사원잇물의 두 줄기 샘구멍에서 맑고 차가운 물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마을 어르신이 말씁하십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물통입니다. 

 새끼고망물이랍니다

 

또 또다른 물통

도와치물너머 보이는 포구 

 


17세기 안핵겸순무어사로 제주에 왔던 李增이 남긴 南日錄에 이곳은 북포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을 북쪽에 있는 포구, 그러니까 바로 이 자리의 이름이 北浦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北村理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960년대 말의 북촌포구라는 사진이 있어 함께올립니다.

왼쪽에 삐쭉올라온게 등명대랍니다. 

 


포구에서 보는 다려도

 


섬의 모습이 물개를 닮았다고 해서 달서도(獺嶼道)라고도 한다합니다만

다려도의 뜻이 무어냐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을 해안에서 400m 정도 거리의 앞바다에 떠있는 무인도로 온통 현무암으로 이뤄진 바위섬이라 하고

 3~4개의 또 작은 섬이 모여 이 섬을 이뤘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이는 섬 위의 정자는 40여 년 전 마을에서 낚시꾼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등명대로 갑니다. 

전기가 생기기전에 사람이 직접 올라가 고기기름, 송진 등으로 불을 피워 뱃길을 안내했던 마을등대입니다.


제주도 전역에 꽤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해안도로 개설 등으로 다 부수어 버리고 십여개소 남아 있습니다. 

 

 통상 도대불이라 부르는데

이 곳은 그 상단에 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앞면에 '御卽位(記念)燈明臺 大正四年十二月建'이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어서 1915년에 세운 등명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도대불 위에서 본 다려도. 

 

 도대불 위에서 본 뒷개 본향 가릿당.


다려도를 보고 또 보며 북촌을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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