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요?
지역신문에 이곳 금등에서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여성이장이 탄생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이 마을이 참으로 고루한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왜냐고요?
마을 이름에서요.
마을이름이 예전에는 마을의 형태가 지네등과 같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가옥은 지네발과 같이 저지대에 산재해 있어 지네골이라 불리우기도 하였고
바닷가에는 어디에도 부럽지 않을 너른 원, 새원, 모살원, 개창원이 펼쳐 있어 한개라 불리운 마을이지만
판포리와 두모리 사이의 작은 마을이라고
옛 중국의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조그마한 등나라 騰 자를 따서 금등리라고 마을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옛 중국고사만 이야기하시는 문장어른이 떠오른 거지요.
그런데 여성이장을 선출할 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섬세함과 치밀함으로 마을을 잘 발전시키실거라 믿어요.
해변을 따라가며 가로로 놓인 원과 나란이 걷고
손두물로 갑니다.
손두물에서 일주도로쪽으로 가는길
그 한곁에 당이 있습니다.
눈에 보여도 모르고 지나가면 모르겠네요.
금등리 본향 손드물 축일 할망당
손드물본향 축일한집과 용왕신을 모십니다.
그래서 제단을 좌우에 두개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사이에 궤를 하나 만든것이 두분 사이가 참 좋으신 것 같습니다.
지전과 물색은 덩굴위에 걸려 있는데
꽤 오래된 듯하고
잡초가 형태를 덮기 시작합니다.
안스러이 쳐다보고 당을 돌아나옵니다.
다시 손두물을 돌아서
당과 함께 사라져 가는 삼총사
당 그리고 물통 그리고...
전분공장을 가봅니다.
한때는 제주도의 황금산업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환금작물 사업이었죠.
한때 제주도에 전분공장수가 60군데가 넘었으나 채산성에 밀려 00년도에 알아볼때는 11개소만 남아 있었지요.
그당시의 이유가
88년이후 수매가격이 동결된데다 값싼 중국산 전분 수입이 급증하고 폐수처리기준이 강화되면서 전분공장 수가 급격하게 줄었고
그에 따라 고구마 재배면적도 줄고... 등등의 이유로 나쁜 냄새만 풍기는 천덕꾸리기가 되었죠.
그당시에도 이곳 전분공장은 가동이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당연히 가동을 멈추었겠죠.
그래도 부셔지지 않고 그모습 그대로 있는 게 대견해서
그시절의 노고에 감사하며
사진 한장 더 꾹...
다시 원과 함께 걸으며
원으로 달려가는 양식장 배출수를 보면서
일주도로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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