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천 할머니, 이제 다녀오세요.
할머니, 이제 그만 시름 푸시고 먼 길 다녀오세요.
진실은 조각난 당신의 턱처럼 여전히 주검 같이 누워있네요.
당신이 가린 수많은 죽음 눈동자처럼 울고 서 있는 넋 놓고 간 슬픈 메아리가 있네요.
도화지 같은 제주 바다는 푸르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색칠이 많아서 연거푸 칠해도 여전히 붉디 붉어요.
그래도 바다를 보고 계시죠.
여전히 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우시죠.
바위에 아기를 매쳐 죽이고 대나무에 송글송글 핏방울이 맺힌 걸 보면 제주의 바다는 그 자체가 파랗게 멍울진 매 자국 같아요.
할머니, 그래도 무명천을 벗겨 드릴래요
긴 터널을 지나 광명 같은 곳으로 다녀가시게 할래요.
하지만 무명천은 두고 가세요.
베옷처럼 거친 당신의 심금 위에 그대로 두고 있을 게요.
사람들은 말하죠 어쩌겠어요. 어쩌겠어요.
그러니 할머니도 이제 그만 두고 가세요.
잃었던 말을 찾아 광명 같은 곳으로 가 계세요.
당신이 한참 후 그 말을 찾아 다시 오시는 날 제주의 얼굴도 새로운 살이 돋아 있겠죠.
그러면 그 생기를 찾아 당신의 입술 위에 덧칠해 드릴게요.
할머니, 이제 한참을 돌아 생령처럼 다녀오세요.
제주4.3사건 60주년 기념 전국 청소년 문예작품 공모에서 시부문 대상에 선정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시입니다.
온 마을이 선인장천국인 곳 월령리.
불러도 대답할 이 없는 문패가 걸린 작은 집이 있습니다.
그집을 찾아왔습니다.
무명천 할머니 삶터
진아영
생전 그 이름으로 불리우질 못하였고
죽어서도 그이름으로 불리우지 못하는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 살던 터 입니다.
살았을 때, 턱 좀 붙여주고 밥 좀 먹게 해주지 못하고 그 주인이 죽은 다음에야 역사의 의미로 다가온 곳.
무슨 의미를 찾는다고 이곳을 기웃거립니다.
쑥스러움에 좁은 마당을 둘레둘레 살핍니다.
영원한 행복인가요...
이꽃 꽃말이
하얀색 루드베키아가 돌담밑에 한송이 피어 있습니다.
꽃말과 이집주인의 인생과의 너무 큰 부조화
꽃이름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초 설치했던 표지석이 누워 있네요.
집으로 다가갑니다.
진아영.
1914년생으로, 한경면 판포리의 오빠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평범한 서른 다섯의 아낙.
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경찰의 무장대 토벌작전때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져 아래턱을 모두 잃어버리고,
돌봐주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언니와 사촌들이 살고 있는 월령리에 와서 살던 여인.
모진게 생명이라고 죽지도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55년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오다
2004년 9월 8일. 90세로 한 많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할머니는 늘 사람들이 밭에 나가 텅 비어 있는 마을 울담 귀퉁이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아니면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4·3의 세월을 탓하며 놀란 눈으로 세상을 응시했다 합니다.
마을 울담 귀퉁이에 나가실때 신었을 신발들이 문간에 세워져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 갑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난 후
진아영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에서 건물과 내실을 보수후
생전의 형태로 정비해 놓은 모습입니다
생전의 모습이 담겨있는 무명천할머니 영상을 봅니다.
약 20분정도의 다큐입니다.
그리고 팜프렛
집을 정비하기 전의 내실의 모습입니다.
'제발 죽기전에 온전한 턱을 갖고 싶다'던 진아영 할머니는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모습과 함께 방한켠에 놓인 이 사진은 턱을 잃었던 젊은때의 사진을
4.3 유족들이 뒤늦게 사진 합성기술로 되찾아준 것이랍니다.
왜 사람이 죽어서야,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물흘리며 본 할머니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199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지요.
할머니의 인생은 계속 무명천에 가려져 있다가 한림읍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으셨고
월령리 집은 반쯤 덮인 담쟁이덩굴과 잡초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처소가 정리되었습니다.
이제야 역사의 의미를 찾는다고 기웃거리는 제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Schubert
죽음에 다다른 소녀와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가려는 죽음의 사자와의 대화에서..
소녀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는 아직 어려요. 그냥 지나가 주세요."
사자가 대답합니다 "나는 친구란다. 괴롭히려 온 것이 아니야.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 수 있단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셨을 겁니다. "온전한 턱을 하루라도 갖고난후 죽고싶다."고요..
사자는 이렇게 대답했을겁니다. "그곳은 턱이 없다고 부끄러울것도 불편할 것도 없이 편히 쉴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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